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56)이 자신이 갖고 있던 증권사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기록을 또 한번 경신했다. 지난달 24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유 사장의 재선임안이 통과되면서 9번째 연임에 성공한 것. 한국투자증권의 이사 및 감사위원의 임기가 1년이니 10년째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키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증권사의 CEO 평균 재임기간이 3년 남짓인 것과 비교하면 꽤 오랜 기간 지휘봉을 잡는 셈이다. 2007년 47세의 나이에 사장 자리에 오른 것까지 따지면 ‘최연소’와 ‘최장수’ 두개의 타이틀이 따른다.
◆칼바람도 비껴간 실적관리
증권업계에 지속되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유 사장의 모습은 또 하나의 성공스토리를 쓴다. ‘나홀로’ 흑자를 내며 한국투자증권을 최고의 증권사 대열에 올려놓은 유 사장의 경영 노하우는 무엇일까. 우선 그가 실적관리의 귀재로 불리는 이유부터 살펴봤다.
유 사장의 연임 비결은 실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2007년 3월 한국투자증권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후 1년 만에 영업수익을 전년 대비 63.5%나 끌어올렸다. 또 순이익은 45.7% 급신장시켰다. 2008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적자전환의 아픔을 맛봤지만 이듬해 다시 흑자로 돌려놨다.
한국투자증권은 업황부진으로 증권업계가 몸살을 겪을 때마저 성장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최대규모 순이익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25.9% 증가한 2848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2007년 이후 8년 만에 최대실적을 달성했다. 유 사장이 실적관리의 귀재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2010년 초반 증권업계가 실적 부진에 시달릴 때 한국투자증권을 순이익 1위 증권사에 올리고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 때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한 일이다.
◆수익구조 안정 ‘체질개선’
한국투자증권의 거침없는 성장은 유 사장의 독보적인 이익창출능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증권사들은 성과 위주의 경영환경에서 체질을 개선하는 게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실적이 나빠지면 CEO 교체가 당연하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그러나 다른 증권사의 예상과 달리 수익구조 변화를 위한 유 사장의 승부수가 통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대부분의 증권사가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위탁매매수수료 의존도를 과감히 낮췄다. 2012년 2509억원이던 위탁매매수수료 수익이 지난해 3분기 1725억원으로 줄었다. 대신 투자은행(IB) 수수료 수익을 508억원에서 709억원으로 끌어올리며 체질을 개선했다.
또 자산관리(WM)에도 무게를 실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마련했다. 고객가치 창출을 통한 자산증대가 회사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담보로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자산관리 효율성이라는 목표를 최우선에 두고 모든 평가와 보상, 고객관리, 교육, 조직문화 등을 새롭게 정비했다.
유 사장의 지휘로 한국투자증권은 증권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칼바람에서 비껴갔다. “증권업계에서 사람이 빠져나가면 컴퓨터와 사무실만 남는다”는 유 사장의 지론처럼 한국투자증권 직원의 평균 근속기간은 다른 증권사에 비해 긴 10년6개월이다.
4000여명의 증권사 직원이 직장을 떠난 2014년에도 한국투자증권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150명의 승진 인사 단행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또 다른 증권사들이 인력과 지점을 축소할 때 한국투자증권은 신입사원을 예년 수준으로 뽑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10년 장수 CEO시대 열다
증권업계에서는 유 사장의 행동력과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평가한다. 이는 그가 시도한 도전과 열정에서 비롯된다. 특히 대우증권 재직시절 7년간 영국 현지에서 쌓은 성과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그는 1992년 런던 현지법인에 발령난 후 투자 불모지나 다름없던 영국에서 한국투자를 이끌어낸 주역이다.
당시 그는 영국이 제임스 본드의 나라인 점에 착안, 사진의 영문이름을 ‘제임스’라 짓고 영업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국내 주식시장 하루 전체 거래량의 5%를 혼자 매매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주식을 사고 싶으면 제임스 유를 찾아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 사장은 한국투자증권 사장을 맡은 후 직원들의 신뢰와 오너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회사를 이끌었다. 이 역시 그가 증권업계에서 최장수 CEO시대를 열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유 사장은 직원과 격의 없이 카카오톡을 주고받을 만큼 다정다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쁜 와중에도 신입직원이든 간부든 자기에게 메일을 보내면 24시간 내에 답장하는 등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오너의 지원 역시 그가 9번째로 연임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계열사 사장의 연임은 좋은 실적 때문”이라며 “믿고 맡겼으니 실수가 없고 실적 등에서 큰 문제가 없다면 오래 하는 것이 맞다”고 신뢰를 표했다. 김 부회장은 2002년 유 사장을 직접 찾아가 한국투자증권(옛 동원증권) 부사장 자리를 제안한 인물이다.
유 사장은 이미 사내외에서 모두 인정하는 CEO다. 그가 한국투자증권에서의 10년째 역사를 어떻게 써내려갈지 주목된다.
☞프로필
▲1960년 경북 안동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92년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 ▲1999년 메리츠증권 상무 ▲2002년 동원증권 홀세일본부장 ▲2006년 한국투자증권 기획총괄 부사장 ▲2007년 1월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부사장 ▲2007년 3월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2011년 금융투자협회 회원이사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