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를 관람한 많은 사람들은 영화 속 꼬리칸 승객의 유일한 식량인 검은 단백질 블록이 바퀴벌레를 정제해 만들었다는 걸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설국열차>가 한창 촬영 중이던 시기에 미국의 두 젊은이는 귀뚜라미를 이용한 식품제조에 나섰다. 미국의 식품브랜드 엑소의 창업자 그레그 스위츠와 가비 르위스가 그 주인공인데 이들은 귀뚜라미를 가공해 단백질바를 만들었다. 항간의 우려와는 달리 6%의 귀뚜라미 파우더를 함유한 이 에너지바는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났다.
루이스 로드리게즈 3디지털쿡스 창업자가 자신이 개발한 3D프린터를 이용해 음식을 출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새로운 맛과 영양 찾아라
‘푸드테크’는 기존의 식품관련 서비스를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ICT)기술과 접목한 산업을 일컫는 신조어지만 용어의 포괄성 덕분에 최근에는 먹거리와 관련한 모든 차세대기술로 그 범위가 확장됐다. 지금은 식량의 생산부터 저장, 가공을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 전과정에서의 기술을 총망라하는 의미로 쓰인다.
이에 음식의 가장 주된 목적인 ‘먹는 즐거움’과 ‘영양분 공급’에 푸드테크의 수많은 기술이 집중된다. 미식가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분자요리’는 새로운 맛을 찾는 푸드테크의 대표적 사례다.
음식을 분자단위까지 연구·분석한다고 해서 붙은 이 조리법은 음식의 질감 및 요리과정 등을 분석해 새롭게 변형하거나 확연히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재창조해내는 작업을 뜻한다. 유럽 등지에서 시작돼 국내 레스토랑들도 속속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 액화질소 등의 물질을 이용해 액체상태의 식재료를 고체로 바꾸거나 레시틴으로 거품 같은 식감을 내는 등의 방법이 최근 주로 사용된다.
식물성 원료로 고기를 만드는 기술도 이제는 꽤나 대중화됐다. 미국 스탠포드대 생물학 교수인 패트릭 브라운이 설립한 임파서블푸드는 아몬드와 마카다미아오일 등 식물성 재료만을 이용해 만든 패티와 치즈로 햄버거를 만든다. 이뿐 아니다. 또 다른 미국회사인 햄튼크릭은 10여가지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마요네즈를 만들고, 비욘드미트는 콩으로 소고기와 닭고기의 맛을 재현한다.
이 기술들은 ‘대체식량’에 대한 요구에 의해 점차 확산되는 중이다. 유엔FAO(UN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보고서에 따르면 축산업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약 18%를 차지하며 이 양은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을 모두 합친 13.5%보다 높은 비중이다.
세계의 고기생산과 소비량은 2050년까지 70~80% 더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고기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전세계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고 식물성 고기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심지어 실험실에서 만든 고기도 존재한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 연구진은 2013년 소의 근육조직 줄기세포를 배양해 쌀알 크기의 인공육 조직 수천개를 다졌고 흰색인 근육세포에 색소 단백질을 넣어 고기처럼 만들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곤충 또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의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한국과학기술원이 개발한 요리로봇 ‘씨로스’.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요리사 대체하는 푸드테크
맛과 영양뿐 아니라 인간을 요리의 ‘수고로움’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기술로서의 푸드테크도 많은 관심을 받는다. 배달음식이 아니라 주방에 설치된 로봇이 원재료를 조리하는 것.
영국의 로봇업체 몰리로보틱스는 지난해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기본적인 조리과정을 행하는 로봇 셰프 ‘로보틱 키친’을 선보였다. 내년 상용화 예정인 이 로봇은 조리대에 붙어있는 2개의 팔 형태로 20개의 모터와 24개의 관절, 129개의 센서를 이용해 요리한다. 인간은 스마트폰이나 터치스크린을 통해 로봇 키친에 등록된 요리 플랫폼에서 레시피를 선택하면 된다.
놀라운 것은 이 로봇이 유명 셰프와 똑같은 손놀림을 보인다는 것이다. 3D모션 캡처기술을 활용해 스타 셰프의 손놀림과 조리순서를 학습해 그대로 재현할 수 있으며 업데이트되는 레시피를 내려받아 새로운 요리를 만들 수도 있다. 현재 몰리 홈페이지에는 48가지의 요리가 등록돼 있다.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연구가 있다. 지난해 열린 ‘대한민국 식품대전’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공개한 로봇 ‘씨로스’가 사람의 주문을 받아 오이를 썰고 샐러드를 만드는 모습을 선보였다.
인간의 요리를 대신하는 푸드테크는 인간의 손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프린터로 요리를 ‘찍어내는’ 방향으로도 발전했다. 3차원으로 만든 설계도와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플라스틱이나 금속 등의 원재료를 조형해 실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3D프린팅 기술을 ‘먹거리’로 확장한 것이다.
일반 3D프린터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이나 금속원료가 아닌 초콜릿, 크림, 반죽 등을 사용해 ‘요리’를 찍어낸다. 초기에는 초콜릿, 사탕 등에 한정됐지만 지금은 만들어내는 요리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열린 테크 플러스에는 스페인 3디지털쿡스 창업자 루이스 로드리게스가 직접 방한해 자신이 개발한 3D프린터로 그릭요거트, 단호박 퓨레 등의 음식을 출력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나아가 파스타와 빵 등의 제조도 가능해졌다. 내추럴 머신의 3D 푸드프린터 ‘푸디니’는 반죽이나 페이스트를 원료로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와 빵을 만들 수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조만간 프로그래밍된 조리법을 다운로드 받고 재료를 투입해 요리를 프린트하는 기계를 가정마다 구비할 날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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