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IT산업의 융합, 핀테크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은행들이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차세대시스템사업의 포문을 연 대형은행이 이번에는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구축에 나서면서 IT기업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은행들은 수억원의 대규모 자금을 IT기업에 투자하고 비대면거래 활성화에 대응할 수 있는 프로세스 고도화작업을 추진 중이다.


최근 우리은행은 2500억원 규모의 차세대사업에 단독입찰한 SK C&C와 최종계약을 앞두고 있다. 계약이 마무리되면 올해 상반기부터 차세대시스템 개발에 착수해 오는 2018년 2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수출입은행은 대우정보시스템을 차세대사업의 최종입찰자로 결정했고 차세대시스템 개발에 약 3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산업은행도 올해 상반기부터 차세대 프로젝트 구축에 나설 예정이다. 대상은 계정계·정보계·대외계 등 은행 핵심시스템이며 2000억원을 투입한다.

올해 중반에는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도 차세대시스템 구축에 돌입한다. 특히 KEB하나은행은 옛 외환은행의 전산통합과 함께 차세대시스템 오픈을 계획 중으로 통합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차세대시스템에 대한 면밀한 검토에 들어갔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4년 포스트차세대시스템을 구축하고 영업점에 총 5차례 테스트를 실시했다. /사진제공=기업은행

◆시중은행, BPR 구축 박차

시중은행은 업무과정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비즈니스프로세스재설계(BPR)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BPR은 은행업무의 핵심부문에서 비용·품질·서비스·속도 등을 개선해 업무과정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다. 전자문서와 스마트뱅킹 등의 혁신적인 업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스마트금융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은 약 300억원을 투자해 BPR 프로젝트의 재구축작업을 추진한다. 우리은행의 BPR은 지난 2000년대 초반에 구축한 것으로 오는 2017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농협은행도 10년 만에 BPR 재구축에 나섰다. 농협은행은 창구업무에서 전자문서를 활용할 수 있는 후선업무를 개선하기 위해 삼성SDS의 애니프레임을 티맥스의 자바 프레임워크로 전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바 프레임워크는 은행 IT시스템의 고성능과 안정성을 보장하고 DBMS(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 통신 횟수를 최소화해 직원들의 업무편의성을 높여준다.

앞서 신한은행은 업무의 자동화를 확대하고 효율성을 강화할 수 있는 IBM의 BPR솔루션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신한은행은 신규 비즈니스 대응역량을 확보하고 영업점과 관련부서 간의 정보전달체계가 상승해 업무효율성이 강화됐다는 평을 받는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2년부터 17개월간 차세대시스템 구축작업에 2500억원을 투입했다. IBM의 메인프레임을 유닉스 서버로 교체하고 DBMS 등 주요 솔루션도 모두 바꾸면서 마케팅 중심의 IT지원 인프라를 구현했다.

앞으로 은행들은 차세대사업과 BPR사업을 구축해 단순히 창구업무에 전자시스템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스마트폰 뱅킹서비스 구현에 나설 예정이다. 이어 크라우드펀딩, 자산관리, 개인간거래(P2P) 대출 등에도 IT금융서비스 제공을 확대할 계획이다.

은행 관계자는 “기존 IT시스템으로는 인터넷·모바일뱅킹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애플리케이션의 기능과 중복되는 창구업무를 줄이고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접목한 IT금융부문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핀테크기업에 고객 뺏길 수도

IT전문가들은 IT기업들의 금융사업 확대가 앞으로 은행의 수익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들이 선진화된 서비스 개발을 위해 IT·핀테크기업에 투자하지만 되레 은행업이 잠식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들이 굵직한 차세대사업을 발주하면서 금융IT서비스는 IT서비스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IT서비스시장은 지난 2014년 2조원에서 2015년 2조1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대형 IT회사 중에선 SK C&C, 삼성SDS, LG CNS가 금융사의 차세대·BPR사업 수주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금융솔루션 사업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주요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최근 삼성SDS는 솔루션사업부서를 신설했고 LG CNS는 김영섭 솔루션 사업본부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SK C&C는 금융분야의 혁신을 이끄는 정보기술서비스를 연이어 내놓고 금융IT시장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중소기업인 대우정보시스템은 금융IT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삼성SDS로부터 금융IT 솔루션 전문기업인 누리솔루션을 인수했다. 대우정보시스템은 은행, 보험사의 위험관리시스템 등을 구축한 누리솔루션의 노하우를 활용해 금융사업 진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IT·핀테크기업들은 기술과 가격 우위를 내세워 은행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디지털 금융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온라인뱅킹 선호가 늘면서 핀테크기업의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도 늘어날 전망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맥킨지의 글로벌뱅킹 연차보고서를 인용해 아시아 선진국 고객의 58~75%가 온라인에서 금융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핀테크기업의 온라인전용 금융서비스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경우 절반 이상의 고객이 은행을 옮길 것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아가 IT·핀테크기업의 기술발달로 소비자금융, 지급결제, 중기대출 및 자산관리 등 은행의 리테일 비즈니스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시중은행이 수익을 위협받는 분야는 소비자금융으로 오는 2025년까지 은행 매출의 40%, 수익의 60%가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재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은행이 앞으로 벌어질 핀테크기업과의 고객유치전쟁에서 생존하려면 고객중심의 프로세스 혁신과 디지털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고객중심혁신은 은행의 문화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