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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특히 취업생의 삶은 녹록지 않다.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의 문턱을 넘으려 고전분투하다 보면 날마다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벅차다. 취업의 최종 관문에 해당하는 면접에 기회를 잡은 이들도 이곳에서 난도질당하기 일쑤다. 냉철한 평가와 심사를 통해 인재를 채용하기 위함이라는 기업들의 변을 일면으론 이해하면서도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개중에는 도를 넘어선 곳들도 적지 않다. 권위주의에 찌들어 무례와 모욕을 넘나드는 한 건설사의 면접 과정을 들여다봤다.
◆ "야~ 넌 우리 회사에 왜 지원했어"
최근 A건설사 입사시험에 지원한 취업준비생 김모(31·여)씨는 최종면접까지 올라갔다. 부푼 기대와 긴장감을 안고 도착한 면접장에는 면접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한 직원이 작성해달라고 건넨 서류를 받았다.
이미 제출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자필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김 씨는 '그러려니' 했다. 그 이후 인사담당자 면접이 끝나자 대표와의 면접이 4시간 후로 잡혔다. 이 시간 동안 공사현장을 둘러본 터라 김 씨는 면접의 일환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대표는 약속 시각이 3시간이 지나도록 면접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 면접이 늦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직원에게 질문을 던진 김 씨는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인내심을 테스트하려고 일부러 저녁 늦게 면접을 본다는 답변이 돌아온 것. 그리고 면접자가 여자이기에 술 면접은 없을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어진 얘기를 듣고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표가 직접 직원의 '사상 검증'을 한다는 말이었다. 직원들은 선거철마다 투표 후에 반드시 어떤 후보에 투표했는지 사진을 찍어 대표한테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채용공고 당시 대표 인사말 속에 보수를 지지한다는 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5시간 만에 드디어 대표가 나타났고 "전공이 다른데 왜 지원했냐", "아버지 연봉은 얼마냐", "사진보다 뚱뚱해 보인다" 등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인신공격인 질문 대부분을 반말조로 내뱉어 냈다.
아무 설명 없이 대표는 갑자기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돌아온 인사 담당자가 면접이 마무리 됐다는 얘기를 하기 전까지 현장에 있던 아무도 면접이 끝났다는 사실을 몰랐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들었던 김 씨는 인사 담당자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기업 문화를 이해해 달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김 씨도 사실상 어찌할 도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소식은 결국 대표의 귀에 까지 들어갔는지 그날 저녁 김 씨의 휴대전화로 장문의 문자 한통이 왔다.
대표의 문자는 '당신이 대우받지 못할 행동을 했기에 반말을 한 것'이라며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정도의 압박면접도 못 견디면서 무슨 큰일을 하겠느냐' 등 김 씨의 태도를 오히려 질책하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문자를 받고 더는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냥 혼자 분을 삭혀야 하는 상황이 비참했다"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질문과 추궁하는 식인 면접관의 권위적인 태도가 안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 모멸감 주는 질문, 자질 부족한 면접관 탓
일부 기업은 '압박면접'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식의 폭력적 행태로 모멸감을 준다. 실제로 사람인이 지난달 초 구직자 905명을 대상으로 '면접 질문에서 불쾌감을 느낀 경험 여부'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77.6%)이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쾌감을 주는 질문으로는 '역량을 의심, 비하하는 질문'(45.2%, 복수응답), '결혼계획, 애인유무 등 사생활을 묻는 질문'(37.9%), '가정환경 관련 질문'(30.9%), '성별, 나이 등에서 차별적 질문'(30.1%), '키, 체형 등 외모 관련 질문'(20.4%) 등으로 다양했다.
지원자들이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채용과 관계없는 질문'(58.8%, 복수응답), '무시하는 것 같아서'(45.6%)라는 답변이 많았다. 특히 불쾌한 질문을 받은 지원자의 94.4%는 해당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면접장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가 이와 관련한 설문조사한 결과 인사 관리자 14명 중 11명이 "준비 안 된 면접관이 면접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는 기업들 내부에서도 면접 문화가 왜곡돼 있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하는 셈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준비 안 된 면접관이 나쁜 질문을 하지 않도록 아무리 급하게 잡힌 면접이라도 반드시 면접관 교육을 한다"며 "지원자가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질문, 개인 신상에 관련한 질문 등을 피하고 답변 기회가 골고루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사 담당자는 "채용자가 '갑', 지원자가 '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압박 면접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결국 선발되는 지원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렌데도 지원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으로 면접을 하는 것의 효과는 무엇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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