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이었다. 나는 그 좁고, 외롭고, 정숙하고, 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 항상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다.’

박민규 작가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도시 속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대학교 2학년인 주인공은 벽이 아닌 칸막이에 가까운 것으로 방과 방을 나눈 고시원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것이 생활화됐고 코를 풀 때도 치약을 짜듯 눌러서 조용히 푸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그렇게 소리낼 수 없는 사람이 됐다.


2월, 청춘들이 각자의 꿈을 찾아 도시로 몰려온다. 하지만 이 넓은 도시에서 꿈은 커녕 내 몸 하나 누일 공간 마련하기가 ‘고시 패스’만큼이나 어렵다.

◆‘집’이라는 청춘의 덫

#1 수습기자 최모씨(28)는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집 앞 골목길에 들어선다. 근처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고 아르바이트생이 지키는 편의점만 불빛이 환하다. 수습을 끝내기 위해 동기들과 경쟁하며 입에 단내가 나도록 일을 하고 선배가 퍼붓는 욕설을 한바탕 듣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16㎡짜리 옥탑방에 들어가면 찬기가 소매 사이로 스며든다. 스마트폰용 장갑을 끼고 이불 속에 몸을 구겨 넣자 오늘도 어김없이 오래된 보일러가 ‘우우웅’ 소리를 내며 최씨의 단잠을 깨운다.


#2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3학년 홍모씨는 매일 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향한다. 홍씨가 사는 곳은 한달 35만원짜리 ‘원룸형 하숙’. 이미 신발장은 다른 자취생들이 차지한 상태여서 신발을 벗어 복도 구석자리에 밀어 넣는다. 하숙집이 답답해 학교 기숙사 1인실을 신청하려고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1인실 기숙사비가 월 50만원이 훌쩍 넘고 경쟁도 치열하단 얘기에 이내 마음을 접었다. 지금도 하숙비를 벌기 위해 수업을 마치고 학교 근처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집에 오면 열두시다. 그때부터 과제를 시작한다.
20~30대 청년들의 주거난이 심각하다. 졸업 후에도 학교 주변에 머무는 사회초년생이 많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실정이다. 신입생들도 기숙사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어 서둘러 방 찾기에 나선다.


/사진=임한별 기자

특히 개강 직전인 2월과 8월이면 대학가 주변 공인중개소마다 방을 구하려는 학생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한다. 서울 한 시립대학교 인근 공인중개소 대표는 “2월이나 8월엔 학교 기숙사 발표를 기다리다 탈락해서 급하게 방 구하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린다”며 “주변 상가들이 대부분 원룸일 정도로 공급량이 많은데도 이 시기엔 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대학교의 기숙사 수용률은 약 18%에 그친다. 특히 수도권 소재 사립대학교의 기숙사 수용률은 10%로 재학생 10명 중 1명만 기숙사를 이용하는 셈이다.

서울권 사립대학교의 기숙사 수용률은 ▲연세대 31.2% ▲고려대 10.5% ▲서강대 12.2% ▲성균관대 22.5% ▲한양대 11.5% ▲중앙대 12.1% ▲경희대 18.8% ▲한국외대 17.7% ▲명지대 10.9% ▲이화여대 8.7% ▲동국대 6.1% ▲홍익대 4.2% ▲광운대 1.7% 등이다.
지방 출신 신입생 위주로 배정한다 하더라도 100% 장담할 수 없다. K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일반 재학생이 기숙사에 들어가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라며 “재학생을 위한 기숙사를 더 많이 신축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어렵게 기숙사에 들어가도 끝난 게 아니다. 기숙사비가 대학 주변 원룸 월세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연세대의 1인실 기준 기숙사비는 월 64만원으로 서울권 기숙사 중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건국대(57만원) 한양대(52만9000원) 숭실대(51만2000원) 등도 기숙사비가 50만원 이상이다.

이들 대학교 인근 공인중개소를 조사한 결과 주변 원룸시세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30만~50만원으로 파악됐다. 대학교 일대에서 20만원 이하인 방을 찾으려면 고시원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다. 고시원 외 20만원 이하의 공간을 구하려면 대학교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반지하방이나 옥탑방 등을 찾아봐야 한다.

실제 서울지역 청년(만 19∼34세) 5명 중 1명은 주택법 최저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지하나 옥탑,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지역 주거빈곤 청년은 2010년 기준 52만3869명으로 전체 청년 229만4494명 중 22.9%를 차지했다. 청년 1인가구(34만가구)의 36.3%(12만3591가구)가 주거빈곤 상태다. 청년 셋 중 하나는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며 사는 것이다.

청년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월세나 평수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낙후된 시설은 무단침입, 도난, 성폭행 등 각종 위험에 노출돼 청년들의 삶 자체를 갉아먹는다. 또 대부분 집주인 눈치를 보느라 소득공제는 엄두도 못낸다.


/사진=임한별 기자

◆“청년 위한 임대주택 공급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청년층 주거문제의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청년층 주거문제는 단순히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중장기적으로 임대주택 총량을 늘리되 지자체별로 할당해서 맞춤형 임대주택 공급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청년 주거문제는 공급·수익성 중심의 기성세대 주택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며 “지금까지는 정부가 소득을 기준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소득과 별개로 세대 배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 주거문제가 전체 삶의 빈곤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임대주택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월세가 보편화된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상의해 임대료를 결정하는 ‘임대차 안정화제도’를 시행한다. 협상에 실패하면 지방자치단체가 고시한 표준임대료를 기준으로 정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임대차 계약의 해지와 재계약에 관한 법률이 임차인에게 유리하게 구성됐다. 예컨대 독일의 집주인은 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을 개인계좌와 분리된 별도의 은행계좌에 예치해야 한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높은 보증금에 월세를 전전하다 보면 청년들은 목돈을 모을 여유도 없이 계속 지출만 하게 된다”며 “집주인을 유인할 만한 인센티브가 마련되고 절차도 보다 간소화돼야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