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사진=뉴스1
정부가 조선업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면서 해당 업종에 자금을 쏟아 부은 국책은행의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두 업종의 회사가 대출을 갚지 못하면 국책은행은 고스란히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조선·해운업 관련 대출액은 20조원이 넘는다. 산은과 수은이 대우조선해양에 빌려준 여신은 각각 4조원, 9조원으로 총 13조원에 달한다. 한진해운에는 각각 7000억원과 500억원, STX조선해양에는 1조9000억원, 1조4000억원을 빌려줬다. 이밖에 산은은 현대상선에 1조2000억원, 수은은 성동조선해양에 2조3000억원이 물린 상태다.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으로 빌려준 돈이 부실화되면 두 은행의 부채는 대규모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 기준 산은과 수은의 부채비율(부채 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은 각각 811%와 644%에 달한다. 지난해 STX와 성동조선해양 등에서 발생한 부실로 부채비율이 100%포인트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부채비율은 그 이상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건전성지표인 BIS비율도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산은의 BIS비율은 14.28%, 수은은 10.04%를 기록했다.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15%를 밑도는 수치다.
◆시중은행 기업대출 옥죄기 시작, 중소기업 대출도 축소
시중은행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따른 후폭풍을 안심할 수 없다. NH농협은행을 제외하고 조선·해운기업에 빌려준 금액이 적은 편이지만 관련 중소기업의 대출도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에 시중은행이 갖고 있는 위험노출도(위험여신)는 전체 1조620억원 가운데 약 20%인 2190억원이며 KEB하나은행 860억원, 우리은행 690억원, KB국민은행 560억원이다. 앞으로 은행들은 담보가 없는 기업의 대출을 줄이고 대출한도를 보수적으로 제한할 방침이다. 특히 조선·해운업계와 중소기업에는 적극적으로 기업대출 규모를 늘리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관계자는 "조선·해운업계의 신규 대출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철강 등 전반적인 업권이 불황인 업종에도 대출심사를 깐깐히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부터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옥죄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대출태도지수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태도는 지난해 4분기부터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대출태도지수가 마이너스면 대출심사가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한, 우리, KB국민, KEB하나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의 올해 1분기 기준 기업대출 총 잔액은 354조9510억원이다. 그 중 대기업대출은 79조2542억원, 중소기업대출은 272조8187억원이다.
◆국책은행에 한은까지… 부실 떠안기 해법일까
금융당국은 조선·해운업계의 부실채권을 떠맡게 될 국책은행에 수혈하는 방법으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할 방침이다. 한은이 국책은행의 신종자본채권이나 후순위채를 인수해 국책은행의 BIS비율을 높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국책은행에 유동성을 보강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한은의 자본확충 지원에 힘을 실어줬다.
현재 산은법은 자본금 30조원 이내에서 정부가 51% 이상 출자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출자대상이 정부로 명시됐기 때문에 한국은행 등의 직접 출자는 법으로 막힌 상태다. 그러나 산은법에 출자대상이 정부와 한국은행으로 개정되면 한은의 자금지원이 가능해진다.
이번 한은의 국책은행 출자는 부실기업의 자금조달 부담이 국책은행을 넘어 한국은행까지 떠안는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업종이 부실해질 때마다 수억원의 부실을 떠안았던 국책은행의 역할이 한은에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선 정부가 별다른 로드맵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국책은행과 정부은행에 맡기는 정책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산은과 수은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떠안았지만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쳐 대우조선의 추가 부실이 더 커졌다. 그동안 두 국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 4조원을 투입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은 4000%에 달한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부채비율이 각각 220%, 309%인 것과 비교해도 20배 이상에 달하는 규모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십조원의 혈세를 퍼준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을 제때 구조조정하지 않아 동반 위기에 처했는데 별다른 로드맵이 없는 상황에 한은이 참여하면 중앙은행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국책은행을 넘어 중앙은행의 자금이 추가되면 논란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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