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겸손 미덕’까지 갖춘 걸까. 잘 나가는 네이버가 계열사의 IPO(기업공개)를 결정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경쟁업체에 비해 낮은 IPO가격을 내놨다는 점이다. 이는 네이버가 세상물정을 몰라서도, 자신감이 없어서도 아니다. 치밀하고 똑똑한 네이버의 셈법을 알아봤다.
◆경쟁업체에 비해 저평가된 라인
네이버가 자회사 ‘라인’의 상장을 공식 발표했다. 다음달 14일(현지시간) 미국시장과 15일 일본시장 상장을 목표로 라인의 IPO를 결정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DR(주식예탁증서) 형태로 상장될 예정인 점도 이슈다.
네이버 라인의 예상 공모가는 3만244원(2800엔)이고 공모 시가총액은 약 6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업체(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등)에 비해 라인의 IPO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말한다. 또 현재 네이버의 시가총액(23조7000억원)에 비해 라인 IPO 가치가 낮다는 분석이다.
한달 동안 해당 서비스를 이용한 순수 이용자수를 나타낸 지표인 MAU(월평균접속유저) 대비 실적을 비교해보면 라인이 경쟁업체보다 저평가됐음을 알 수 있다. 시가총액을 MAU로 나누면 ▲카카오 11만3569원 ▲페이스북 23만5153원 ▲트위터 3만6748원이다. 이에 비해 라인은 2만9128원으로 경쟁업체 대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ARPMAU(매출액/MAU)는 라인이 1658원으로 카카오(1185원)·트위터(1997원)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네이버가 손해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네이버의 ‘치밀한 계산’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라인 주식 100%인 1억7499만2000주를 보유했다. 라인이 해외상장을 위해 새로 발행하는 주식은 3500만주다. 라인은 상장 후 주가가 3만244원(2800엔)을 넘을 경우 525만주를 추가 발행할 방침이다. 아울러 라인 직원들은 2556만9000주에 달하는 주식교부형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가졌다.
이를 토대로 보면 상장 후 네이버의 라인 지분율은 72.7∼83.3%로 떨어진다. 다시 말해 이론적인 거래 가능 주식(유동주식) 비율이 16.7∼27.3%에 그친다. 지난 1분기 말 국내 상장사 1910곳의 유동주식비율이 평균 58.1%인 것에 비해 라인의 유동주식비율은 매우 낮다.
김학준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라인이 일본 내 공모주식 중 최대 65만주를 종업원 지주회에 배정할 예정이고 나머지 주식은 기관투자가가 쓸어 담을 가능성이 높다"며 "(라인의 IPO 결정 발표는) 사실상 주식 품귀현상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라인 주식을 이처럼 꽁꽁 묶어놓기로 한것은 네이버의 치밀한 계획이라는 게 업계의 평이다. 통상 미래성장가치를 반영해서 상장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네이버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 이유는 ‘경영권 방어’와 ‘네이버 주가’라는 두가지 프레임으로 분석할 수 있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스톡옵션 지분 12.4%를 제외하면) 네이버의 라인 지분율은 약 70%이고 라인의 유동주식비율은 30% 정도"라며 "라인에 대한 경영권 방어와 네이버에서 라인으로 빠지는 외국인투자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네이버가 라인의 IPO가치를 저평가한 것은 회사 경영권을 보호하고 주가 변동폭을 줄이기 위함"이라며 "유동주식이 적으면 거래 자체가 한산해져 주가 등락폭도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라인의 저평가가 치밀한 계산에 따른 시나리오라는 관점이 지배적인 반면 HMC투자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수요 예측일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며 "네이버가 라인의 IPO 가치를 저평가해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은 당연하다"고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네이버만 라인의 IPO 가치를 낮춘 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상장 시 IPO를 저평가한다”며 “기업이 그들의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비단 네이버 라인만의 전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현재 수요 예측기간이라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며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또 라인의 IPO 저평가와 관련해 "네이버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라인의 IPO를 저평가 한 것은 아니다"며 "라인은 별도의 주식회사 형태라 네이버가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라인 상장이 네이버에 미칠 긍정적 영향
라인의 일본과 미국 증시상장은 네이버 입장에서 이득이다. 먼저 투자재원 확보로 공격적인 사업전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또 브랜드인지도를 확보해 '가입자 기반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초과배정옵션이 행사될 경우 최소 1조2000억원 이상의 자금 확보로 1분기에 발표했던 광고확대 전략과 결제서비스 확대, MVNO(알뜰폰) 서비스 진출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일본,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4개국에 시장지배력이 국한됐던 글로벌 가입자 기반도 미국증시 상장으로 인지도 제고에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네이버라는 압도적인 국내 모바일검색의 시장지배력이 유지되는 가운데 해외에서의 적극적인 성장 도모로 완만했던 성장 기울기를 가파르게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네이버에게 라인 상장은 '양념'같은 존재다.
김동희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예상보다 낮은 지분율 희석(83.3% 지분율)과 라인의 유동성 부족으로 네이버의 투자메리트가 유효하다"며 라인 상장으로 네이버를 이탈하는 투자자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그는 "국내에서 네이버와 라인 가치는 쇼핑과 광고로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네이버 주가에는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