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불꽃인가 봅니다. 거 있잖아요. 불이 꺼지기 전에 잠시 불길이 확 일어나는….” (한 건설사 임원의 말)

“정말요? 68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는데 줄을 섰다고요? 누구는 전셋값이 없어 월세살이 하는데, 세상 참…. ” (최근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지 못해 수도권으로 이사를 한 A씨의 말)


요즘 국내 부동산시장이 시끌벅적하다. 고분양가 때문이다. 최근 분양을 시작한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더샵’의 펜트하우스(전용면적 320㎡)의 분양가가 3.3㎡당 7200만원으로 밝혀지며 분양가 거품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청약접수 결과를 놓고도 말이 많다. 68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펜트하우스를 사겠다고 달려든 청약자수가 137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경기침체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는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각한 상황이다.

부산 엘시티 조감도. /사진제공=엘시티PFV

◆ 3.3㎡ 분양가 7200만원 '사상 최고'
지난 14일 1순위 청약에 들어간 해운대 엘시티 더샵이 분양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아파트 320㎡ 펜트하우스 2채는 분양가가 67억9000만원씩이다. 정식 모집공고를 내고 분양한 아파트(주상복합 포함) 가운데 사상 최고가다.

2008년 초고가 논란이 일었던 부산 해운대 우동 아이파크 423㎡(128평형, 57억6360만원)의 평당 분양가 4500만원보다 55%나 높은 수준이다. 기존 최고가 분양권 아파트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상지리츠빌카일룸3차 274㎡(83평형)로 53억2900만원이었다.

해운대 엘시티 더샵의 나머지 펜트하우스 4채도 45억~49억원씩이다. 일반층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2730만원으로 가구당 11억9600만원에서 23억원대다. 이는 지난해 강남3구 아파트 평균 분양가인 2154만원보다도 26.7% 높은 수준이다. 최근 부동산경기가 살아난 가운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폐지와 바다조망이 가능하다는 입지 조건 등이 분양가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엘시티 더샵 근처 해운대구 우동 아파트 분양가격이나 매맷값을 감안할 때 과도하게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바다조망이 가능한 현 부산 최고가 아파트 ‘두산위브더제니스’의 3.3㎡당 실거래 가격은 2144만원이고, ‘해운대아이파크’는 1725만원 수준이다. 부산에서 분양가가 가장 높았던 ‘해운대 경동 제이드’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2080만원이었다.

이에 대해 한 건설사의 임원은 “엘시티 더샵의 분양가는 솔직히 과하다”며 “현재 불안한 국내 부동산시장 상황을 볼 때 막바지 투기를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 엘시티 더샵 모델하우스를 찾는 사람들. /사진=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 고분양가에도 전 평형 1순위 마감
하지만 엘시티 더샵은 고분양가 논란 속에서도 모두 청약 1순위로 마감됐다. 지난 15일 금융결제원이 집계한 '엘시티 더샵' 1순위 청약접수 현황을 보면 839가구 모집(특별공급 43가구 제외)에 1만4450명이 몰려 평균 17.22대 1로 나타났다.

특히 3.3㎡당 7200만원이라는 역대 최고 분양가를 기록한 244.61㎡형(펜트하우스)에는 2가구 모집에 137명이 몰려 68.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다른 가구의 청약도 ▲144㎡형 35.6대 1(264가구 모집, 9411명 접수) ▲161㎡형 8.4대 1(287가구 모집, 2420명 접수) ▲186㎡ 8.4대 1(282가구 모집, 2386명 접수) ▲244.29㎡형 24대 1(펜트하우스 4가구 모집, 96명 접수) 등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이 같은 결과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자기돈 가지고 자기집 사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도 있지만, 미친 전세값과 부동산시장의 이상과열 징후로 인해 좀 더 싼 전세를 찾아 거주지를 옮겨 다녀야 하는 이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서울에 살다가 경기도권으로 이사를 간 김병민씨(38)는 “좋은 아파트 만들어 비싸게 파는 건 이해가 가지만, 주변시세와 너무나 차이가 나서 결국 투기를 불러일으키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서울 서대문에서 공인중개업을 운영하는 박세진씨(46) 역시 엘시티 더샵의 분양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20년 동안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지만 지금 국내 부동산시장에는 이렇게 높은 분양가가 나오면 안되는 상황”이라며 “결국 사업을 하는 시행사가 모처럼 살아난 부동산시장에 편승해 한탕을 노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산 엘시티 공사현장. /사진제공=엘시티PFV

◆ "기회는 지금뿐" 8년 기다려 터트린 고분양가
과연 시민들이 말하는 대로 엘시티 더샵의 분양가가 과도하게 책정된 것일까. 이는 사업이 시작된 2007년부터의 상황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유를 알 수 있다.

엘시티 더샵은 지난 2007년 11월 부산도시공사가 해운대구 중1동 한국콘도 뒤편 옛 군부대 자리에 들어설 해운대 관광리조트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시작됐다. 엘시티 측이 사업자로 선정됐고 2008년 4월 부지매입을 위해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엘시티PFV)를 설립했다. 이후 군인공제회를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안은 엘시티PFV는 2008년 12월 부산도시공사로부터 2300억원에 사업부지를 매입했다.

당시 엘시티PFV가 군인공제회로부터 빌린 자금은 2600억원이다. 하지만 땅 매입만 했을 뿐 사업은 진척되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경기가 급속도로 가라앉아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업자금을 구하지 못해 사업 진행이 안 되자 엘시티PFV는 부산도공과 협의해 2009년 7월 종전 오피스와 위락시설 대신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을 대거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를 변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부동산경기 침체에 사업은 진행되지 못했다. 그 사이 엘시티PFV의 금융 부채는 계속 쌓여만 갔다. 시간이 흘러 엘시티PFV는 2013년 5월 사업지가 '부동산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지로 지정됐고 같은 해 10월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S)와 공사도급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책임준공 약정이 없는 단순 도급공사계약이었다. 따라서 사업은 거의 진척되지 못했다. 허송세월을 보내던 엘시티PFV는 올해 부동산경기가 살아나자 지난 1월 3500억원, 4월 700억원을 부산은행으로부터 빌렸다. 이 자금으로 군인공제회 차입금 3250억원과 사업 관련 미지급금 250억원을 각각 변제하고 올해 4월 CSCES와의 계약도 해지했다.

이후 엘시티PFV는 포스코건설과 손을 잡았다. 포스코건설의 책임준공 약정을 통해 1조7800억원 규모의 PF대출을 이끌어내며 사업을 진행시켰다. 엘시티PFV로서는 8년만에 찾아온 기회다. 더욱이 현재 뜨겁게 달아오른 부산지역의 주택경기가 성공 가능성도 열어놨다.

엘시티PFV는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고분양가를 책정했고 시장에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 엘시티 더샵의 3.3㎡당 7200만원의 분양가는 8년간의 손실이 반영된 금액인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