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뇨병을 앓는 A씨. 오늘은 석달 만에 병원을 찾는 날이다. 특별히 준비할 건 없다. 손목에 찰 웨어러블기기만 있으면 된다. 이전 같았으면 식단과 운동량을 빼곡히 적은 ‘당뇨수첩’을 가장 먼저 챙겼겠지만 스마트한 시대에 수첩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병원에 들어선 후 진료상담을 받기 전 익숙한 기기로 피검사를 한다. 집에도 있는 체외검사기기다. 피를 묻히자마자 정상이라는 검사결과가 나온다. 상담실로 들어서자 의사가 컴퓨터로 오늘 검사결과와 지난 석달 동안의 식단, 당수치 등 A씨의 기록을 훑어보고 있다. ‘A씨의 바이오의료건강정보’라고 적힌 화면엔 정상범위 안에서 곡선을 그리는 그래프가 보인다. 오늘도 A씨는 혈압과 유전정보를 고려한 맞춤형 약과 맞춤형 영양제를 처방받았다. 집에 와서 손목에 찬 웨어러블기기를 보니 2.75km를 걸었다. 이 또한 A씨의 바이오의료건강정보에 추가됐다. 


스마트 헬스케어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전세계적인 인구 고령화로 각광받는 헬스케어산업. ‘장수시대’지만 ‘무병시대’는 아닌 현실이 1인당 헬스케어 관련 지출을 늘린다. 특히 IT와 헬스케어가 결합한 스마트 헬스케어는 대표적인 미래형 산업으로 부상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11년 840억달러(한화 약 97조원)였던 전세계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시장규모는 2016년 최소 1150억달러(한화 약 132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바일 디바이스가 건강컨설턴트가 되는 시대. 개인의 빅데이터가 한곳에 모여 하나부터 열까지 맞춤형 의료서비스가 가능한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사진=이미지투데이

◆디바이스가 나만의 컨설턴트로
차세대 건강 컨설턴트는 아이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이 기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사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서다. 2014년 애플은 개방형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헬스킷’을 공개했다. 헬스킷은 애플의 헬스케어사업에 핵심역할을 한다. 애플워치를 포함한 다양한 웨어러블기기와 건강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수집된 생체정보가 헬스킷으로 모여 통합관리된다.


애플의 앱인 ‘헬스’는 이용자의 몸무게, 체질량지수 추세를 그래프로 보여주고 자가입력된 다이어트, 운동 등에 대한 데이터를 관리한다. 애플은 가까운 미래에 수집된 개인별 생체정보를 미국 최대 전자의료기록(EHR)업체 중 하나인 에픽시스템에 연계해 비영리 의료기관인 메이요 클리닉으로 전송할 예정이다. 개인의 바이오의료건강정보를 바탕으로 체질과 활동량에 꼭 맞는 식단을 추천하고 운동을 권장하는 ‘애플 컨설턴트’의 탄생이 머지않았다.

애플은 더 나아가 헬스케어 관련 앱으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미래를 그렸다. 지난달 진행된 애플 이벤트에서 제프 윌리엄스 애플 최고운영책임자는 앱으로 파키슨병에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수집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존스홉킨스, 스탠포드의대 등 주요 병원에서 파키슨병 연구계획을 세운 것. 아이폰이 유저의 컨설턴트 역할을 넘어 원인불명의 질병 연구에도 활용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애플기기를 사용하는 마니아들을 기초로 한 ‘애플 질병 보고서’가 발간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내 스마트 헬스케어시장도 ‘나만의 주치의’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중에서도 미국 NASA에 진출한 스타트업 BBB가 개발한 ‘엘리마크’는 개인 주치의의 꿈을 한발 앞당겼다. 체외진단기기인 엘리마크를 사용하면 소량의 혈액을 기기에 떨어트려 혈당,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등을 관리할 수 있으며 면역분석을 통해 임신, HIV, 결핵 등의 진단도 가능하다.


이 체외진단기기가 미래형 스마트 헬스케어의 선두주자인 이유는 바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혈액검사 데이터가 무선네트워크를 통해 기기와 클라우드 서버에 실시간으로 저장되고 관리된다. 일일이 수기로 작성하지 않아도 돼 기록의 누락이나 오류 없이 정확한 수치관리가 가능하다. 기기에 남겨진 기록들은 자신이 다니는 병원과 연동돼 혈액검사 추이로 최소 51개 이상의 질환관리가 가능하다.


체외진단기기 ‘엘리마크’. /사진제공=BBB

◆스마트 헬스케어의 ‘확장성’
모바일 헬스케어 디바이스는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가졌다. 우선 기기에 앱 설치가 가능하다. 이를테면 웨어러블기기와 연동되는 피트니스 트래커 앱 ‘핏빗’과 식단을 기록하면 자동으로 섭취한 칼로리를 계산해주는 식습관 관리 앱 ‘눔’을 설치해 한 기기에서 활동량과 식단, 혈액검사 추이까지 한번에 관리할 수 있다. 이렇게 또 하나의 결합된 빅데이터가 탄생해 나만의 맞춤형 관리가 가능해지고 나만의 주치의가 생기는 것이다.

축적된 빅데이터의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료행위 주체인 의사나 간호사에게도 편리한 미래가 펼쳐진다. 기기가 구비된 병원에서 입원환자의 혈당검사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여러 환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정확한 의료진단이 가능하다.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독거노인과 같은 왕진이 필요한 환자들은 그 자리에서 즉각 검사할 수 있으며 멀리 떨어진 보건소 의사가 환자관리용 데이터 서버에서 바로 확인한다. 혈당 결과가 위급하다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여기에 사물인터넷 기반 심전도 측정기,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는 지능형 무선 약뚜껑 등의 디바이스가 가미되면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미래지형도는 더욱 풍성해질 전망이다.

현재 태동단계인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은 고령화시대에 의료비 절감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스마트 헬스케어로 당뇨병 환자의 외래진료비가 절감되고 입원율과 합병증 발병률이 50% 감소하면 5년간 2조원의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웨어러블기기와 유무선 네트워크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국가 의료비용 절감 효과와 국민의 의료서비스 선택권 확대 등 복지개선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최윤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와 개인정보 등 법제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개인의 건강·의료정보를 토대로 맞춤형 건강관리를 받는 날이 곧 올 것”이라며 “이 형태가 스마트 헬스케어의 가장 이상적인 에코시스템”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