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에서는 흔히 도쿄와 디트로이트, 제네바, 파리,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모터쇼를 세계 5대 모터쇼라고 칭한다. 이들 모터쇼는 도쿄를 제외한 4곳이 100년 넘는 모터쇼 역사를 지녔고 제네바를 제외하고는 대형자동차 생산국에서 개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모터쇼의 영향력은 ‘비교불가’였다. 완성차업체들은 전세계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수많은 신차들을 이 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했고 콘셉트카를 통해 미래 방향성을 선보였다.

하지만 최근 이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5대 모터쇼만큼이나 주목받는 모터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베이징모터쇼와 상하이모터쇼. 격년으로 번갈아 열리는 이 두 모터쇼는 14억 인구와 2600만 내수시장을 등에 업고 완성차 업계 ‘초유의 관심사’로 거듭났다. 질적으로는 다소 부족하지만 중국에 특화된 전략으로 쇼에 임하는 완성차업체들 때문에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25일 언론공개일을 시작으로 개막한 ‘2016 베이징모터쇼’(오토차이나 2016) 현장에서 중국시장을 대하는 완성차업체들의 열기를 느껴봤다.

G드래곤이 등장한 현대자동차 부스에 많은 관람객이 몰려있다. /사진=최윤신 기자
보쉬 부스에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있다. /사진=최윤신 기자

◆ 중국을 위한 자동차들… 특화모델 향연
올해 베이징모터쇼엔 완성차와 부품업체 등 참가한 업체만 2500여곳이며 1170대의 차종이 전시됐다. 월드프리미어(세계최초공개) 모델이 33종에 달하는데, 이들 중에는 오로지 중국에만 존재하는 특화모델도 다수 섞여있다. 완성차업체들이 수출할 때 선호옵션 등을 감안해 조정하는 일은 있지만 이런 ‘특화’ 모델은 판매볼륨이 큰 중국이기에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먼저 고급브랜드들은 중국시장의 특성을 반영해 휠베이스를 늘린 ‘롱 휠베이스’ 버전의 모델을 다수 선보였다. 중국의 부호들이 넓은 실내공간을 선호하기 때문에 특화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베이징 거리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 차종 중 하나는 아우디 A8의 길이를 늘린 모델인 ‘A8 L’이었다. 2010년 베이징 모터쇼에서 최초로 선보인 이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우디는 이번 모터쇼에서는 ‘A4’의 길이를 늘린 ‘A4 L’을 최초 공개했다. 역시 중국 시장을 위해 개발된 모델이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신형 E클래스의 롱휠베이스 버전을 최초로 선보였다. 이 차량은 기존 E클래스 보다 차체 길이가 14㎝ 더 길다. 재규어 역시 최근 출시한 XF 모델의 롱휠베이스 버전을 처음 선보였다.


차체 늘리기는 세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BMW는 중국 시장에 특화된 소형 SUV ‘뉴 X1’ 롱휠베이스 버전을 공개했다. BMW는 중국에서 이미 구형 X1의 롱 휠베이스모델로 큰 판매고를 거둔 바 있다.

이번 모터쇼에서 현대차는 중국형 신형 ‘베르나’ 콘셉트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 차는 중국 20~30대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만들어진 도심형 소형세단이다. 우리나라에서 2009년에 단종된 모델이지만 중국에서 지속 출시되다가 이번 모터쇼에서 콘셉트카로 재탄생했다. 한류스타 G드래곤이 타고 등장해 모터쇼 프레스데이 최고의 화제모델로 등극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베르나뿐 아니라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중형급 엔트리 세단 밍투(MISTRA)를 중국에서만 선보이고 있으며 기아차 역시 K2, K4, KX3 등 중국시장 전용 모델을 다수 생산한다.


패러데이퓨처 FF01. /사진=최윤신 기자
치안투모터-K50. /사진=최윤신 기자

◆현지업체 ‘장족의 성장’ 눈길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만들어낸 자동차보다 더 눈을 끈 것은 현지업체들의 눈부신 성장이었다. 모터쇼 현장에서 만난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카피캣’으로만 평가됐던 중국업체들이 장족의 발전을 거뒀다”며 “성능과 가격 모든측면에서 기존의 완성차업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지업체가 만드는 차종은 저가형 SUV에 집중된 모습이다. 2.0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중형 SUV가 10만위안(한화 약 1800만원)이 채 안되는 경우가 많다. 재원상 성능도 국산차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고 내장 마감품질 등도 큰 부족함이 없었다. 디자인은 일부 글로벌 브랜드의 자동차와 다소 비슷한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이전처럼 무작정 배끼는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로 중국 현지브랜드 SUV의 판매량은 대폭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합작브랜드의 소형세단을 살 가격으로 한 단계 높은 SUV를 살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중국인들이 토종브랜드의 SUV를 선택한다고 한다. 이런 SUV의 급성장을 통해 지난해 중국 현지업체들의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30.6%까지 상승했다. 중형이하의 대중차를 만들던 외산합작브랜드의 점유율이 급감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라는 게 현지 업계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업체들이 단순히 저가 SUV에서만 두각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은 큰 오산이다. 전기차의 경우 우리나라 업체들보다 오히려 앞서있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가장 눈에 띄는 업체는 중국의 테슬라, 페러데이 퓨처(FF)다. 지난 1월 CES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FFZERO1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그 화제성을 입증했다.

중국 전기차 부문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의 비야디(BYD)는 EV300을 비롯해 7종의 전기차를 선보이며 업계를 긴장시켰다. 현지 관계자는 “중국업체는 정부의 적극적인 ‘친환경차 육성책’ 아래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1800만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지급하고 베이징의 경우 제한된 번호판 지급중 약 40%를 전기차용으로 배정하는 등 적극적인 친환경정책을 펼친다.

심지어 무인차를 선보인 브랜드도 있었다. 중국 창안자동차는 이날 자체 개발한 무인자동차 ‘루이청’을 공개했다. 이 차는 본사가 있는 충칭에서 모터쇼가 열리는 베이징까지 약 2000㎞거리를 무인 기술로 달려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