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역사드라마 KBS1 <장영실>이 지난달 26일 24회로 막을 내렸다. 새해 벽두에 첫 방영된 이 드라마는 백발노인 장영실(송일국 분)이 허허벌판을 걷다가 땅에 누운 채 지난 삶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 장성휘(김명수 분)-장영실 부자가 동래현 일식을 기다리는 모습과 태종 이방원(김영철 분) 부자가 개경 수창궁에서 일식을 기다리는 모습이 대비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회에서는 사대부가 장영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그의 업적에 대한 기록을 삭제하려고 한다. 세종(김상경 분)은 장영실을 지켜주려 하지만 역모로 몰린 자를 구하면 성군이 될 수 없다면서 장영실은 자신을 버려달라고 세종에게 간청한다.
결국 장영실은 장형 100대의 처벌을 받은 후 정신을 잃고 세종은 그의 기록을 그대로 두도록 한다. 세조시대에 공주가 찾아오고 정신을 차린 장영실은 여생을 과학기술을 연구하며 세상을 떠도는 것으로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끝났다.
시청률(닐슨코리아)은 한때 14.1%까지 올랐지만 이후 10~11%대 시청률에 머물다 종영했다. 대중적인 흥행 성공공식엔 부합되지 않았지만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보기 드문 역사극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본 시청자가 많았다.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여 일본을 비롯해 중국, 태국, 홍콩, 호주, 뉴질랜드 등 12개국에 수출이 확정됐다. 성공 스토리의 사극을 선호하는 일본 바이어들은 신분제도의 모순 등 여러 역경을 극복하고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가 된 장영실의 일대기에 매력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관노비에서 종3품 대호군까지
장영실의 출생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세종 15년(1433년) 9월16일 세종실록(61권)에 “행사직(行司直)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라고 적혀 있다. 세종실록의 기록과 다르게 장영실의 아버지 장성휘의 본관 아산 장씨 족보에는 ‘장영실은 항주 출신인 장서의 9세손으로 부친 장성휘는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망명한 귀화인의 후손’이라고 쓰여 있다.
아산 장씨 시조인 장서는 송나라의 대장군이었는데 금나라 침입 시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하다 뜻이 맞지 않자 조선에 망명해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에 자리 잡고 그의 후손들은 본관을 아산으로 삼았다. 장서가 조선에 귀화할 때 역법, 천문, 군사기술을 가져왔기 때문에 후손들이 고려에서 대대로 천문지리학과 무기 관련 고위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장영실의 아버지 장성휘도 다섯형제와 함께 장관급 직위를 지냈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유교의 엄격한 질서가 지배해 천민신분인 관기나 관비 소생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신분이 높더라도 관노비가 됐다. 장영실도 어머니가 천민인 관기였기 때문에 아전 아래에서 궂은일을 맡는 관노비였다.
드라마에서는 동래현 관기의 아들이던 은복이 장씨 문중 제사에서 아버지 장성휘를 처음 만나 장영실이란 이름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장영실은 업신여김 당하며 살아가는 노비였음에도 별에 대한 꿈을 키우며 과학자로 성장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장영실은 세종이 즉위하기 전 태종에게 발탁돼 궁중기술자로 첫발을 내딛었다. 세종은 세종3년(1421년)에 장영실을 다른 몇사람과 함께 중국에 유학 보냈고 귀국 후 세종5년에 종5품인 상의원 별좌에 임명, 천민신분에서 벗어나게 했다.
상의원은 임금의 의복과 궁궐의 금은보화를 맡아보는 관청이었기 때문에 금속기술에 능한 장영실을 임명했을 것이다. 세종6년에는 병조 오위의 정5품인 행사직으로 승진, 세종14년에는 천문의기사업팀을 조직해 이듬해 혼천의, 간의, 보루각 자격루를 완성했고 정4품 호군으로 승진했다. 세종16년 7월1일 보루각 자격루 시간이 국가표준시간으로 채택됐고 조선의 종합왕립천문대인 간의대가 건립됐다.
장영실은 세종19년에 주야겸용 천체시계인 일성정시의를 만들었고 세종20년에는 흠경각 자격루와 천문관측기구를 모두 완성했다. 이 해 종3품 대호군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세종24년에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해 곤장을 맞고 삭탈 파직됐다. 실제 역사에는 드라마와는 달리 장영실이 물러난 이후의 활동기록이 없다.
◆당시 세계 최고, ‘자격루’·‘측우기’
과거의 기술은 물론 중국의 기술에도 만족하지 않았던 장영실의 탐구정신이 이뤄낸 가장 뛰어난 업적은 자동시보장치가 있는 물시계 자격루다. 한자로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을 가진 자격루는 중국의 물시계, 이슬람의 자동시보장치원리, 비잔틴지역의 기술인 지렛대 동력전달장치 등을 결합해 만든 당시 세계 최첨단기술의 집합체였다.
해외에서도 조선 초의 이 기술력이 세계 최고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장영실이 개발한 측우기 역시 뛰어난 발명품으로 세계기상기구(WMO)가 정한 측정 오차범위 안에 들 정도의 정밀도를 나타냈다.
장영실을 기리는 ‘과학자 장영실 선생 기념사업회’가 1969년 출범했고 1999년에는 장영실(국제)과학문화상이 제정됐다. 수상자는 세계 과학발전에 기여한 국내외 과학기술자나 국내 과학분야에 탁월한 공로가 있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다. 부산에서는 2003년 장영실과학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는데 2010년 부산과학고등학교로 개명했다. 장영실의 본관이자 가묘가 있는 아산시는 10월26일을 ‘장영실의 날’로 정하고 매년 축제를 열어 과학정신을 기린다. 또 2011년 아산시의 장영실과학관이 개관돼 물·바람·금속·빛·우주 등 5가지를 주제로 장영실의 업적과 현대과학을 보고 듣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부산시 동래구의 동래읍성 북문광장에는 2009년 장영실과학동산이 들어서 천문관측기구인 간의를 비롯해 세종시대의 과학기술 기구 19종 20점이 전시됐다. 자격루의 모형은 2007년 복원돼 서울 경복궁 경내 동쪽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자격루실에 전시됐다. 이 장소들을 자녀와 함께 방문하면 장영실에 관한 산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영실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비롯해 각종 위인전, 아동서적 등에도 수록됐다. 아이들이 다 아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흙수저 금수저’ 논란이 심해진 요즘 세상에 재조명할 가치가 있다. 천민신분으로 태어나 과학에 대한 실력을 인정받아 면천을 했고 고위직까지 오른 그의 삶은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변모한 입지전적인 스토리’로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 국가경제발전은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산업이 얼마나 앞서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되다시피 한다.
개인도 과학기술연구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는 시대다.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꾸준히 나온다면 사회 전반적으로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과학을 전공하고 연구하려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을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