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리대출시장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 7월 초 시중은행(사잇돌)에 이어 지난 6일 저축은행이 중금리 대출상품 ‘사잇돌Ⅱ’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금융당국은 사잇돌이 서민금융의 일환으로 중금리대출 활성화를 이끌 것으로 본다. ‘금리단층’을 해소해 중·저신용자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 중금리대출시장이 17조~18조원으로 추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서민층이 고금리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대출금리를 적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금융권의 현장반응은 다소 냉담하다. 연체율 상승 등 리스크 관리의 어려움으로 부실률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돼서다. 수익성 확보도 쉽지 않아 상품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신용등급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조급하게 중금리대출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사잇돌, 중·저신용자엔 ‘단비’
우리나라 대출시장의 금리단층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10~15% 금리의 가계신용대출 비중은 전체 대출시장의 5.1%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금융회사별 개인신용대출 평균금리를 봐도 시중은행(4.4%)과 캐피털(21%)·저축은행(25%) 사이의 간극이 크다. 그만큼 중금리 대출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최근 P2P대출업체가 10% 내외 수준의 중금리대출상품을 출시했지만 지난 5월 기준 누적 대출중개액이 877억원에 불과해 금리단층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SGI서울보증과 연계해 은행과 저축은행이 각각 출시한 사잇돌과 사잇돌Ⅱ는 중·저신용자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금리가 연 6~10%(사잇돌), 연 15% 내외(사잇돌Ⅱ)인 만큼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중신용자와 저축은행·대부업계에서 자신의 신용도 대비 높은 금리를 적용받던 서민들이 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어서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중·저신용자가 지난해 말 기준 698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금융회사의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가 은행권과 저축은행권에 각각 5000억원씩, 총 1조원을 공급해 SGI서울보증이 보증하도록 했다. 금융위는 평균 1000만원씩 10만명가량의 중·저신용자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보증, 리스크 관리 우려
그러나 리스크 관리가 문제로 꼽힌다. 금융권은 중·저신용자에게 중금리 대출상품을 판매하면 연체율이 상승하고 부실률도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2005년 SC제일은행이 선보였던 ‘셀렉트론’이 대표적인 예다. 연 10~15%의 중금리를 표방해 출시한 셀렉트론은 부실대출로 연체율이 상승해 2013년 판매를 중단했다.
SGI서울보증과 연계해 출시한 우리은행의 위비모바일대출의 경우 올 상반기 말 기준 연체율이 3.3%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은행 가계신용대출 연체율(0.67%)보다 5배가량 높은 수치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금리 대출상품을 조급하게 내놓은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중금리대출시장에 맞는 은행권의 신용평가모델(CSS)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상품이 나왔다는 것. 현재 CB(신용평가)사가 구축한 신용평가시스템은 10등급으로 나뉘며 은행별 자체 평가 관리도 15등급 안팎이다.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선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신용등급 체계를 더욱 세분화하고 중금리를 적용받는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신용평가방법이 혁신적으로 변하기 위해선 빅데이터의 활용이 필수적”이라며 “다만 이 신용평가방식이 자리 잡으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강희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CB 5~6등급을 세분화하고 저신용등급 분포에 최적화된 SP등급(7~10등급 고객) 중 최우량 고객을 평가할 수 있는 기술도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보증과 은행권이 구축한 중신용자 신용평가 모형 및 데이터베이스로는 신용자들의 상환능력을 평가하기 역부족이란 얘기다.
따라서 SGI서울보증의 대출승인율도 낮을 수밖에 없다. SGI서울보증에 따르면 사잇돌대출을 출시한 지난 7월5일부터 이달 7일까지 대출건수 8400건, 대출액 897억원, 승인율 53.2%를 기록했다. 신청자 2명 중 1명은 사잇돌대출을 이용하지 못한 셈이다.
SGI서울보증 관계자는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신용평가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며 “우선 보수적으로 상품을 취급하되 3년 이후쯤에는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많은 중·저신용자들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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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자발적 참여 유도해야
수익성 확보는 곧 상품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한다. 개별 금융사가 출시한 상품을 유지하고 개발을 거듭하기 위해선 마진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출 중간과정에서 승인을 내야 하는 SGI서울보증의 경우 중·저신용자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일종의 딜레마다. 승인율을 높이자니 부실률이 우려되고 대출 희망자를 보수적으로 평가하자니 수익성이 떨어져서다.
저축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사잇돌이 기존에 출시된 금융사의 중금리 대출상품에 비해 스펙이 떨어진다”며 “굳이 사잇돌을 취급할 이유가 없는 업계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판매 중”이라고 토로했다.
시중은행의 경우 신한은행의 써니모바일간편대출과 IBK기업은행의 I-ONE스마트론의 연 이율이 각각 4.9~8.3%, 3.1~8.7%로 나타났다. 저축은행에선 SBI저축은행의 사이다가 6.9~13.5%, KB저축은행의 KB착한대출이 6.9~19.9%의 금리를 적용 중이다. 정책상품인 사잇돌과 사잇돌Ⅱ의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셈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사잇돌이 금융회사의 수익을 화보해주기에 힘든 측면이 있어 장기적으로는 자리 잡지 못할 수 있다”며 “제도적으로 공적자금을 일시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중금리대출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시장 자체적인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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