강원도 영월군 깊은 산골, 붉은 수수밭길을 따라 들어가면 시인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들은 아니다. 글을 모르는 이도 있다. 다만 우리 현대사와 발걸음을 함께 하며 굴곡진 삶을 걸어온, 누구보다도 값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시인들이다.


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덕전마을’의 이장 김성달씨(59)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집가던 날, 내 인생의 잔치>라는집을 출간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는 일이 어디 쉬우랴. 그것만으로도 명인(名人)이라고 칭할 만하다는 말에 그는 “절대 아니다”며 손사래쳤다. 기자가 다시 시인들의 마을인 덕전마을 자체를 명촌(名村)이라고 부르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웃음을 보였다.

/사진=장효원 기자

◆ 눈물 흘리며 공감한 시집 작업
서울에서 포장재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김성달 이장은 21년 전 덕전마을로 내려왔다. 영월군 내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며 지내던 김 이장은 몇년 전부터 마을의 이장을 맡았다. 그가 이장을 맡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주민들은 어떻게 이 마을에 들어왔을까’였다.

“같이 일을 하다가 지금 부녀회장에게 ‘시집올 때 어떻게 오게 됐어?’라고 넌지시 물어봤어. 그랬더니 이렇게 저렇게해서 오게 됐다고 쭉 얘기하는데 구구절절하더라고. 그때 생각했지. 이야기를 듣지만 말고 시집을 만들어보자고.”


이후 김 이장은 곧바로 8년간 교류했던 인문학자 김재형씨에게 연락했다. 김씨는 전남 곡성의 농민운동가로서 죽곡마을의 이야기를 채록시로 만든 인물이다. 채록시란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시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마을 어르신들 중에는 글을 모르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채록형태를 빌려 시를 쓴 것이다. 김 이장은 그런 그의 경험을 살려 덕전마을 이야기도 시집으로 엮어달라 부탁했다.

“김재형씨에게 드릴 것은 없지만 주민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담아줄 수 있느냐고 여쭸더니 한걸음에 달려오더라고. 지난해 겨울, 보름 정도 마을회관에 묵으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집 작업을 진행했어. 사정이 어려운 걸 알고 직접 출판사 대표와 연결해준 덕분에 책을 낼 수 있었지.”

어렵사리 시집을 펴낼 준비를 마쳤지만 그는 난관에 부딪혔다. 어르신들의 아픈 인생사를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김 이장은 힘든 과거를 떠올리기가 당연히 싫었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는 마을 이야기를 나누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어르신들에게 다가갔다. 김 이장의 진심이 통했는지 어르신들은 하나둘 마음을 열었다.


“시를 쓰면서 많이 울고 많이 웃었어. 어르신들이 글을 못 읽으니까 시를 내가 직접 읽어줬는데 읽다 보니 내가 울컥해서 울어버렸지. 그러니까 어르신도 같이 울고. 어떻게 보면 같이 눈물 흘리면서 공감했던 게 마을이 화합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



◆ 서로의 이야기가 역사로 남길
이렇게 만들어진 시집에는 우리의 삶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6·25전쟁 때 피난길에 오르던 모습, 먼저 간 아들을 가슴속에 묻은 슬픔, IMF외환위기 때 모든 걸 잃고 마을로 들어온 사연. 화려한 수사와 기교는 없지만 솔직담백한 어투로 담담히 써내려간 시는 한줄, 한줄이 모두 보석처럼 빛났다.

김성달 이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시로 장순식 할머니(85)의 ‘두번 살라면 못살 삶이었다네’를 꼽았다. 이 시는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시집온 집안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며 산 할머니의 이야기다. 장 할머니는 남편도 일찍 병으로 떠나보내고 시어머니와 40년 넘게 함께 살았다.

시어머니마저 치매에 걸려 긴 투병생활을 하다가 결국 눈을 감았다. 미운 시어머니였지만 돌아가시고 나니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는 할머니의 애환이 담긴 시다. 김 이장은 직접 이 시를 끝까지 낭송했다. 수십번도 더 읽었던 시지만 그는 “그 시대의 아픔과 인생사의 허무함을 느낄 수 있는 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이는 함종태 할아버지(81)다. 함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런데 시집에 넣을 시를 써달랬더니 직접 시를 써오고 그 시를 모두 외우기까지 했단다.

“그분에게 시 하나를 써달라고 했더니 ‘내가 무슨 시를 써’라며 거절했는데 끈질기게 부탁하니까 이틀 후에 시를 써오더라. 그 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를 배운 적도 없는 분이 마치 시인이 쓴 것처럼 운율도 딱딱 맞추고 너무 잘 써왔다.”

현재 이 시집은 농민들에게 좋은 사례로 회자돼 전국에서 관심받고 있다. 어르신들도 자신의 족적을 하나 남겼다는 생각에 내심 흐뭇해 하신단다. 책 판매로 번 수익금은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이제 김성달 이장은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

“덕전마을 시집 2편을 구상하고 있어. 다만 마을분들의 아픈 마음이 가시고 난 후에 만들 생각이야. 가슴 속 이야기를 꺼내느라고 힘들었겠지. 다음 시집은 일상적인 일화나 즐거웠던 일을 위주로 담으려고 해. 또 귀농한 분들이 어떻게 오게 됐는지 등의 이야기도 담을 거고. 그래서 이 시집이 마을사람들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역사책으로 남길 바라.”

☞ 김성달 이장의 추천 시

# 시어머니 시집살이 심했다네. ‘귀동어미 며느리 들이면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고 할 정도로 사나웠고, 한마디를 해도 꼬집어 뜯고, 없는 소리하고. 오마니골 밭에 밭매러 가면서 죽고싶어 몇 번을 쥐약 들고 갔었다네. - <두번 살라면 못 살 삶이었다네 中>

# 오줌이 매루워서 눈을 떠보니/ 창문으로 스며든 달이/ 내 얼굴을 비춰 주네.
나도 몰래 일어서서 창문으로 다가가네/ 얼굴보다 작은 달은/ 온 세상을 밝히는데/ 어이해서 이내 몸은 내 주변도 못 비추나. - <내가 본 새벽 달 中>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