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수급이 좋지 않습니다. 시장 흐름이 화장품업종으로 가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보내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아니다. 로봇이 투자 조언과 포트폴리오 구성까지 해주는 시대가 도래했다. 증권가는 최근 로봇(Robot)과 어드바이저(Advisor)를 합성한 ‘로보어드바이저’를 속속 도입하는 추세다. 기존 주가분석시스템에 빅데이터 분석까지 겸비, 사람보다 정확하고 빠른 투자자문을 제공하겠다는 목적에서다. 로봇이 하는 만큼 수수료도 저렴하다.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를 반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일선에서 뛰는 증권맨들이다. 온라인 주식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는데 이제는 로봇과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 규제 개선으로 탄력 예상


로보어드바이저란 온라인에서 자신의 투자조건을 입력하면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분석 등으로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해주는 서비스다. 기존의 정량적 분석에 개별 이슈까지 파악해 시시각각 투자자문을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보다 정확한 분석으로 높은 투자수익을 거두면서 수수료를 낮게 책정할 수 있어 20~40대 청장년층 투자자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한다.

이 같은 기술의 진보를 시장에 적용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도 제도개선에 나섰다. 금융위는 지난달 18일 2016년 대통령 업무보고에 로보어드바이저사업 안착을 위한 ‘온라인 기반 자문업 활성화 방안’을 포함했다. 1분기 안에 세부 시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존 투자자문서비스는 투자자가 직접 영업점을 방문해 자문담당자에게 서면자료를 직접 건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대면계약이 이뤄져야 한다는 규제인 셈이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가입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같은 자문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실제 영업점에서 얼굴을 볼 수 없다. 이에 금융위에서는 비대면 온라인 계약과 로봇의 자문서비스 제공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금융위에 따르면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은 현재 단순 투자자문 외에도 포트폴리오 운영과 주기적 리밸런싱 등 투자일임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이다. 높은 기술력과 수익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대형증권사나 자산운용사는 로보어드바이저서비스를 적극 도입하는 추세다.
2014년 기준 미국 상위 11개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자문사가 관리하는 자산은 전년대비 65.2% 증가한 190억달러다. 지난해 2월 기준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자문사의 자문수수료는 0.15~0.89%다. 기존 자문서비스 수수료의 절반 수준이다. 이에 소액투자자도 자문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기존에는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투자자문이 고액자산가에게만 제공됐다”며 “오는 3월 도입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운영되면 로보어드바이저 등 온라인자문 이용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로봇과 경쟁… 증권사 직원 부담

증권업계는 대세에 발맞춰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상품을 속속 출시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맞춤 매매전략, 상장지수펀드(ETF) 자동매수, 목표수익률 도달 시 매도안내 등을 포함한 ‘QV 로보어카운트’를 내놨다. 별도의 자문수수료를 낼 필요없이 온라인 매매수수료만 부담하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세가지의 ETF만 투자할 수 있는 제약이 따른다. 삼성증권은 로보어드바이저 플랫폼 개발을 마치고 핵심기술인 ‘투자성과 검증시스템’ 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술은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시 과거 10년간의 데이터를 이용해 성과를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방대한 데이터 분석으로 투자위험을 줄이고 효율적 투자전략을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KDB대우증권은 오는 3월 국내외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업체를 한곳에 모은 ‘로보어드바이저 마켓’을 연다. 투자자는 여기서 적합한 업체를 골라 자산관리를 받을 수 있다. 현재 8곳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앞으로 참여업체를 더 늘릴 계획이다.

다만 신기술의 도입이 증권사 직원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화나 지점방문으로 투자자문을 제공했던 프라이빗뱅커(PB)들의 경쟁상대가 늘었기 때문. 한 증권사 영업점의 3년차 PB는 “앞으로 한동안은 로보어드바이저 때문에 고객이 급격히 줄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기술의 진보가 빠른 만큼 은퇴할 때까지 로봇에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증권사 지점과 직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점도 증권업 종사자에게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증권업이 온라인으로 점차 재편되면서 인력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65개 증권사의 전체 지점수는 1217개로 조사됐다. 2012년 9월 말 1734개에 비해 30%가량 줄어든 셈이다. 전체 임직원수도 같은 기간 4만3091명에서 3만6096명으로 7000명이상 감소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로보어드바이저서비스는 펀드나 랩과 같은 신규상품의 하나일 뿐”이라며 “상품 출시로 직원의 밥그릇이 뺏긴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로봇이 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로보어드바이저는 증권산업의 변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로봇이 아직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부분, 예컨대 정량적 분석이 아닌 정성적 분석이나 시장 심리 등에 능력을 특화한다면 인력 감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