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순 KDB산업은행 상하이지점장은 지난 2월 중국 땅을 다시 밟았다. 2년 반 만에 산업은행 중국 상하이지점으로 돌아와 지점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중국경기는 3년 전보다 변동성이 커졌고 상하이로 진출한 한국기업도 부침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은행 상하이지점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돌았다.
◆한국 중소협력업체, 현지업체와 출혈경쟁
2010년부터 3년간 상하이지점에서 근무했던 박 지점장은 올 초 다시 이곳에 왔을 때 “친정에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동시에 부담감은 크게 느껴졌다.
“상하이지점에는 자원해서 다시 왔습니다. 최근에는 한국경제에서 중국을 빼고 말할 수 없잖아요. 24년간 산업은행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중국의 금융중심지인 상하이에서 소신껏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하지만 상황이 3년 전과 많이 달라져 지점장으로서 느끼는 책임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3년 전보다 가장 많이 달라졌다고 체감한 부분은 한국 중소기업의 상황이다. 그는 이곳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많이 어렵다고 말문을 열었다.
“반도체·자동차 등 대기업이 중국에 올 때 품질유지를 위해 한국에서 거래하던 협력업체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중소기업의 기술이 좋아서 문제가 없었지만 이와 비슷한 중국 현지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단가 경쟁이 시작되는거죠. 원청으로선 비용절감을 위해 기존 협력업체와의 거래를 끊고 현지업체를 택하는데 거래가 끊긴 협력업체는 모든 걸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요. 이 과정에서 몇몇 한국업체가 되돌아 갔어요.”
대기업을 따라 중국에 들어온 한국 중소하청업체들이 중국 현지업체와의 출혈경쟁으로 연일 악전고투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 지점장은 “아직 한국업체의 부실채권비율이 높지 않지만 현지업체와의 출혈경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기업도 은행도 과거의 장밋빛 전망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형순 KDB산업은행 상하이지점장. /사진=박효선 기자
◆“기업과 동반성장하는 은행” 지점장의 고민
중국계 기업의 부실은 더욱 심각하다. 박 지점장은 최근 한 중국계 기업에 부실딱지를 붙였다. 해당업체의 연체기간이 1년을 넘어가자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기업의) 연체가 너무 오래됐고 금액도 컸어요. 되도록 부실딱지를 붙이지 않고 회사가 살아났으면 했습니다. 저희가 부실딱지를 붙이는 순간 해당 회사는 다른 기업과의 거래가 끊기고 다른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가 더욱 어려워지거든요.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은행으로서도 부실기업에 대한 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이 충당금은 산업은행 재무제표에서 손실로 잡힙니다. 하지만 중국계 기업의 연체가 너무 오래돼 대출회수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더 큰 손실을 불러오기 때문에 해당기업을 부실처리 할 수밖에 없었죠.”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실 정부예산을 받는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은 여타 시중은행과 달리 부실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해당업체에 ‘부실기업’ 딱지를 붙이는 순간 빌려준 대출도 고정이하여신(부실채권)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은행은 되도록 대출을 연장하며 부실기업마저 살리려 애쓴다. 은행 입장만이 아닌 우리경제 전체를 연착륙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산업은행으로서는 늘 기업 구조조정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 지점장은 “시중은행의 경우 위험신호가 감지되면 자금을 바로 회수하고 기업을 정리할 수 있지만 산은은 쉽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재도약 위한 바탕 다지는 데 집중”
대신 박 지점장은 시장과 기업의 동태를 파악하는 등 심사업무를 강화할 방침이다. 또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신디케이티드론(다수의 은행이 공통의 조건으로 일정금액을 차입자에게 융자해주는 대출) 영업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박 지점장은 “중국계 기업의 재무제표가 투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재무제표로만 부실기업이 아닌데 재무제표를 믿을 수 없어 대출 시 위험이 따른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따라서 마진이 적더라도 대출업체에 대한 심사와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지점장은 눈앞의 실적이 아닌 기업과 관련한 ‘소프트한 업적’을 남길 생각이다. 그 스스로도 “당장 실적을 쌓기보다는 (20살 상하이 지점의) 성공적 재도약을 위해 당분간 밑바탕을 다지는 데 집중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입니다. 현장에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힘들다고 얘기할 때마다 고민이 많습니다. 기업금융에 전문화된 산업은행의 다양한 금융구조를 활용해 우리 기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은행기반을 튼튼히 세우고 중소업체의 자금질곡 문제를 함께 해결할 생각입니다.”
☞ 프로필▲1991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91년 산업은행 종합기획부 ▲1993년 산업은행 수원지점 ▲1997년 산업은행 투자기획부 ▲1998년 산업은행 안양지점 ▲2008년 산업은행 인력개발부 소속연수 ▲2008년 산업은행 종합기획부 ▲2010년 산업은행 중국 상하이 지점 ▲2013년 산업은행 지역개발부 ▲2016년~ 산업은행 중국 상하이 지점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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