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의 ‘알파고’ 로보어드바이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많은 자산가는 로보어드바이저가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자산관리사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현직에 있는 PB(프라이빗뱅커)들은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을 어떻게 생각할까. 예상보다 미온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 대다수 로보어드바이저가 자산관리 수익률의 열쇠를 쥐어 줄지 의문을 제기한다. 왜일까.
<머니위크>는 우리나라 시중은행의 자산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김창수 KEB하나은행 PB센터장, 장인태 신한은행 PB팀장, 민은옥 우리은행 PB팀장, 한승우 KB국민은행 PB팀장 등 4명의 베테랑에게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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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산관리 노하우 앞서
인터뷰에 응한 PB들은 ‘로봇PB’가 사람에 비해 노하우가 없는 점을 우려했다. 또 로보어드바이저의 ‘자산관리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방대한 투자정보가 오히려 투자자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
전통적인 금융투자전략을 살펴보면 방대한 투자정보는 오히려 투자자에게 독이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말처럼 하나의 투자목표를 명확히 세우는 것이 투자 변동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투자전략으로 꼽힌다.
더욱이 공격적인 투자로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역설적으로 수익 가능성이 높은 데이터를 신뢰해선 안된다. 모두가 다 아는 정보로 시장의 끝자락에 뛰어들어 높은 가격에 사고 낮은 가격에 파는 ‘고점 매수·저점 매도’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어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투자자산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패시브상품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PB는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상품과 패시브상품을 아우르는 데 반해 로보어드바이저 전략은 패시브상품에 쏠려 있다는 것. 또 로보어드바이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한 위기국면을 겪은 적이 없고 수익률 통계에 대한 신뢰를 쌓기엔 도입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창수 KEB하나은행 PB센터장은 “수년간 고액자산가들은 데이터가 아닌 PB를 보고 돈을 거래해왔다”며 “로보어드바이저가 투자에 대한 포트폴리오 이상으로 재무설계·상담서비스를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PB의 자문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완전판매 책임은?
불완전판매 시 투자자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점도 약점으로 꼽혔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제공한 자문이 고객에게 부적합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책임소재가 모호하다는 것.
은행들은 전문적인 자문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PB에게 엄격한 직업윤리와 책임의식을 부여한다. 신한은행은 전문성과 자기계발, 윤리의식 등 종합적인 검증을 통해 PB팀장을 선발한다. 아울러 고객가치 향상을 자산관리 본연의 임무로 여기고 이를 위해 PWM센터와 PB팀장 평가에 고객수익률을 반영한다.
실제로 고객수익률을 직원평가와 성과급에 연동한 신한금융투자의 ‘고객수익률 평가제도’는 고객의 자산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1년간 신한금융투자의 금융상품 잔액은 13조원(30.2%) 증가한 56조1000억원을 기록했고 고객 총자산도 97조1000억원으로 전년대비 20조8000억원(27.3%)이나 늘었다. 최근엔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출시되면서 자산을 맡긴 금융회사와 자산관리전문가의 책임의식이 더 중요해지는 추세다.
장인태 신한은행 PB팀장은 “로봇은 고객에게 데이터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만 PB는 고객의 자산관리에 책임의식을 갖는다”며 “고객의 평생자산을 책임진다는 신념으로 자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도 훨씬 적다”고 말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기술적 오류도 우려되는 점이다. 로보어드바이저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한계로 과적합(오버피팅)의 오류를 제기한다. 인공지능이 학습과정에서 훈련된 데이터의 특징을 과도하게 해석하다가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알파고가 대전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 때문에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듯이 로보어드바이저도 시장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자칫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산관리 대중화 ‘기대’
다수의 자산관리시스템에는 유명한 물리학자나 수학자의 이름이 붙은 경우가 없다. 뛰어난 물리학자나 수학자가 쿼트시스템을 만들어 헤지펀드를 운용했다는 투자시장의 유례도 자산관리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고객의 자산관리는 한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립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시장의 변동성, 고객의 투자성향 변화 등 무수한 경우의 수도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한승우 KB국민은행 PB팀장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앞으로 시장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해 다양한 투자전략을 수립하는 수준까지 진화할 것”이라며 “뉴스나 보고서 등의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이 개발되면 은행의 자산관리수준이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현재 로보어드바이저에 거는 가장 큰 기대는 자산관리의 대중화다. 자문보수가 투자자문인력의 25%에 불과해 다수의 고객이 부담없이 자산관리를 받을 수 있다. 또 고객을 24시간 응대할 수 있어 소비자 편익도 증대될 수 있다.
민은옥 우리은행 PB팀장은 “은행은 로보어드바이저로 적은 비용과 시간 안에 객관적인 투자정보를 제공해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다”며 “나아가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밀레니엄세대에게 자산관리를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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