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빅3는 빠지고 경기민감업종 대기업 ‘절반 이상’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이 올해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 32개를 확정했다. 조선·건설·해운·철강·석유화학 등 경기민감업종 대기업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전자업종 5개도 포함됐다. 하지만 ‘빅3’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이 모두 ‘살생부’에서 빠져 평가의 신뢰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서울 사옥. /사진=뉴스1 DB

◆"앙꼬없는 찐빵" 평가

지난 7일 금융감독원은 신용공여액(기업이 금융권에서 빌린 돈) 500억원 이상 대기업 602개를 대상으로 ‘2016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를 진행한 결과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대상인 C등급 13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대상인 D등급 19개사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2개 기업이 더 포함됐지만 주채권은행에 이의제기를 해 재심사를 받아 빠졌다.  
등급별 업종을 살펴보면 C등급은 조선 1개, 건설 3개, 해운 2개, 철강 1개, 기타업종 6개다. D등급은 조선 5개, 건설 3개, 전자 5개(부품업체), 해운 1개, 석유화학 1개, 기타업종 4개다. 총 32개 기업이 강제적으로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지난해 대비 구조조정 대상 기업수는 3곳 줄었지만 신용공여액(19조5000억원)은 12조4000억원(174.6%) 증가했다. 이는 2011년 이후 5년 만에 최대치다. 금감원 관계자는 “평가 기간 중 대형 조선·해운사 등 주요업체들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앞서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조선해양과 STX중공업이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진행 중인 한진해운, 경영정상화에 나선 현대상선 등 양대 국적선사도 C등급으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부터 시행된 새로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C등급을 받은 기업은 3개월 이내에 워크아웃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만약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으면 채권은행은 만기연장 거부 등 금융제재를 가할 수 있다.

D등급을 받은 기업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주도권이 채권단이 아닌 법원으로 넘어가 기업회생절차를 밟는다.

문제는 이번 구조조정 대상에서 그동안 대표 부실 기업으로 지목된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가 모두 정상인 B등급으로 분류돼 제외됐다는 점. 


금감원 측은 최근 조선 3사가 업황 불황과 무리한 해양플랜트 사업 수주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해 현금유동성과 재무구조가 취약하지만 정부, 대주주, 채권은행 등이 주도한 자구계획을 이행 중인 점을 감안해 제외했다고 해명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업은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라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어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우조선은 그룹 전체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고 그룹 차원의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이행 중”이라며 “대우조선을 부실징후기업(C·D등급)으로 분류하는 것은 채권단의 경영정상화 추진 방향과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제공=금융위원회

하지만 현재 대우조선은 1조원 규모의 자금이 묶인 해양플랜트 인도에 차질이 있는 데다 다음달 4000억원의 기업어음(CP)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어서 유동성 위기가 우려된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미리 확보해둔 일감 때문에 당장 유동성 문제를 겪지는 않겠지만 수주 가뭄으로 내년 이후부터는 경영에 큰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난해 말 정부가 4조2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수혈해 생명을 연장시킨 대우조선은 전 경영진이 과거 부실을 한번에 털어내는 과정에서 5조7000억원 상당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또한 올해 1분기에 작성한 사업보고서에서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를 1200억원가량 축소 조작한 혐의로 현 경영진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거래소는 대우조선의 상장 적격성 여부를 심사하겠다며 지난달 15일부터 주식매매거래도 정지시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우려

실적도 최악이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5조505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부채비율은 7308%에 달한다. 대우조선을 정상기업으로 분류한 금융당국의 판단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은 아무리 후하게 평가를 내린다고 해도 자율협약이 진행 중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받은 것처럼 최소한 C등급은 받았어야 했다”며 “자본 논리에도 안맞고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결과”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정부가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대우조선을 뺀 것은 각종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그간의 경영정상화 노력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우조선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농협은행 등의 은행권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22조8302억원에 달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금융권은 물론 정부 재정까지 흔들릴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에 대한 지속적인 정부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이미 물을 너무 많이 부어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며 “각종 비판을 감수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주도하에 구조조정을 실시해 경영정상화를 모색하겠다는 것인데 이번 선택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