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카드사는 일방적인 통보라며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비자카드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고 있다. 문제는 수수료가 인상되면 소비자가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점이다. 해외이용수수료율은 모두 소비자가 내기 때문이다. 비자카드와 국내카드사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진=이미지투데이
◆해외이용수수료 놓고 공방
첫번째 쟁점은 해외이용수수료에 대한 양측의 해석이 서로 다른 점이다. 국내카드사는 ‘비자카드의 일방적 횡포’라고 주장하는 반면 비자카드는 ‘소비자가 아닌 카드사에 수수료를 부과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비자브랜드로 해외에서 상품·서비스를 결제할 때 부과되는 수수료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신용·체크·선불카드를 비자카드로 지불할 때 발생하는 ‘서비스수수료’(Service Fee)와 거래승인 중계·데이터 송수신비용 및 시스템 사용료인 ‘데이터프로세싱수수료’(Data Processing Fee), 일부 회원에게 부과되는 ‘해외이용수수료’(Multicurrency and Single Currency International Service Assessment) 등이다.
이 중 서비스수수료와 데이터프로세싱수수료는 카드사가 부담하고 해외이용수수료는 소비자가 전액 지불한다. 현재 해외이용수수료는 1%로 한국 소비자는 해외에서 100달러(약 12만원)짜리 상품을 구입하면 101달러(12만1200원)를 지불한다. 비자카드는 해외이용수수료를 오는 10월부터 1.1%로 인상하겠다는 입장이다.
논란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국내카드사는 비자카드가 수수료의 각 항목을 단독결정해 업계에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에 소비자가 내야 하는 수수료도 비자카드가 정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비자카드가 해외수수료를 인상하면 결국 소비자에게 수수료 부담을 전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사 뒤에 숨어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자카드는 해외이용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얼마만큼 부과하는지는 국내카드사가 결정한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수수료와 관련된 사항은 비자카드와 카드사 간 B2B(Business to Business·기업대 기업) 계약관계일뿐 비자카드가 소비자에게 직접 부과하는 수수료는 전혀 없다는 게 비자카드의 항변이다.
비자코리아 관계자는 “소비자가 해외이용수수료 전액을 지불해야 할 근거가 없다”며 “한국에서는 이 수수료를 소비자만 부담하는 것이 관행적으로 굳어졌다. 이는 한국카드사가 소비자에게 수수료를 전가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애꿎은 소비자 불똥, 공방전 치열
국내카드사와 비자카드가 공방을 펼치는 모양새지만 이번 싸움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보는 대상은 소비자다. 여신금융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2015년 해외카드이용실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이용자가 해외에서 신용·체크·직불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총 132억달러가 넘는다. 이 가운데 1%인 1억3000만달러(1500억원)가량이 해외이용수수료로 비자에 지급된 셈이다.
막대한 금액의 수수료를 국내 소비자가 내지만 비자카드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에 대해 소비자가 비자코리아 측에 직접 항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비자카드 본사가 수수료를 정하고 비자코리아 측을 통해 한국 카드업계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말이 B2B 계약이지 사실상 종속관계”라며 “카드사들은 비자카드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동아시아 국가 중 한국만 인상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 소비자가 봉이냐’는 불만이 나온다. 비자카드와 같은 국제브랜드사인 ‘유니온페이’(Union Pay), ‘JCB’를 각각 보유한 중국과 일본은 제외한 채 국제브랜드사가 없는 한국만 수수료를 올렸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니온페이와 JCB를 가진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비자카드가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인상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제카드전문월간지 ‘닐슨리포트’(Lilson Report)의 지난 4월호에 따르면 중국 유니온페이의 발행카드비율은 지난해 기준 세계 53.1%를 차지했다. 비자카드가 29.0%, 마스터카드는 15.3%를 기록했다. 카드거래건수도 유니온페이는 전세계 13% 수준이다. 비자카드(55%)와 마스터카드(26%)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이와 관련 비자코리아 관계자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체적으로 수수료 인상을 단행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도 “다른 국가의 수수료 인상 건과 관련해선 말할 수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한국 카드사들이 과거 우후죽순으로 제휴카드나 공동발급의 형태로 카드시장에 진입했다”며 “노하우가 부족한 상태에서 비자카드와 종속된 형태로 계약을 맺다 보니 상호주도권을 잃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이어 “수수료가 비록 B2B계약 결과지만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선 관련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비자카드 수수료 정보 미공개, 왜?
카드결제 프로세싱전문사인 비자·마스터카드 등을 해외에서 이용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 논란은 10여년 전 미국에서도 발생했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비자·마스터카드를 포함해 미국 카드사들이 해외거래수수료(Foreign transaction fees)를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단체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당시 연방법원은 1996년부터 10년간 받은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되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 3월23일 미국 신용카드 조사업체인 ‘크레디트카드닷컴’에 기고된 ‘해외거래수수료’(Foreign transaction fees) 글은 “소송의 핵심은 수수료 담합의 종사자인 세 카드사가 수수료를 카드소지자에게 고지하지 않고 부과했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현재 비자코리아 측은 수수료 관련 정보를 소비자에게 직접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윤 선임연구원은 “비자카드가 스스로 공지를 하느냐 발급사를 통해 하느냐는 법적으로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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