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업은행은 전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이상한 구조의 백화점 같다.” 한 외국계 구조조정기업의 인사가 한 말이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산업은행 자회사로 인수됐다가 이후 줄줄이 경영 정상화에 실패한 상황을 두고 비판한 것이다.
산업은행의 부실경영 논란은 정치권의 외압과 자회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신임사장 인선과정에서 낙하산으로 몸살을 앓는 대우건설도 그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 본점. /사진=머니투데이 DB
◆전문성 명분, 외부인사 영입 ‘도마 위’
대우건설 사장후보 추천위원회는 최근 박영식 현 사장의 후임 인선 도중 모든 채용절차를 백지화했다. 지원자격을 외부인사로 확대해 재공모를 실시하기 위해서다.
사장추천위원 5명 중 2명은 산업은행 경영진이다. 산업은행은 2010년 사모펀드 차입을 통해 대우건설 지분 50.75%를 인수한 대주주로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졌다.
문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정치권의 입김에 흔들리면서 전문성 없는 외부인사가 낙하산으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5월 말 신임사장 내부공모를 실시했다가 한달 반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돌연 채용기준을 변경했다. 새로운 신임사장의 자격기준은 ▲외부인사 허용 ▲교수·연구원 등 비전문가 배제 ▲대형건설사의 경영자 등 전문가 우대다. 재공모 결과 32명이 지원했다. 박영식 사장 등 대우건설 내부인사 6명 외에 외부인사 26명이 포함됐다.
이를 두고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재공모한 시점이 내부출신인 최종후보 2명의 면접을 진행한 후라는 점에서 ‘외압 논란’이 거세졌다. 이주환 전국건설기업노조 대우건설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최종후보의 면접까지 진행해놓고 굳이 재공모를 실시한 것은 상식적으로 내부인사를 배제하겠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해외사업에 능통하고 조직을 이끌어온 경험이 있는 내부의 전·현직 경영진을 배제하고 외부인사를 선임하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재공모 후 사장추천위와 산업은행은 조응수 전 대우건설 부사장과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잠정후보로 정했다. 사장추천위와 산업은행은 조만간 두 후보의 경영계획을 포함한 프레젠테이션과 면접을 진행한 후 최종후보를 선정할 방침이다. 대우건설 안팎에서는 산업은행이 박 전 사장을 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대우건설 노조는 공식입장을 통해 박 전 사장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가 주택사업 위주로만 경영 이력을 가진 데다 해외수주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지 않았고 2012~2016년 한국주택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정치권 인맥을 쌓은 것을 볼 때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라는 점이 반대이유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열린 사장추천위 회의 도중 산업은행 관계자가 회의장 밖을 서성이다가 “예, 의원님”이라며 전화를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대우건설 본사. /사진=머니투데이DB
이 실장은 “외부인사라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에 대한 전문성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우건설 노조는 낙하산 인사를 저지하기 위해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1인 시위를 단행한 데 이어 앞으로 반대투쟁에 돌입키로 결의했다.
◆경영 정상화 빌미로 “주가제고” 압박
박영식 사장의 임기가 지난 14일 종료됨에 따라 대우건설은 경영공백을 맞았다. 한때 국내 건설업계 시공능력 1위에서 현재 3위까지 떨어진 대우건설은 앞으로 더 큰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산업은행에 대우건설의 빠른 매각을 요구하면서 주가제고가 경영진의 1순위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은행은 그동안 경영진에게 주가제고를 위한 경영계획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인수배경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코스피시장에서 대우건설 주가는 산업은행이 인수한 2010년 1만원 초반대였으나 지난 7월14일 종가기준 5790원으로 떨어졌다. 투자금 3조원 중 절반이 넘는 손실이 예상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가를 높이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이뤄져야 하는데 산업은행은 투자손실을 최대한 줄이려고 외형성장과 다운사이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즉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지난해 대우건설이 3800억원대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과징금 20억원을 부과받은 데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 역시 일시적인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주가하락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대우건설이 과징금 취소 소송을 제기하도록 강요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치적 외압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무리하게 감행될 경우 대우건설의 기업가치 제고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게다가 정치권의 잇속 챙기기와 단기성과에 연연하는 폐해가 반복될 것이란 우려를 낳는다. 대우건설 노조 관계자는 “국내외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회사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치적 논리로 내부 혼란이 야기되고 조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이로 인한 책임은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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