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점점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지난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2016'에 참석한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이 ‘소프트웨어 삼성’을 선언했다. 하드웨어 강자인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 의지를 밝힌 것. 삼성전자는 2012년 첫 선을 보인 타이젠 운영체제(OS)를 중심으로 스마트폰·가전·자동차·집을 잇는 ‘스마트홈’을 목표로 세웠다. 과연 삼성전자가 꿈꾸는 ‘타이젠홈’ 시대가 열릴까.

◆‘타이젠연합’의 몰락


타이젠은 삼성전자와 인텔이 주축이 돼 구글의 안드로이드, 애플의 iOS에 대항하기 위한 ‘제3의 OS’를 지향했다. 그러나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의 판매량이 11억대를 기록했다. 모바일OS시장 81.4%를 점유하는 압도적인 선두다. 그 뒤를 이어 애플iOS가 2억3150만대를 기록, 16.1%의 점유율을 보였다. 3위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모바일이 차지했고 타이젠은 1%에 못 미치는 점유율을 보이며 4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독자적인 모바일OS ‘바다’의 쓰라린 실패 후 2012년 리눅스재단 안에서 인텔·후지쯔·NTT도코모·화웨이·SK텔레콤·KT·LG유플러스·오렌지텔레콤·보다폰·NEC 등의 든든한 연합군과 함께 타이젠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타이젠 연합’의 결속은 몇차례 무산된 타이젠폰 출시와 주축 회원사의 탈퇴로 무너졌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사진제공=삼성전자

현재 타이젠 연합의 정식 이사회 기업은 삼성전자, 인텔,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4개사로 줄었다. KT와 보다폰, 오렌지텔레콤 등은 현재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KT는 보다폰, 오렌지텔레콤 등과 함께 자문역할을 하며 타이젠과 협력하고 있다”며 “타이젠이 답보상태여서 지난해 초 자문역할로 지위를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스마트폰제조업체인 화웨이도 이사회에서 물러나 자문으로 이름이 올라있지만 이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2014년 리차드 위 화웨이 컨슈머비즈니스그룹 대표가 “타이젠폰을 출시할 계획이 없다. 우리는 타이젠이 성공할 기회가 없다고 느꼈다”고 밝히며 타이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데 이어 화웨이는 “타이젠 자문 관련 담당자를 확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함께 타이젠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텔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인텔의 타이젠 담당자는 당초 부사장급이었지만 현재는 디렉터급으로 격하됐다. 담당자도 수차례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인텔 관계자는 “타이젠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타이젠 생태계 구축의 꿈

이렇게 홀로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는 타이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타이젠이 탑재된 스마트밴드 ‘기어핏2’를 공개했다. 앞서 안드로이드 웨어 스마트워치인 ‘기어 라이브’를 단종시키고 타이젠이 탑재된 스마트워치 ‘기어S2’를 출시한 데 이은 독자적 행보를 지속하는 것. 실제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타이젠OS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 웨어러블기기를 중심으로 타이젠 생태계 확산을 꿈꾸는 삼성전자의 시도는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시장조사업체 캐너코드 제뉴이티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시장 총 영업이익의 91%를 차지했다. 스마트폰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가 애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이유 중 하나는 독자적인 OS를 가진 애플은 스마트폰을 파는 만큼 이익을 챙기고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판매 이익의 대부분을 플랫폼 업체인 구글에 지불하기 때문. 이것이 삼성전자가 플랫폼에 목말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업계는 타이젠 생태계 확장에 부정적이다. 생태계가 구축되기엔 사용자들을 유인하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 전세계 애플리케이션시장 규모는 지난해 520억달러(약 61조7500억원)에 달하지만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의 앱스토어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타이젠 앱스토어는 좁은 틈새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앱의 수도 구글과 애플은 수백만개에 달하지만 타이젠은 수천개뿐이다. 강기환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 연구원은 “외부기관도 타이젠 콘텐츠에 대해 관심이 크지 않다”며 “당초 타이젠 연합이 크게 출범했지만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타이젠이 탑재된 삼성전자 퀀텀닷 디스플레이 SUHD TV. /사진제공=삼성전자

◆‘타이젠홈’ 구현될까
이에 삼성전자는 앱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국내외 대학에서 타이젠의 원리와 타이젠 자체 앱 개발로 분야를 나눠 강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성균관대에서 타이젠의 원리에 대한 수업인 ‘운영체제론’을 강의하는 신동군 교수는 “삼성전자와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신 교수는 “타이젠 개발 초기에는 모바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됐지만 현재는 사물인터넷(IoT)형 플랫폼에 중점을 뒀다”며 “IoT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여서 가전에 강점을 가진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가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다. 디바이스나 가전제품에 타이젠이 많이 깔리면 타이젠폰도 덩달아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스마트TV, 패밀리 허브 냉장고, 로봇청소기 등 프리미엄 가전제품에 타이젠을 탑재했다. 일부 가전제품은 개별 타이젠 앱스토어도 운영 중이다. 그야말로 ‘타이젠홈’ 구축을 시작한 것.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구글과 애플로 양분되는 스마트폰 앱스토어시장에서 타이젠은 메리트를 가지기 힘들다”며 “현재 진행되는 양상으로 볼 때 제품에 탑재돼 연동하는 타이젠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IoT가 구현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