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의 자랑, 풍동실험실
“이곳에 설치된 저울은 50억원쯤 하고요, 볼펜 하나를 올려둬도 무게를 잴 수 있을 만큼 민감합니다.”
풍동실험실 안내를 맡은 연구원의 첫 번째 자랑이다. 지난 16일 기아차 니로의 사전공개 행사 때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공력 소움 풍동실험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평소엔 얼씬도 못할 비밀스런 공간이지만 이날만큼은 예외였다.
실험실에 들어서기 위해선 입구 뒤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한다. 고생 끝에 마주한 드넓은 장소엔 차 한 대가 덜렁 놓여있었다. 옆과 위 벽엔 삐쭉 솟은 구조물들이 규칙적으로 붙어있고 무언가 측정할 때 쓸 법한 장비 몇 개도 걸려있었다. 막혀있지 않은 곳은 어둡고 커다란 공간이 보일 뿐이다.
이곳은 ‘바람’과 관련이 있는 시설이다. 영어로는 '윈드터널'(wind tunnel)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자동차 설계에 따른 바람의 영향을 평가하는 곳이다. 주행시 생길 수 있는 공기저항이나 소음 따위를 측정해 승차감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엔진 냉각 성능을 비롯해 다양한 기능평가도 가능하다.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썰매를 만들며 공력 성능을 테스트한 곳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시험은 실제 도로를 달리며 진행하지만 풍동은 바람을 만들어서 테스트하는 점이 다르다.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다.
연구원이 설명한 50억원짜리 저울은 바람 불 때 자동차의 3방향 밸런스를 측정하는 장비다. 이 때의 기록은 주행시 안정성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바람을 만들어내는 건 메인 팬의 역할이다. 회전직경이 8.4m에 달하는 탄소복합재 9개 날개를 돌리기 위해선 무려 3400마력의 힘이 필요하다. 풍동의 핵심장비 중 하나며, 국내에서 가장 큰 직경의 송풍기다. 날개와 벽면의 간격은 5mm 이내로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메인 팬이 만들어낸 바람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긴 터널을 따라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설계됐다. 그래서 전체 시설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길이x너비x높이가 102x59x16(m)에 달한다.
한참을 설명하던 연구원은 실험실로 바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인 ‘노즐’의 크기를 강조했다. “크기는 가로 7m, 높이 4m입니다. 노즐 크기에 따라 평가할 수 있는 차 사이즈가 결정되죠. 이곳의 노즐은 승용차부터 크지 않은 트럭까지 적용되고요, 버스는 절반 크기로 만들어 모형 풍동에서 테스트합니다”
바람의 흐름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파라핀계 오일을 태워 연기를 흘려보낸다. 실험실 사진이나 자료영상에서 보던 기다란 흰 연기의 정체다. 이곳의 최대풍속은 시속 200km(초속 55m)며, 보통은 60km에서 180km사이에서 진행된다. 이날 시연은 시속 50km였다.
◆100억원 들여 지면제어장치 추가… 품질향상 기대감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타이어 주변 공력성능을 개선하는 점이 마지막 과제였다. 1999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실험실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컸고, 해외업체들도 바퀴가 움직이지 않는 실험을 했다. 물론 바퀴가 움직이지 않기에 실 주행 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양연구소는 지난해 100억원을 들여 지면제어장치를 추가했다. 차 하부 움직임을 살피기 위한 것으로 실제 주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바퀴를 돌리며 시험할 수 있다. 이 장치는 해외 몇 개의 대형 제조사들 외엔 아직까지 갖추지 못한 주요 설비다.
이와 관련해 연구소의 관계자는 “자동차에 있어 공기역학은 비행기만큼 중요한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엄격해지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효율을 쥐어 짜내야 하는데 낭비되는 부분을 줄이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제대로 된 실험실조차 없어서 모형을 만들어 테스트하거나 해외로 실차를 보내 데이터를 얻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풍동 설비에서 갖출 수 있는 건 거의 갖춘 상태다. 이젠 직접 만드는 자동차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건 기본, 해외 경쟁사들의 다양한 데이터도 보다 쉽게 모을 수 있다. 결국 자동차 품질이 상향평준화 되는 추세에 사소한 차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절박함의 결과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