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션·구동력 배분·에어로다이내믹 3박자 갖추면 ‘코너링 머신’
알파로메로 4C 주행장면 /사진=알파로메오 제공
‘관성’(慣性)은 어떤 물체가 외부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 한 현재 운동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무게가 많이 나갈수록(질량이 클수록) 물체의 관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는 관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멈춘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반대로 신나게 달리다가 멈춰서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설계된 자동차의 구조적 특징 덕에 직선운동은 관성을 극복하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굽은 길을 돌아나갈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출구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진입하면 코스를 벗어나며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자동차(또는 타이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앞으로 뛰어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지 못하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다른 힘(발의 접지력, 근육의 힘 등)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관성을 이겨내는 방법엔 어떤 게 있을까. 성질로 분류하자면 크게 3가지다.
포르쉐 911 카레라 /사진=포르쉐 제공
◆유연한 하체, 서스펜션
자동차의 서스펜션은 노면의 충격을 흡수하는 것 외에도 타이어의 그립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땐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스프링과 댐퍼가 노면의 충격을 걸러내고, 코너를 돌 땐 좌우로 움직이며 타이어의 접지면적을 최대한 넓게 유지시켜준다.
자동차를 뒤에서 바라보면 타이어가 완전히 1자로 세워진 게 아니라 윗부분이 미세하게 차체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캠버 각)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세팅을 하는 이유는 타이어 접지력을 높여 주행안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오른쪽으로 굽은 길을 지날 땐 왼쪽 바퀴에 차의 무게가 쏠린다. 이 때는 안쪽으로 기울어진 타이어가 오히려 1자로 세워져 자연스럽게 땅에 닿게 된다. 결국 서스펜션은 접지력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어서 빠르게 코너를 공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로 극단적으로 윗부분을 안쪽으로 많이 기울인 형태(마이너스 캠버각이 큰 상태)를 유지한 차도 종종 볼 수 있다. 레이싱카가 아닌 이상에야 굳이 필요 없는 세팅이다. 타이어 편마모와 나쁜 승차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포르쉐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날렵한 코너링을 보여주는 차다. 그럼에도 서스펜션 높이를 조절하는 방법(PASM)으로 그나마 영향을 주는 관성을 극복했다.
마찬가지로 오른쪽으로 굽은 코너를 공략할 때 회전하는 커다란 원의 바깥, 즉 자동차의 왼쪽으로 힘이 쏠린다. 서스펜션의 좌우 움직임은 기본, 차체를 약간 들어 올리면서 빠르고 정교한 코너링을 구현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할 때 코너에서 안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최근 렉서스, 인피니티, 포르쉐 등 여러 자동차회사들이 관심을 갖는 기능은 뒷바퀴 조향이다. 저속에서는 앞바퀴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회전반경을 줄일 수 있고, 고속에서는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앞뒤에 다르게 작용하는 관성을 극복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서스펜션 계통의 발달 덕분에 가벼운 운전대 조작만으로도 카레이서 뺨치는 코너링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볼보 S60 CTC /사진=볼보 제공
◆관성을 회전운동으로 극복, 구동력 배분
일반적인 자동차의 바퀴는 4개다. 이 중 4개 모두를 굴리면 4륜구동, 즉 네 바퀴를 굴린다는 의미의 4WD(four wheel drive)차라고 부른다.
4륜구동차는 엔진의 힘을 네 바퀴 모두에 나눠주기 때문에 각 바퀴의 접지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험로주행을 염두에 둔 SUV나 안정적인 주행을 해야 하는 스포츠카, 고급세단에 주로 적용된다.
요즘 4륜구동방식은 단순히 앞-뒤의 구동력에 차이를 두는 것을 넘어 각 바퀴에 필요한 힘을 배분하는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추세다.
정지상태에서 출발할 때는 차의 하중이 뒤로 쏠린다. 이 때는 앞바퀴에 힘을 더 주면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서 미끄러운 길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구동바퀴와 회전바퀴가 같으면 다루기가 쉽다.
포르쉐 마칸 /사진=포르쉐 제공
오른쪽 코너를 돌 때 코너 바깥쪽의 왼쪽 바퀴는 코너 안쪽의 오른쪽 바퀴보다 더 큰 원을 그리기 때문에 회전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차의 하중도 바깥으로 이동한다. 이 때 엔진의 힘을 바깥쪽 바퀴에 몰아줌으로써 매끄럽게 원을 그리며 돌아나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언더스티어 현상을 줄여준다고 보면 된다.
걸어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꿀 때 가려는 방향의 반대 발에 힘을 더 주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도 차 성격에 따라 구동력을 다르게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스포츠 모델은 오히려 안쪽 뒷바퀴의 구동력을 높여 코너를 과감하게 공략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오버스티어를 의도해 과감하게 코너 공략을 가능케 하는 세팅이다. 운전실력이 부족한 일반인이 이런 움직임을 경험하면 차 뒷부분 움직임이 평소와 달라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옆으로 미끄러지며 코너를 돌아나가는 ‘드리프트’도 이같은 상황에서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코너에선 관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사진=포르쉐 제공
◆보이지 않는 손, 경량화와 에어로다이내믹
관성은 질량에 비례한다. 차가 무거우면 그만큼 관성이 커진다. 차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관성에서 해방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영국의 수제 스포츠카회사 로터스는 경량화를 통한 성능향상을 추구한다. 주행에 필요없는 건 모두 덜어내고 차의 외관도 철 대신 플라스틱을 쓴다. 대표 모델인 엘리스는 경차 수준에 불과해 배기량이 적은 소형엔진으로도 엄청난 순발력을 보여준다.
자동차는 앞으로 달려나갈 때 차의 위아래를 지나는 공기의 시간 차 때문에 떠오르려는 ‘양력’이 생긴다. 따라서 일정한 무게를 유지하는 게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고, 일반적인 자동차들이 무게가 비슷한 이유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스포츠카는 얘기가 다르다. 무조건 가벼워야 조금이라도 더 재빠른 몸놀림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럼 차를 눌러주는 힘은 어디서 얻어야 할까. 엔지니어들은 비행기 날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날개를 거꾸로 달면 떠오르려는 힘이 반대로 땅을 향하게 된다. ‘다운포스’라고 부르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이 차를 꾹 눌러서 빠르게 달려도 안정감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BMW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i8도 경량화를 추구하면서 곳곳에 에어로다이내믹 설계를 적용했다. 날개를 여러 개 단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주행시 매우 뛰어난 안정감을 준다.
BMW i8 aerodynamic /사진=BMW 제공
이런 안정감은 코너링 상황에서도 드러난다. 질량이 적어 관성을 덜 받는 데다 공기가 계속 차를 눌러주니 넓은 타이어가 그립을 충분히 유지하면서 날카로운 핸들링을 가능케 한다.
운전자 실력이 같다고 가정할 때 산길 내리막길에서 1.8톤짜리 그랜저보다 1.2톤짜리 엑센트가 더 코너링이 좋은 이유다.
같은 이유로, 차에 짐을 실을 때도 최대한 무게중심에 가까운 곳이 좋다. 지붕에 무거운 짐을 올렸다면 코너를 돌기 전에 미리 속도를 줄이고 최대한 천천히 코너를 공략해야 안전하다. 차 트렁크에 짐을 많이 실었을 땐 뒷부분을 눌러주는 효과가 있어서 미끄러운 길에서 후륜구동차의 접지력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코너를 돌 땐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며 뒤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정리하면 운동의 방향이 바뀔 땐 관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달리다가 멈출 땐 차의 무게에 비례해 정지거리가 길어지고, 코너를 돌 때도 진입속도가 느릴수록 매끄러운 원을 그리며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