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8시. 이른 시간임에도 정모씨(39)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출근준비를 하던 정씨가 문을 열자 정장 차림의 남성 2명이 서 있었다. “대출 연체된 거 알고 계시죠?” 그들은 대부회사의 채권추심원이었다. 정씨는 “(회사)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연체하게 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채권추심원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연체 사실과 빠른 시일 내 돈을 갚아야 한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그들은 한시간여가 흐른 뒤 정씨의 집에서 떠났다. 대부업체에서 자금을 융통한 정씨가 정해진 상환일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채권추심원들이 방문한 것이다.
정씨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자다. 하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정씨의 수입이 불규칙해졌고 덩달아 대출금도 연체됐다. 정씨가 경험한 ‘31개월의 악몽’을 되짚어봤다.
/사진=이미지투데이
◆1000만원 빌려 997만원 갚았지만…
사건의 발단은 2년 전인 2013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씨는 당시 대부업체 산와머니에서 연 36.5%의 금리로 1000만원을 대출받았다. 48개월 동안 매달 40만원씩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원리금균등상환방식이다.
첫 대출을 받을 때 정씨는 대출을 승인해준 산와머니가 고마웠다. 잘만 하면 기울어진 회사를 다시 살리고 대출상환도 무사히 끝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업체에서 받은 대출은 갚아도 갚아도 원금이 줄지 않았고 결국 족쇄가 돼 정씨를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가장 큰 리스크는 연체였다. 정씨가 연체를 한 시기는 2014년 2월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부터다. 과거 비영리단체(NGO)서 일했던 정씨는 회사를 나온 뒤 새로운 마음으로 창업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목표가 명확했다. 사회에 의미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씨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회사 매출은 점차 감소했고 자금회수조차 어려워졌다. 수익이 쪼그라들면서 결국 회사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정씨는 8개월(232일) 간 장기연체를 했다. 연체 기간동안 청산절차를 밟으며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자금이 생기면 속속 납입했다. 이렇게 해서 올 1월까지 납입한 금액은 총 997만원. 1000만원을 빌려 997만원을 갚은 셈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돈을 갚아도 원금이 줄어들지 않았다. 최근 4차례에 걸쳐 400만원을 갚았는데 원금상환분은 ‘0’원이었다. 모두 밀린 이자를 상환하는 데 충당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원리금 240만원을 추가 납입했지만 그중 이자에 해당하는 금액은 160만원, 원금은 80만원에 불과했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대출 내역을 살펴봤다. 정씨가 그동안 상환한 금액(997만원) 중 원금으로 갚은 돈은 고작 150만원에 불과했다. 오히려 납입해야 하는 이자가 56만원 더 추가됐다. 1000만원 가까이 갚았는데 1006만원이나 남은 것이다. 게다가 상환과정에서 또 얼마만큼의 이자가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정씨는 개인회생을 선택했다. 20개월 연체기간 동안 그가 갚거나 갚아야 할 돈은 첫 대출을 받은 금액의 2배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원금이 이렇게 많이 남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다.
◆연체이자보다 무서운 고금리
정씨는 왜 고금리 족쇄에서 벗지 못한 것일까. 사실 대부업이 고금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대부이용자 중 연체 시 고금리가 어떻게 적용되고 얼마나 위험한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업체가 적용한 이자는 법정 최고이자율인 연 34.9%다. 따라서 연체하더라도 이자를 더 받는 것은 불법이다. 대부업체가 ‘연체이자가 없다’고 안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을 살펴보면 얘기가 다르다. 연체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 빚을 상환할 때 원금을 줄이지 않는 구조로 사실상 연체이자를 받는다. 이른바 고금리의 함정이다.
정씨의 경우 원리금균등납입방식으로 40만원씩 갚는다. 이 40만원 안에는 이자와 원금이 포함돼 있다. 다만 연체되면 똑같이 40만원을 내더라도 연체된 기간만큼 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 원금상환금액이 줄어든다.
연체로 이자를 많이 내고 대신 원금을 줄이지 못하면 남아 있는 원금은 계속 이자를 발생시켜 지속적으로 이용자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연체기간만큼 더 많은 금액을 한번에 납입해 원금을 상환하는 방법밖에 없다.
서민금융을 자처하는 대부업 특성상 이용자의 가계상황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연체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연체의 위험성을 이해하는 이용자는 거의 없다. 정씨는 “대출할 때 이자는 36.5%이고 매달 40만원씩 납부하면 된다는 안내만 받았을 뿐”이라며 “연체 시 그만큼 원금상환이 적어지고 이자만 납입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와머니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안내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출계약을 맺으면 전체기간에 해당하는 상환계획서를 발급해준다”며 “연체이자를 더 받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불법적 채권추심 행위란?
채권추심원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거나 대부이용자 상당수가 추심에 관한 법률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불법적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아래와 같은 불법행위를 당할 경우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1332)와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1644-0120)에 신고하면 된다.
1. 채무자의 외모나 지능 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행위
2. 채무자가 기초수급자·장애인 등 취약계층임에도 TV·냉장고 등을 압류하는 행위
3. 거짓 소식을 전해 채무자를 기절시키거나 심한 충격을 받게 하는 행위
4. 채무자를 때릴 듯이 손발을 휘두르거나 물건을 던질 듯한 행위
5. 부모 등 제3자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겠다며 공포심을 유발하는 행위
6. ‘아이들 등·하굣길 조심하라’는 등 제3자를 위협하는 행위
7. 사무실이나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문 앞을 가로막는 행위
8. 오전 8시부터 저녁 9시 이외의 시간에 방문·전화하는 행위(방문 허용횟수: 주 2회, 전화 허용횟수: 1일 3회)
9. 사전에 방문계획을 알리지 않고 채무자의 집이나 직장을 방문하는 행위
10. 생활에 필요한 의복·침구·부엌기구 등을 매각해 변제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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