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콘텐츠산업을 이끄는 게임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PC·온라인’에서 ‘모바일’로 게임의 흐름이 전환되는 시기와 맞물린 ‘규제폭탄’에 성장세가 꺾인 것. 전체 콘텐츠산업 수출에서 게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반이 넘는다. 하지만 국내 게임업계는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규제와 더 강력한 규제논의 속 ‘규제포비아’에 시달린다. 이는 투자위축으로 이어지며 국내 게임업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세계 유일’ 강제적 게임이용 제한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게임산업 규제정책의 전환 필요성 및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14년 기준 약 1234억달러(139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한국시장 규모는 40억2236만달러로 중국(222억2719만달러), 미국(219억6249만달러), 일본(123억2886만달러)에 이어 4위다. 특히 국내 게임산업 수출액은 약 31억달러로 우리나라 콘텐츠산업 전체 수출액 가운데 55.2%를 차지한다.
하지만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에 게임산업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도입된 게임규제는 크게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강제적 셧다운제’(2011년 11월20일 시행)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 본인 및 친권자 요청 시 설정한 시간 이외에 게임 이용을 차단하는 ‘선택적 셧다운제’(2012년 7월1일 시행) ▲게임이용자의 게임아이템 구매한도를 정한 ‘웹보드 게임규제’(2014년 2월23일 시행) 등 3가지다.
여기에 ▲학생들이 게임을 2시간하면 10분간 접속을 차단하고 이후 2시간 경과 시 접속을 아예 불가능하게 하는 ‘쿨링오프제’ ▲셧다운제 시간 확대 및 게임업계 매출의 1%를 게임중독치유기금으로 징수하는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손인춘법, 2013년 1월 발의) ▲게임을 술·도박·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보건복지부의 관리를 받게 하는 ‘게임중독법’(신의진법, 2013년 4월 발의) 등 더 강력한 규제도입이 논의 중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강제적 게임이용 규제에 이어 게임을 마약에 비유한 법안까지 발의되며 게임업계는 급속도로 움츠러들었다. 법안발의를 주도한 손인춘·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모두 20대 국회 진출에 실패한 데다 여소야대로 정국이 바뀌며 해당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낮아졌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미 확산될 대로 확산된 상태다.
실제로 셧다운제를 도입한 2011년 8조8047억원이었던 게임시장규모는 2012년 9조7525억원으로 10.8% 증가한 것을 끝으로 성장세가 꺾였다. 2013년에는 -0.3%(9조7197억원)로 역성장했고 2014년에는 2.6%(9조9706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게임업계 종사자도 지속적으로 줄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게임업계 종사자는 2011년 5만1839명에서 2014년 3만9221명으로 25%가량 급감했다. 한국게임학회 관계자는 “정부규제로 인해 게임업체 수가 2010년 2만여개에서 2014년 1만4000여개로 30%가량 줄었다”며 “웹보드 게임규제가 시행된 이후에는 관련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70%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장세가 꺾이며 국내투자는 크게 위축됐다. 그 빈자리를 텐센트 등 중국기업이 채우며 국내에서의 영향력을 키웠다. 전세계 1위 게임업체 텐센트는 2014년부터 ▲넷마블게임즈 5300억원(지분 25%) ▲네시삼십삼분 1300억원(지분 24%) ▲파티게임즈 200억원(지분 14%) ▲카본아이드 100억원(지분율 10%) 투자 등 국내 유명 게임업체들의 지분을 대거 사들였다.
지난 3월8일에는 중국 대형게임업체 아워팜이 NHN엔터테인먼트의 웹젠 지분 전량(19.24%)을 2039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중국의 거대자본이 각종 규제로 인해 돈줄이 말라가는 국내 게임업계를 잠식하는 것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국내 게임업계의 우수한 인력과 기술을 습득해 이제는 우리의 기술력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면서 “아직 미흡한 그래픽이나 디자인 분야 등은 파격적 조건을 내세워 지속적으로 국내의 우수한 인력을 빼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게임 규제 놓고 갈지자 행보
국내 게임산업의 성장둔화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자 정부가 뒤늦게 기존 규제프레임을 다소 완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업계의 요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다. 또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규제완화를 외치는 반면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규제강화 기조를 유지해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지난 2월 정부는 웹보드게임에 대한 규제를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일부 개정해 ▲월 결제한도 상향(30만→50만원) ▲베팅한도 상향(1회 3만→5만)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웹보드게임에 대한 정부 관점은 여전히 문화나 오락이 아닌 유사 도박”이라며 “이 정도 수준의 규제완화로는 실질적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역시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해 “정부가 ‘콘텐츠 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해외 주요국의 규제상황은 어떨까.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소위 게임선진국으로 평가받는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민간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게임산업을 관리한다. 나아가 예술·문화와 관련된 창조산업으로 인정하고 가치제고를 위해 각종 지원정책을 추진한다. 특히 미국은 게임중독도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가정에서 통제가 가능한 ‘양육의 문제’로 인식한다.
중국의 경우 2005년 게임을 ‘전자 헤로인’으로 지칭하며 온라인게임 5시간 이상 금지, 폭력적 게임 금지 등 강력한 규제를 추진했으나 게임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해당 규제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자 2010년부터 자율적 규제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대형게임업체 한 관계자는 “모바일 중심으로 게임의 패러다임이 바뀌며 이제 게임은 모두가 여가시간에 가볍게 즐기는 오락문화의 일종으로 자리잡았다”며 “게임을 마약처럼 없애야 할 ‘악’으로 취급하는 것은 글로벌 경쟁이 펼쳐지는 게임시장 트렌드에 역행하는 것이자 관련 산업 종사자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사기를 위축시키는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김수연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게임을 예술의 일종으로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까지 수용하기는 힘들겠지만 세계 4위의 경제적 가치와 ICT, SW, 캐릭터산업 등으로 확산되는 산업적 가치를 지닌 문화산업으로서의 게임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웹보드게임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