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굶주린 아이들에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드세요”라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반대파가 그를 모함하려고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발언은 지도층이 일반대중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해 잘못된 정책을 펼 때마다 풍자하는 사례로 꼽힌다.
현재 대한민국의 주거난 현상도 정책실패에 기인한다. ‘월세가 아깝거든 집을 사면 된다’는 생각은 서민을 두번 울린다. 전셋값이 비싸 월세를 전전하는 사람에게 집을 사라며 세제혜택을 주고 대출부담을 덜어줘도 집값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무리한 주택구매 대신 주거비 계획 짜기
서울에 사는 맞벌이 주부 김은비씨(가명)는 얼마 전 집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전세금을 은행에 맡겨도 더 이상 수익이 안나니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현재 맡긴 전세금 2억원에 더해 매달 100만원씩 저축한 후 아이가 학교에 진학하기 전 집을 살 계획이었다. 만약 월세로 지출이 늘면 저축이 어려워질 테고 내집 마련의 꿈도 멀어질 것이 분명했다. 김씨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는 게 최선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지 모르는데 굳이 세금까지 내며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박영태 기자
김씨처럼 전세를 살다가 월세로 내몰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국토교통부 조사결과 올 상반기 주택 임대차거래 중 월세는 46%로 절반에 육박했다. 월세 비중은 5년 사이 13.5%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 등 집값이 낮아 서민층이 주로 사는 주택의 월세 비중은 50.5%로 절반을 넘었다.
전세가 줄어드는 것은 저금리로 인한 자금운용의 손실 때문이다. 전세제도가 세계적으로 희귀하지만 외국의 경우 그만큼 임대주택이 잘 발달했다. 우리나라는 월세가 낮은 공공임대의 공급량이 수요에 비해 현저히 부족해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이뤄질 경우 심각한 주거난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보증금과 월세를 적정하게 조율해 서민층의 주거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준전세’를 활성화하고 있다. 준전세는 전세와 월세를 합한 제도로 사실상 월세와 같은 개념이지만 보증금을 높여 월세지출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월세지출비율은 어떻게 정할까.
준전세 전환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월세를 얼마만큼 내느냐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월세를 적게 내고 싶고 집주인은 보증금을 덜 받더라도 월세를 높이려고 할 것이다. 이때 월세부담률을 계산하는 기준으로 ‘전월세전환율’이 사용된다. 전월세전환율은 보증금 대비 연간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로, 높을수록 월세 부담이 크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전월세전환율의 상한선은 6%다. 지난 5월 국회는 서민층의 주거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전월세전환율 상한선을 5.5%로 인하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내년 6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여전히 기준금리 1.25%에 비해 4.4배 높고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3%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두배 가까이 높다.
김씨의 사례를 적용해보자. 전월세전환율이 법정상한선인 6%일 때 월세는 100만원이다. 만약 전월세전환율을 3~4%로 낮추면 월세부담은 50만~67만원으로 줄어든다. 부동산시장 관계자는 “월세부담률이 3~4%대면 대출받았을 때 발생하는 이자와 취득세, 재산세 대비 메리트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에도 전월세전환율이 3%대인 곳이 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송파구 아파트의 전월세전환율은 3.9%다. 그러나 서울에서 전월세전환율이 최고인 곳은 8%대로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전월세전환율이 높은 집에서 무리하게 월세를 내는 것은 불필요한 지출을 늘리는 셈이다.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높이는 대신 월세를 낮춰줄 것을 요구하거나 비슷한 보증금에 전월세전환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사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있으나 마나 한 법정상한선… 문제는?
문제는 전월세전환율의 법적효력이 약하다는 데 있다. 서울시 조사결과 올 1분기 전월세전환율은 평균 6.2%다. 종로구(6.83%), 용산구(6.82%), 동대문구(6.81%) 등 도심에서 가까운 지역의 전월세전환율이 대체로 법정상한선을 뛰어넘는다. 보증금 1억원 이하인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의 전월세전환율도 7.4%로 높은 편에 속한다.
정유승 서울시 주택건축국장은 “서울은 보증금이 적거나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등 소형주택일수록 전월세전환율이 높은 편이어서 서민의 부담이 더욱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월세전환율은 전세계약 도중, 즉 일반적으로 계약기간인 2년 안에 준전세로 전환할 때 적용할 수 있을 뿐 재계약이나 신규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설령 집주인이 법을 어긴 월세를 요구해도 처벌규정이 없는 데다 지자체가 분쟁조정위원회를 운영하지만 민원이 접수되면 두 사람의 합의를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계약을 연장할 때 집주인이 월세를 무리하게 요구해도 세입자가 대처할 만한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계약기간 안에 법정상한선을 어긴 월세를 요구해도 세입자가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뿐이다. 이마저도 비용부담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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