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내집연금 3종세트 출시를 앞두고 불만을 터뜨렸다. 오는 25일 출시를 앞둔 가운데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간 보이지 않는 마찰이 빚어지는 형국이다. 시중은행들은 개인종합자산관리(ISA) 출시 때와 다르게 내집연금 3종 세트 홍보를 최소화하는 분위기다.

고객이 문의해도 아직 금융당국으로부터 정확한 지침을 받지 않아 알 수 없다고 안내하기 일쑤다. 사실상 사전가입을 꺼리는 상황. 사전예약을 받고 가입 건수 올리기 경쟁에 나섰던 ISA 출시 때와 사뭇 다른 양상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내집연금 3종 세트 출시방안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실제로 <머니위크>가 국내 대형은행 두곳의 콜센터에 내집연금 3종 세트를 문의한 결과 “아직 상품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 안내하기 어렵다”며 “25일 출시까지 기다려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전예약을 받기는커녕 가입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는 여러 이유 때문이다. 우선 역마진 우려가 있다. 일반적으로 정책금융상품은 금융회사보다 고객에게 혜택이 더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은행권에선 금융당국이 이에 대한 손해까지 모두 은행에 떠넘긴다며 울상이다.

반면 금융당국은 역마진이 날 수 없는 구조라고 반박한다. 시장금리에 따라 합리적인 금리를 책정했고 가입 건수에 따라 은행에 별도의 인센티브도 지급할 예정이라는 것. 하지만 은행권은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간 핑퐁게임이 계속되면서 정작 고객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내집연금 3종 세트 출시를 앞두고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간 마찰을 짚어봤다.


◆규제 완화되고 혜택 넓어지고

우선 개정된 내집연금 3종세트 내용을 살펴보자. 이 상품은 정부가 가계빚을 줄이고 주택연금을 활성화하기 위해 선보인 상품이다. 지난 1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6월 중 선보일 계획이었는데 ‘한국금융공사법 시행령’ 개정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출시 시기가 두달가량 앞당겨졌다.

상품은 ▲우대형 주택연금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 ▲주택연금 연계형 보금자리론 등 총 3가지다. 이중 우대형 주택연금은 기존보다 8~15%가량 연금을 더 주는 상품이다. 집값이 1억5000만원 이하인 저가주택 보유자(부부기준 1주택자)가 가입대상이다. 80세 때 1억원짜리 주택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이전(48만9000원)보다 13% 늘어난 55만4000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은 40~50대가 보금자리론으로 집을 살 때 60세가 되면 주택연금에 가입하겠다는 약정서를 쓰면 은행이 금리를 0.15%포인트 깎아주는 상품이다.

이미 일시상환·변동금리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40~50대가 보금자리론(분할상환·고정금리)으로 갈아타면서 동시에 주택연금 약정서를 작성하면 대출금리를 0.3%포인트 낮출 수 있다. 할인받은 이자는 60세 연금 전환시점에 한번에 지급된다.

이를테면 45세인 남성이 보금자리론 대출 1억원을 받아 집을 사면서 추후 주택연금에 가입한다고 약정서를 작성하면 주택연금을 받는 60세 때 우대이자 148만원을 돌려받는다. 주택담보대출과 주택연금이 연계된 상품도 나온다. 일시 인출한도를 기존 50%에서 70%로 늘린 상품인데 3억원짜리 집을 맡기면 연금의 70%인 8610만원을 한번에 받아 빚을 갚고 나머지는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판매를 장려하기 위해 가입 건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다만 구체적인 인센티브 내용은 아직 협의 중이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을 이용 중인 60세 이상 고령자의 대출잔액이 평균 690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수요를 대부분 흡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팔수록 역마진, 울상 짓는 은행

이처럼 금융당국이 제시한 지침을 보면 내집연금 3종세트는 사실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이를 판매하는 은행들은 상품판매를 꺼리는 분위기다. 이 상품은 고객이 가입하면 사망할 때까지 계속 연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장기적으로 부동산가격이 떨어지고 100세 시대에 돌입한 우리나라 사회구조상 은행권의 손해가 불가피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에서는 처음부터 이 상품의 판매를 주저했는데 금융당국이 반강제적으로 참여를 유도했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당국은 은행권에 정확한 지침도 내리지 않은 상태다. 사실 은행 콜센터에서 상품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A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알고 있는 내용은 (금융위원회가) 보도자료로 공개한 내용이 전부”라며 “우리에게 별도로 관련 지침서나 설명서를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 역시 “당장 다음주에 상품이 판매되는데 금융당국에서 이와 관련된 자세한 서류를 아직 보내지 않았다”며 “고객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안내해야 하는지 (실무부서조차) 헷갈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직원도 눈에 띈다. C은행 관계자는 “은행창구로 문의전화가 오지만 하루 1건도 채 안된다”며 “가입여부보다는 연금의 내용을 궁금해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우대형 주택연금과 관련 “그동안 매달 받는 연금액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기존보다 고작 7만원가량 더 올리는 데 그쳤다”며 “반쪽짜리 연금상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절하했다.

일부 은행 관계자는 아예 함구했다. 자칫 금융당국에 찍힐(?) 것을 우려해 즉답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관계자는 “상품내용이 워낙 복잡해 실무담당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자료와 동영상을 준비 중”이라며 “늦어도 이번 주(19일) 초까지는 (상품) 판매를 위한 최종준비를 끝낼 예정이다. 25일 출시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