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시장이 올해 환갑을 맞았다. 코스닥시장은 20세 성년이 됐다. 한국주식시장은 1956년 3월3일 대한증권거래소가 문을 열면서 역사의 시초를 알렸다. 조흥은행을 비롯해 12개에 불과하던 상장사는 60년 만에 2000여개로 늘었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14위의 주식시장으로 커졌다.
1996년 7월1일 유가증권시장 상장요건을 충족하기 힘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도 증시를 통해 자금조달을 쉽게 하도록 코스닥시장이 개설됐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코스닥시장은 혁신형 중소·벤처기업에 직접 금융지원 및 인큐베이터 역할을 수행한 결과 시장 개설 이후 코스닥기업의 총 자금조달 규모가 47조9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엔 코스닥시장 신규상장기업이 총 122개사로 2002년의 153개사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IPO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제2의 IPO붐이 조성돼 세계 주요 신시장 중 나스닥(275사)에 이어 2위의 상장실적을 달성했다. 1년 만에 3계단 올라선 것이다. 총 상장기업 수는 20년 전보다 3배 넘게 늘어났다.
/사진=이미지투데이
◆IT붐으로 벌떡 일어선 코스닥
20년 전 코스닥시장 개설 초기에는 시장 전체 하루 거래량이 1만주가 채 안됐고 거래대금은 10억원에도 못 미치는 날이 많았다. 당시 미국의 나스닥처럼 한국의 코스닥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마음에 드는 종목을 고른 후 지켜봐도 거래량이 아예 없는 날이 많아 매매가 힘들었다.
코스닥시장은 투자자에게 외면받아 제대로 활성화되지도 못한 채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반토막 이하로 추락하고 말았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유가증권시장과 더불어 코스닥시장도 회복됐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주 붐이 일어나고 나스닥지수가 폭등함에 따라 코스닥시장도 본격적으로 활성화돼 1998년 10월부터 2000년 3월 초까지 불과 1년 반 만에 코스닥지수가 저점대비 4.8배까지 올랐다. 투자자가 대거 유입되고 시장의 팽창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급등주들이 속출했다. 대부분 이 시기에 역사적인 대기록이 탄생했다.
새롬기술은 단순주가 기준으로 반년 만에 약 150배 올라 아직도 깨지지 않은 역대 최고상승률을 기록했다. 1999년 10월 1890원에서 12월 12만원으로 급등했고 이듬해 3월에는 28만2000원까지 오른 것이다. 폭등의 배경은 미국 내 자회사인 다이얼패드가 미국 전화회사 GTE와 협력, 인터넷을 통해 국내전화 및 국제전화를 무료로 이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무료전화 사용자가 광고를 보면 수익을 얻는 구조였지만 다이얼패드의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새롬기술은 2001년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광고를 보면 현금을 준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벤처기업 골드뱅크는 1998년 10월 800원이던 주가가 이듬해 16번 연속 상한가로 폭등, 5월에 3만700원까지 올랐다. 1세대 스타 벤처기업이었던 골드뱅크 창업자 김진호씨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7차례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2002년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패러다임 바꾼 코스닥 기업들
이처럼 닷컴 열풍이 뜨겁던 시절에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이 쏠린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했다가 실적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다음(현 카카오)이나 한글과컴퓨터처럼 당시 주가가 폭등했다가 버블붕괴와 더불어 폭락했지만 기업은 꾸준히 성장해 코스닥시장에서 우량기업으로 건재함을 과시한 종목들도 있다.
기술주 버블 붕괴 이후 코스닥시장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서 현재 시가총액이 200조원을 넘어섰다. 세계 주요 신시장에서는 미국의 나스닥, 중국의 차이넥스트(Chi-Next)에 이어 3위 수준에 도달했다.
20년 동안 시가총액 상위권의 특성도 많이 변했다. 1999년 말 코스닥 시가총액 최상위권은 한통프리텔, 한통엠닷컴, 하나로통신, 새롬기술, 한글과컴퓨터 등 통신·인터넷 관련주가 독차지했다. 2005년 말에는 NHN(현 NAVER),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아시아나항공, 하나로텔레콤, CJ홈쇼핑, 동서, GS홈쇼핑, 휴맥스, 포스데이터, 다음이 시가총액 1~10위를 차지했다.
올 7월15일 기준 시가총액 1위부터 10위는 셀트리온, 카카오, CJE&M, 메디톡스, 바이로메드, 로엔, 코미팜, 컴투스, 케어젠, 파라다이스 등으로 바이오 및 헬스케어 관련 종목이 절반을 차지했다. 코스닥에 등록된 후 덩치가 커진 NHN, LG텔레콤, 동서, 하나투어 등은 코스피로 자리를 옮겼다.
산업생태계에서 신성장동력이 어떤 분야에서 생기는지는 코스닥의 주도주 변화를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주도주는 90년대 말에 IT주가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다가 홈쇼핑, 여행주, 교육주, 게임주, 바이오주 등으로 다변화됐다.
홈쇼핑주의 부상은 사람들의 쇼핑방식 변화를 알렸고 교육주인 메가스터디의 주가는 2003년말 저점 대비 2008년 고점이 17배로 높아져 온라인 교육시장의 확대를 대변했다. 여행주는 해외여행객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임을 보여줬다. 하나투어의 2015년 주가는 2000년말 대비 65배나 올랐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외여행객 규모는 2002년 712만명에서 2014년에 1608만명으로 증가했다.
게임에 빠진 자녀 때문에 속상한 부모들의 마음 이면에는 게임주의 상승이 있었다. 온라인게임의 강자인 엔씨소프트 주가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최대 17배 올랐으며 매출비중이 온라인게임 30%, 모바일게임 70%인 조이시티는 2012년까지 최대 37배가량 상승했다. 모바일게임 비중이 100%인 컴투스는 지난해까지 56배 올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임의 패턴변화를 알 수 있다. 컴투스는 세계 최초로 휴대폰용 자바(JAVA)게임을 개발해 국내 모바일게임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바이오주의 경우 2004년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황우석 박사 열풍이 불면서 조아제약 주가가 1년 만에 40배 넘게 급등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13위까지 올랐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셀트리온이 시가총액 1위로 부상하면서 바이오주들이 코스닥의 주도주로 안착하는 계기가 됐다. 바이오시밀러는 고가의 바이오의약품을 대체해 환자에게 치료기회를 제공하므로 복제약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월에는 연구중심 바이오벤처기업인 크리스탈이 비임상 후보물질인 급성 골수성백혈병 신약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해 눈길을 끌었다. 계약규모는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포함해 총 3억300만달러(한화 약 3500억원)다. 이는 거래소와 코스닥을 통틀어 올 상반기 기술수출 규모 중 최대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크리스탈은 올 하반기에 신약으로 개발 완료한 골관절염진통소염제 완제품을 대규모로 약 10년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동안의 연구개발 성과가 결실을 맺는 초기 단계이므로 주가상승도 이제 전반부일 수 있다.
미용 및 성형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국내 보톡스시장 1위 바이오기업인 메디톡스의 주가는 2009년 첫 상장 뒤 지난해까지 50배 가까이 치솟았다.
◆불건전 행위 절반으로 ‘뚝’
코스닥시장의 성장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코스닥 상장사 455개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17개사가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또 코스닥에 상장한 후 돈만 챙기고 소위 ‘먹튀’하려는 경영자도 있었다.
다행히 코스닥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던 공시위반·횡령배임 등 불건전행위는 2011년 203건에서 2015년 96건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시장의 건전성이 높아지고 체질이 개선되면서 코스닥시장의 이미지도 크게 개선됐다. 재무실적도 좋아져 지난해 코스닥기업의 평균매출액과 당기순이익, 자기자본 규모가 2005년 대비 각각 54%, 428%, 116% 늘어났다.
최근에는 ‘포켓몬’ 태풍이 미국 대륙을 강타하면서 게임유저들이 열광하고 있다. ‘포켓몬 고(go)’는 AR(증강현실)과 GPS 기술을 활용해 신개념게임을 실제 환경에서 즐기게 했다. 이처럼 신기술은 어떤 분야에나 접목돼 신제품과 신산업을 창출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관련 기업들은 코스닥시장에서 성장하며 투자자에게 수익을 안겨준다.
2009년 이후 코스피와 코스닥, 양대시장 모두 박스권의 지루한 움직임을 보이다가 코스닥은 지난해 박스권 위로 훌쩍 올라선 반면 코스피는 여전히 박스권 안에 머물고 있다. 코스닥에서 성장하는 기업을 잘 연구해 투자한다면 시장 전체 지수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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