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시대 개인 간 금융거래인 P2P(Peer to Peer)금융이 핀테크 바람을 타고 새로운 투자처로 떠올랐다. P2P금융은 대중(crowd)이 자금을 모아(funding) 기업에 투자하는 ‘크라우드펀딩’의 일환이다. P2P금융 거래는 다수의 소액투자자가 자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해주고 대출자는 투자자들에게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출자 입장에서는 6~14%의 중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6%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1년간 우후죽순 생겨난 P2P업체는 저마다 저금리로 대출이 가능하고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자 끌어모으기에 열을 올린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P2P금융 1위 업체인 렌딩클럽의 부실대출 정황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중국도 각종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에서도 P2P금융에 대한 잠재된 불안감이 터질 조짐이다. 국내 P2P업계에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의 정체를 파헤쳤다.

/사진=이미지투데이

◆P2P업체 난립… 실태파악 안돼
최근 1년간 IT스타트업(벤처)을 중심으로 수십여개의 P2P대출플랫폼이 생겨났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100여개 업체가 P2P대출을 진행한다. 그러나 정확한 시장규모와 수익률, 부도율 등의 정보를 확인하기는 힘든 상황. 그나마 잘 알려진 상위 20여개 업체를 기준으로 하면 지난해 12월 말 393억원에 불과했던 대출금액이 올해 5월 1170억원을 넘어섰다. 알려지지 않은 신생업체까지 포함하면 성장속도는 더 가파를 전망이다.

하지만 P2P대출 영역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중국과 미국의 사례를 비춰볼 때 지금과 같은 급성장은 머지않아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크다.


중국을 보자. 중국은 애초부터 각종 업체가 난립해 우려가 컸다. 2014년 대출상환율이 17.9%에 불과할 정도로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시장이 성장할 때까지 손 놓고 있던 중국정부는 지난해 9조원에 이르는 대출사기가 발생하자 뒤늦게 단속 의지를 표명했고 절반이 넘는 업체를 ‘불량’으로 지정했다.

중국과 달리 미국의 P2P시장은 우량업체 위주로 성장했다. 특히 P2P업계 모범기업으로 꼽히는 미국 렌딩클럽은 2014년 뉴욕증시에 상장할 정도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런데 최근 렌딩클럽의 부실대출 정황이 속속 포착되면서 미국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렌딩클럽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2200만달러(약 254억원) 규모의 대출을 제공한 것.

이는 지난 5월 렌딩클럽 이사회가 르노 라플랑셰 렌딩클럽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사퇴시키기로 결정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이사회는 라플랑셰 회장이 2200만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부당대출해줬으며 이 과정에서 자격기준을 맞추기 위해 대출신청날짜를 변경하는 서류조작이 있었고 이를 회사 임원 일부가 사전에 알았다고 밝혔다.

미국정부는 부랴부랴 P2P대출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내용의 주의보를 내렸다. 비교적 건실하다 여겼던 업체에서 이 같은 추문을 일으키자 미국 금융권 전반에 P2P대출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퍼졌다. 두 나라의 P2P시장은 시작이 달랐지만 P2P대출의 ‘거품’이 순식간에 꺼졌다는 점에서 운명을 같이한 셈이다. 

◆투자자 보호장치 미흡… 감독 ‘사각지대’

우리나라 P2P대출시장에도 위험성이 잠재돼 있다. 현재 P2P대출 이용자를 보호할 법적인 규제나 제도적 장치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검증되지 않은 P2P업체가 난립한 상태다. 금융권에서 P2P업계의 성장을 여전히 불안하게 보는 이유다.

특히 P2P대출 부실률 관리 역량에 회의적인 시각이 대다수다. 사업을 시작한 지 1~2년밖에 안된 P2P업체들이 유의미한 고객신용정보 및 신용평가 노하우를 보유하지 못한 데다 각 업체별로 부실관리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부족해서다.

한국SC은행은 지난 2005년 5~7등급 고객을 대상으로 10%대의 중금리 대출상품을 출시해 많은 고객을 끌어모았다. 누적대출액이 2조원을 넘어설 정도였지만 부실대출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연체율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SC은행은 결국 3년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에서도 대출자에 대한 기준을 촘촘히 짜는 등 대출부실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러워 하는 상황인데 P2P업체가 과연 물건의 등급을 정확히 평가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더 큰 문제는 금융당국에서도 P2P업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직 P2P금융 사칭주의보를 내리는 수준에 그친다. 관련법이 없어 전담부서조차 없는 상태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 등 각 부서마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기자의 전화를 떠넘기기 바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시장이 완전히 크지 않은 데다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는 움직이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아직은 투자자들이 고수익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전했다. 당장 규제를 적용하면 시장 진입 문턱이 높아지니 일단 클 때까지 두고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사고는 한순간에 터진다”… 대비 시급

물론 일부 P2P업체는 부실대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름의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 협회를 만들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부실에 대한 공동의 안전장치 마련을 검토 중이다. 개별업체 차원에서도 원금을 보호하는 펀드를 만들거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분산투자를 유도하는 등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다만 이런 노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전문가들도 업계의 자정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관련 법률 마련과 규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중국의 경우 P2P에 대한 법적 규제 미비가 시장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으나 대출사고, 도산, 사기 등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며 “국내 P2P업체도 공시와 투자금 예치 의무화, 대출수요자 정보 확인 등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P2P업계도 이 같은 의견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크라우드연구소 관계자는 “현재 P2P금융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면서도 “다만 금융 특성상 신뢰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받침대 역할을 해주는 중간단계의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