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에도 경영진 연봉은 '수억원'


‘증권사의 은행’ 역할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한국증권금융에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금융업 경력이 없는 청와대 인사나 금융위원회 출신 인물이 주요 자리를 독차지해서다. 이들이 한국증권금융에서 수억원대의 연봉을 챙기는 동안 회사는 점차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위원, 낙하산 논란… 사장은 금융위 출신
한국증권금융은 지난달 29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상근감사위원(상임이사)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이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조 전 비서관의 금융권 경력이 전무한 만큼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서강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공보처 전문위원, 여의도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및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2004년 한나라당 천막당사 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메시지를 총괄 담당하는 중앙선대위 메시지 팀장을 맡았다. 이후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작성하는 연설기록비서관으로 3년5개월간 재직하다 지난 7월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고 2개월 만에 한국증권금융의 감사로 다시 등장했다.


한국증권금융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은 4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상임감사추천위원회가 추천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이 결정됐다”며 “회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증권금융의 낙하산 인사 논란은 조 전 비서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근감사위원의 경우 전임인 한규선 상근감사위원을 제외하고 이전 인사들이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2014년까지 감사를 지낸 김회구 감사는 청와대 정무비서관, 2012년까지 재직한 김희락 감사는 국무총리실 정무운영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상근감사위원은 한국증권금융 내부의 회계관리제도 운용과 업무실태를 감사하고 평가하는 중요 보직이다. 업계에서는 금융권 경력이 전혀 없는 인사들이 2년 임기동안 관련 업무를 얼마나 제대로 파악했을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증권금융의 낙하산 논란은 사장 선임에서도 끊임없이 지적된 사안이다. 한국증권금융은 2004년부터 사장 공모제를 실시했지만 홍석주 옛 조흥은행장이 2006년까지 23대 사장직을 수행한 이후부터 10년간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가 모두 사장 자리를 꿰찼다. 24대 이두형 사장을 시작으로 25대 김영과 사장, 26대 박재식 사장에 이어 27대 정지원 현 사장까지 모두 금융위 출신이다. 모두 사장 선임을 앞두고 내정설이 퍼졌고 어김없이 사장으로 선임됐다. 한국증권금융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증권업계 출신의 사외이사는 2009년부터 단 한명도 선임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 위축에도 경영진, 고액 연봉 잔치

낙하산 인사가 계속 투입되면서 한국증권금융의 발전도 멈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증권금융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81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 증가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순이자수익이 19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0% 이상 줄었다. 순수수료수익은 5% 늘어났다.

순이자수익 감소는 단기매매금융자산의 차익으로 보전한 모양새다. 지분상품과 채무상품의 수익이 100억원가량 발생했다. 한국증권금융은 주식투자자가 증권사에 예탁한 돈을 모아 증권사에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업무를 주로 한다. 또 증권을 대여하거나 대차중개로 얻는 수수료도 매출의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본업에서 줄어든 이익을 다른 부분에서 채운 셈이다.

한국증권금융의 실적도 몇년째 정체됐다. 처음 연결재무제표를 도입한 2012년 한국증권금융의 매출액은 1조3888억원이었지만 이듬해인 2013년에는 1조1467억원으로 17% 넘게 쪼그라들었다. 2014년에는 3월 결산에서 12월 결산으로 바뀌면서 매출이 다소 줄었지만 연단위로 환산하면 2013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에도 1조1162억원의 매출로 부진한 성적을 나타냈다. 순이익이 2012년에 비해 6% 줄어든 1268억원에 그쳤다.

실적이 그대로거나 주요 수익원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경영진의 임금은 업계 최상위권에 육박한다. 박재식 전 사장은 지난해 퇴직금 1억2500만원을 제외하고도 5억22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전체 공공기관장 평균 연봉의 두배가 넘는 수준이고 증권사와 비교하면 업계 10위권 안에 든다. 올 초부터 사장직을 수행하는 정지원 사장도 상반기에만 2억원 이상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감사로 선임된 조 전 비서관의 경우 지난해를 기준으로 하면 약 1억5000만원의 연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낙하산 방지법’ 비웃는 낙하산

한국증권금융은 상법상 주식회사로 민간기업이다. 다만 정부 위탁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지난해 7월부터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돼 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공직유관단체는 ‘관피아 방지법’의 사각지대여서 금융위 등 정부기관 출신의 공직자가 재취업하는 데 제한이 없다.

또 한국증권금융의 최대주주는 11.35%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거래소다. 이외 우리은행(7.81%), 하나은행(6.98%), NH투자증권(6.17%), 한국산업은행(5.19%) 등 주요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합치면 37.5%에 달한다. 이들 주주 모두 정부의 입김이 닿는 곳이다. 수많은 논란에도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끊임없이 투입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사장 선임의 경우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데 한국증권금융은 사추위 구성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커졌다.

정치권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한 입법이 줄을 잇는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가 공적업무를 수행하는 금융기관에 취업할 경우 미치는 악영향이 막대해서다. ‘낙하산 방지법’을 발의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 금융경쟁력은 케냐, 스리랑카보다 낮은데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 바로 낙하산 인사”라며 “전문성이 필요한 금융권에서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금융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