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 어디 갔어? 이 대리도 자리에 없네.”

한국 회사들의 사무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장면이다. 대부분 사무실은 창가 쪽에 부서 책임자의 책상이 배치돼 있고 그 앞으로 부서원들의 책상이 일렬로 놓여 있다. 자리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책상만 보면 누가 자리를 비웠는지 금방 알 수 있는 구조다.


미국 역시 일반적인 회사의 풍경은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사무실 구조가 바뀌고 있다. 디자인과 같은 창의성이 중시되는 부서뿐만 아니라 대부분 부서가 이른바 실리콘밸리 스타일로 변신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직원들의 업무 성과를 높일 수 있고 부서간 협업이 필요한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자리에서 오래 일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직업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서재에서 일할게요… 필요하면 문자 주세요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무 공간 설계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간 전통적인 사무실 디자인이 크게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사무실 공간은 고정돼 있고 직원들은 지정된 개인 책상에서 일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지금은 직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

최근 '호텔링'(사무실이나 자리를 상황에 따라 옮겨 다니는)이나 '핫 데스킹'(지정된 자리가 없고 업무가 부과될 때에만 책상을 이용하게 하는)을 도입하는 사무실이 크게 늘었다. 직원들이 오늘은 어떤 자리에 앉아 일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사무실 인테리어 역시 다양한 형태의 가구가 배치돼 마치 일반 가정집이나 호텔 라운지 같은 형태로 변하고 있다.

노아 산토스 홈폴리시 공동 설립자는 “10년 전에는 모두가 칸막이가 있는 좁은 공간에서 일을 했다”며 “점차 협업을 위해 개방된 형태로 사무실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폴리시는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 벤모(Venmo)와 전자상거래업체인 길트(Gilt)의 사무실을 디자인한 곳이다.

산토스 설립자는 “사람들을 좀 더 연구하면 모두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며 “어떤 이들은 방음이 잘 된 곳에서 일하길 원하기 때문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협업이 강조되면서 사무실 공간이 개방형으로 바뀌고 있지만 오히려 일부 직원들에게는 성과를 제대로 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국제시설관리협회(IFMA)에 따르면 지난해 조사에서 기업의 58%가 많은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자유공간을 확대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최근 2년 사이에 공동 작업 공간에서 일하거나 지국과 가정에서 일하는 직원이 증가했다고 답한 비율도 50%에 달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무공간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하게끔 탈바꿈하고 있다. 개별 직원을 위해 벤치를 설치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가구들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농장 스타일의 큰 테이블을 갖다 놓은 사무실도 생겼다. 디자인과 가구 업체인 놀의 앨래나 스티븐스 최고마케팅책임자는 다른 형태의 가구나 공간은 직원들이 일하는 동안 옮겨 다니면서 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이같은 흐름에 다소 뒤처져 있다. 2014년 사무가구업체인 스틸케이스와 시장조사업체인 입소스가 17개국 1만2000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일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미국이 48%로 세계 평균 51%에 못 미쳤다.

모바일 기술의 발전도 사무공간 혁신에 기여했다. 직원들이 노트북이나 태블릿PC를 활용하면서 과거처럼 데스크톱에 목맬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핫 데스킹, 네트워킹 증진

많은 회사들이 이미 ‘핫 데스킹’을 실험하고 있다. 컴퓨터는 물론 책상까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은 손쉽게 사무실을 바꿔가면서 일할 수 있다. 덕분에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이미 10년 전부터 ‘호텔링’을 적극 활용했다.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 건물에 마련된 다양한 장소에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딜로이트(뉴욕)의 카렌 오레후엘라 회계사는 “당신이 사교적이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시도는 회사 입장에서도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외근이 많은 회사의 경우 굳이 직원마다 책상을 배치할 필요가 없다. 한 직원이 외출한 사이 다른 직원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식으로 1개의 책상을 서너명이 공유할 수 있어서다.

‘행복의 길’ 저자인 엠마 세팔라 스탠포드 대학 교수는 직원들이 일과 중에라도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오히려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칸막이로 막힌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호텔 로비처럼 꾸며진 곳에서 쉬는 편이 더 피로를 빨리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시간을 늘리는 것이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아니다.

◆스탠딩 데스크, ○○○○ 없으면 효과 없어

하지만 최근 크게 유행하고 있는 서서 일하는 것은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건강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것은 심장병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회사들은 직원들이 서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책상을 구매하는데 수천달러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직원들의 활동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빈약하다.

최근 직업병을 연구한 코크런 워크 그룹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앉아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사무실 환경 변화가 직원들의 이동성을 늘린다는 근거는 빈약하거나 결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엘런 헤지 코넬대학교 교수는 이같은 결과에 대해 사무실 환경을 변화시켰지만 건강 교육을 병행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회사가 새로운 사무기기를 들여오면서 어떻게 쓰는지를 교육했지만 왜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왜 중요한 지를 사람들이 이해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서 일할 수 있는 책상을 도입하고 직원들이 보다 활동적이 되도록 사무실 가구 등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직원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사무실을 설계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을 더 눈에 띄도록 바꾸고 쓰레기통을 자리에서 멀리 치워버리는 것도 직원들을 많이 움직이도록 해 직업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헤지 교수는 “20분간 앉아서 일하고 8분은 서서 일하는 것이 좋다”며 “30분당 2분 정도는 걷는 것이 최고의 일하는 습관”이라고 덧붙였다.
계단이 엘리베이터보다 더 접근이 쉽도록 설계한 한 회사의 경우 직원들이 하루에 1400걸음을 더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걷는 것은 뇌에 산소를 공급하고 집중력 향상과 피로 감소에 도움을 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