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후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연금보험에 가입하려 했던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다른 장기상품을 찾고 있다. 당초 A씨는 50세까지 매달 50만원씩 납입해 60세부터 매달 약 66만원을 받는 상품에 가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년부터 월 적립식 저축성보험의 비과세혜택이 1억원을 초과하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소식에 A씨는 연금보험에 들어야 하나 망설여졌다. A씨가 20년간 납입하려 했던 금액을 계산해보면 총 1억2000만원이기 때문이다. 비과세조차 적용되지 않으면 66만원보다 적은 금액을 받기 때문에 A씨는 저축성보험에 굳이 가입할 필요가 없다. 결국 A씨는 다른 금융상품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금보험처럼 오랜 기간 적립하면서 노후를 대비할 만한 상품이 마땅찮아 납입액을 줄여야 하나 고민이다.

대표적인 장기상품인 월 적립식 저축성보험의 비과세 한도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진행 중이다. 이에 보험업계는 “월 적립식 저축상품의 비과세 한도 축소로 실질적 부자증세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저축성보험의 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 한도 축소를 둘러싸고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를 계기로 시장이 재편될 조짐이다.


보험대리점협회 소속 보험대리점 대표와 설계사들이 지난 13일 마포구 국민의당 당사 앞에서 저축성보험 비과세 축소 방침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제공=보험대리점협회

◆중산층 노후대비책 위협
저축성보험은 은행예금처럼 매년 일정수준의 이자를 제공하는 보험상품이다. 최초가입 시 사업비가 발생하는 단점이 있지만 은행예금보다 금리가 높고 복리이자가 제공돼 가입기간이 길수록 예금보다 훨씬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높은 금리에 더해 저축성보험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비과세혜택이다. 일정요건을 충족하면 이자소득세 15.4%가 면제된다.


그런데 저축성보험에 적용되던 이자소득세 면제혜택기준이 축소될 전망이다. 이달 초 국회는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조세소위에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장기저축성보험의 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 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국회는 일시납 저축성보험의 경우 비과세 한도를 현행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또 월적립식 저축성보험에 대해서도 총 납입액 1억원까지 비과세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은 “연금 등 저축성보험의 세제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중간계층 이상의 사람들”이라며 “당초 취지와 다르게 취약지대에 있는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게 아닌 고소득자의 혜택이 크다”고 밝혔다. 취약계층의 경우 정작 연금 등 저축성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어 세제혜택을 보지 못하는 반면 고소득자만 혜택을 누린다는 설명이다.

일시납 저축성보험의 경우 한번에 보험료를 1억원 이상씩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비과세가 조세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월적립식 저축성보험에도 비과세 한도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월적립식 보험은 전체 저축성보험의 84%를 차지한다. 이에 보험업계는 월적립식 보험까지 비과세 한도를 축소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월 적립식으로 10년 이상 1억원이 넘는 돈을 납입하는 사람을 고소득층으로 일괄 규정하는 것은 어폐가 있어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매월 42만원씩 20년간 납입해도 총 납입액이 1억원을 넘는데 이런 사람을 부자라고 보는 것은 이상한 기준”이라며 “중산층의 경우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대비가 불충분해 저축보험에 많이 가입하는데 이런 기준으로 비과세를 축소하면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곧바로 타격을 받는 설계사·대리점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보험대리점협회는 비과세 축소 철회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고 세제개편이 철회될 때까지 투쟁할 방침이다. 협회 관계자는 “국민의당은 독단적으로 보험차익 비과세를 축소해 국민의 노후준비를 가로막고 40만 보험설계사와 보험대리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기획재정부는 이해관계자와 충분한 논의 없이 법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세수확대를 위해 중산층의 노후대비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온라인 중심 시장 재편 ‘신호탄’
업계 전반적으로는 비과세혜택 축소로 시장 자체가 재편될 조짐이다. 비과세혜택을 내세워 저축성보험을 판매해온 설계사·대리점·방카슈랑스 등의 채널이 위축되면서 보험사들은 판매전략을 변경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보험업법이 개정돼 내년부터 보험사들은 저축성보험 사업비를 대폭 줄여야 한다. 사업비 비중이 감소하면 그만큼 보험설계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도 줄어든다. 설계사가 저축성보험을 판매해야 할 유인이 크게 사라지는 것이다.

이병건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보험사들이 보장성보험 판매에 주력하지만 저축성보험은 설계사 소득과 PB 비즈니스 차원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며 “하지만 저축보험의 사업비 부과 감소에 따른 수당 감소와 월납 보험의 보험차익 비과세 한도 설정이 겹칠 경우 저축성보험시장은 사실상 명맥을 유지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그는 “생보사 위주였던 노후대비시장에서 월지급식펀드 등 증권·투자상품이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저축성보험시장이 사업비가 적은 온라인채널로 옮겨갈 것으로 본다. 보험사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에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대부분의 보험사가 저축성보험 판매를 축소하고 있다”며 “비과세 축소를 계기로 저축보험을 온라인 비대면채널 중심으로 판매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교보라이프플래닛과 KDB생명 다이렉트 등 온라인보험을 중심으로 소액 저축성보험 판매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소비자들도 대면채널보다 저렴하고 금리가 높은 온라인 저축보험으로 몰릴 전망이다.

하지만 그만큼 설계사가 판매할 수 있는 상품군이 줄어들어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말 막바지 영업에 한창인 보험사들이 목표달성을 위해 이를 절판마케팅에 이용할 가능성도 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설계사 입장에서는 판매 유인이 줄어드는데 이렇게 되면 수수료가 높은 종신보험을 연금처럼 판매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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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