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와 불법 명의도용을 막기 위해 지난 1일 도입된 신분증 스캐너를 두고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도입 2주를 맞아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설명회를 열며 진화에 나섰지만 중소 휴대폰 유통점으로 구성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DMA)는 “명분과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휴대폰을 개통하는 유통점들도 개통 단계가 이원화되고 불편해졌을 뿐 개인정보 악용을 근원적으로 막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형평성·규제 강화 수단 논란


신분증 스캐너는 지난해 9월 이동통신3사 직영점과 대리점에 먼저 도입됐다. 신분증의 위조여부를 판단한 후 개인정보를 저장하지 않고 바로 통신사 서버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휴대폰 가입 시 고객이 제시한 신분증의 위·변조를 막고 일부 판매점들이 고객의 개인정보를 악용해 대포폰을 개통하는 등의 불법영업을 막겠다는 취지다.


복사한 신분증을 다른 신분증에 부착한 뒤 신분증 스캐너에 인식시키는 모습. /사진=진현진 기자

이후 지난 8월 전국 1만7000여개 유통점을 대상으로 신분증 스캐너 확대시행이 예정됐지만 기기보급 등의 문제로 다소 늦은 이달 1일 일괄 도입됐다. 그러나 KDMA는 ‘골목 상권에 대한 차별적 규제’라며 스캐너 도입에 반발, 신분증 스캐너 운영주체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신분증 스캐너 사용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들은 빠른 시일 안에 감사원에 의무도입 과정과 관련된 감사를 청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법적 조치도 고려하고 있다.
KDMA 측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취지는 공감하지만 차별적 도입과 규제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온라인판매나 방문판매, 텔레마케팅, 홈쇼핑 등의 판매는 신분증 스캐너 사용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기기 대신 고객의 신분을 확인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중소 판매점과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또 골목 판매점에 대한 규제 강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기에 위·변조 가능성이 있는 신분증을 인식시키거나 오류가 발생하면 “현재 스캔된 신분증은 위·변조가 의심되거나 훼손 또는 약관상 인정되는 신분증이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통을 계속 진행할 경우 개통 유통점과 처리자의 책임입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KDMA는 이 점을 지적하며 유통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중소 유통점을 옥죄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통점 “실효성, 잘 모르겠다”


실제 신분증 스캐너를 사용하는 유통점에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기기 도입 이전에 비해 스캐너 이용이라는 번거로운 작업만 늘었다는 것. 유통점은 현재 주민증록증,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은 신분증 스캐너에, 여권과 신분증 재발급 신청서는 기존의 스캐너에 인식시킨다.

그러나 기존의 스캐너에 인식한 후 각 통신사 개통페이지에서 ‘신분증 스캐너 고장’ 알림 팝업을 선택하면 개통이 가능하다. 또한 복사한 신분증을 다른 신분증에 부착한 뒤 도입된 스캐너에 인식시키면 “위·변조된 신분증 가능성이 있으며 개통을 진행하면 이는 유통점과 처리자의 책임”이라는 경고문구가 뜬 후 개통이 가능하다. 해당 팝업창에서 인식된 개인정보의 임의적인 수정도 가능하다.

휴대폰 유통점들은 이러한 경고문구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 유통점 직원은 “신분증이 낡아서 인식이 안 될 때도 있고 종이에 복사한 신분증을 크기에 맞게 오려 다른 신분증에 부착한 뒤 인식시켜도 정상적인 신분증으로 인식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유통점에서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휴대폰을 구매한 고객의 신분증 복사본을 받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통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방 고객의 신분증 역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복사본을 남겨둔다. 신분증 스캐너 도입으로 신분증 지참이 필수가 되자 아예 유통점에 신분증을 맡겨두고 간 고객도 많다.

유통점에 개인정보를 남기지 않고 스캐너를 이용하지 않으면 개통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본래의 취지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 이에 대해 또 다른 유통점 직원은 “여권이나 신분증 재발급 신청서로 개통을 진행하는 고객이 의외로 많다”며 “신분증 스캐너의 도입이 개인정보 악용을 막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방문판매나 전화상으로 휴대폰을 판매하는 이들과도 형평성에 맞지 않고 결국 유통점 휴대폰 판매만 줄어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휴대폰 유통점에 맡기고 간 고객들의 신분증. /사진=진현진 기자

◆골목 판매점 달래는 방통위
반발이 확산되자 방통위는 지난 14일 “제도 취지에 맞게 정착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신분증 스캐너가 고객의 개인정보를 악용해 대포폰을 양산하는 등의 불법영업 행태를 막는 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방통위는 방문판매의 경우 이동성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앱을 적용한 것이라며 신분증 스캐너의 소형화와 휴대용 제품 개발이 가능해지면 적용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날 KAIT 관계자는 “개선해야 할 부분은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이며 방판, 다단계 판매에서도 위변조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통점을 규제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반발에 대해서는 신분증 스캐너가 명의도용 예방 등 판매점의 본인확인 절차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으며 본인확인 절차는 유통점의 판매자가 해야 하는 업무로 신분증 스캐너가 유통점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위·변조 여부를 유통점에 안내하는 기능일 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측은 “신분증 스캐너 도입에 따른 신분증 사본에 대한 디지털화와 법적근거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것은 오히려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행위로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