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의 최우선 조건 '입지'… 불황기도 버틴다
점포를 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라는 말이 있다. 물론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입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노점이나 포장마차 영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의 한 동네를 지나다 노점 세군데의 계란빵 가격이 위치에 따라 크게 다른 것을 발견했다.
첫번째 노점은 계란빵 가격이 1000원인 반면 두번째, 세번째 노점은 각각 1500원, 2000원이었다. 각 노점 사이 떨어진 거리가 200m도 안된다. 지하철역에서 첫번째 노점이 가장 가깝고 세번째 노점이 가장 멀다.
그러나 노점 앞을 지나는 사람은 첫번째 노점이 가장 적고 세번째 노점 앞이 가장 많다. 첫번째 노점과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보다 두번째·세번째 노점과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가 인파로 더 붐비는 곳이고 세번째 노점이 두번째 노점보다 지하철역 출구에서는 더 멀지만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길목에 있다. 결국 유동인구에 따라 계란빵 가격이 결정된 셈이다.
세 노점의 계란빵을 모두 사먹어 봤는데 크기나 맛이 똑같았다. 그런데 세번째 노점의 가격이 첫번째보다 두배에 달했지만 손님은 세번째 노점이 가장 많았다. 노점에서 판매되는 먹거리나 제품은 단골이 아니라 노점 앞을 지나는 사람의 눈에 띄어 팔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영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최고 자리 노점상, 수익도 ‘짭짤’
지난해 말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공급량이 급감하면서 계란 가격이 치솟았다. 계란빵 노점상은 그만큼 마진이 줄었기 때문에 많이 팔거나 개당 가격을 올려 채산성을 맞추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서 계란빵을 파는 노점상의 경우 두가지 모두 불가능하다. 결국 장사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생겼다.
2000원에 파는 노점상은 계란 가격이 올라가자마자 제일 먼저 계란빵 가격을 올렸는데 그래도 잘 팔렸다. 노점상은 월 임대료를 내지 않아 원가가 똑같은 제품을 비싼 가격으로 팔면 판매 총이익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진이 3배이면서 판매 개수도 3배면 이익은 9배가 된다. 발 빠르게 최고의 자리를 선점한 계란빵 노점상은 뒤늦게 들어온 계란빵 노점상에 비해 몇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건물에 입주해 임대료를 내고 영업하는 점포는 장사가 잘되면 잘되는 만큼 보증금과 권리금 및 임대료가 높아진다. 영업하기 좋은 자리임을 뻔히 알아도 비싼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결국 저렴한 자리에 점포를 낼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매출이 워낙 적어 좋지 않게 끝나기도 한다. 길을 지나는 사람이 접근하기 좋은 1층에서 영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업종도 있다. 그럼에도 가격이 저렴한 매력에 이끌려 2층에 입점했다가 문을 닫기도 한다.
다만 손님이 한번 들어오면 머무는 시간이 길어 고객 회전율이 낮고 큰 평수의 매장이 필요한 업종의 경우 1층에 매장을 얻을 필요가 없다. 이 경우 2층에서 시작하면 창업비용 대비 수익률이 높을 수 있다. 이런 업종은 체류시간이 긴 만큼 고객 1명당 결제금액이 높은 경우가 많다.
불경기로 손님이 줄어들 때는 입지가 안 좋은 곳부터 감소해 타격이 제일 먼저 나타난다. 사람들은 사람이 많은 곳을 찾는 심리가 있는데 입지가 좋지 않은 곳은 손님이 적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면서 고객의 발길이 더 끊기기 때문이다.
불경기를 버티기에도 입지가 좋은 곳이 유리하다. 최근 중국인관광객이 줄고 정치권 영향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유동인구가 다소 줄어든 곳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대로와 접한 A급 입지는 아직 권리금이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 B급 입지는 20~30% 하락하고 이면도로인 C급 입지는 권리금이 거의 사라졌다. 소매업은 점포의 위치가 생존능력과 영업의 성공 여부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해 입지산업이라고 불린다.
초기자본금이 충분해 권리금이 비싼 특급입지에 들어가려 해도 매물로 나오는 점포가 없을 수 있다. 기회를 잡기 위해 기약 없이 기다리기보다 차선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입지여건이 상대적으로 떨어져도 차별화된 영업을 통해 한번 찾아온 고객을 단골로 확보하고 입소문을 통해 한명의 고객이 여러명의 고객으로 늘어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입지 안 좋다면 ‘마케팅’ 활용
요즘은 블로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효과적으로 홍보하면 고객이 찾아오기도 한다. 골목 안에 있어도 손님이 많은 점포가 이런 케이스다.
얼마 전 언덕 위에 위치한 작고 소박한 요릿집을 본 적이 있다.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만석이다. 알고 보니 임대료가 비싼 대로변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란다. 이미 젊은층 사이에 소문이 났고 단골인 사람도 많은 것이 성공비결이다. 임대료도 대로변보다 훨씬 저렴해서 예전보다 순수익이 더 많다.
똑같은 입지에서도 고객 수를 크게 늘리면 권리금이 올라간다. 장사 수완이 좋은 필자의 한 지인은 저렴한 권리금의 점포를 인수해 고객 수를 늘린 후 인수할 당시보다 훨씬 비싼 권리금으로 점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을 반복했다. 점포경영에서 얻는 수익보다 들어가고 나올 때의 권리금 차이에서 얻은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권리금 장사를 한 셈이다.
특급상권의 점포라 하더라도 높은 임대료에 비해 매출이 적다면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일주일 내내 유동인구가 매우 많은 동네임에도 점포 주인이 자주 바뀌는 걸 목격할 수 있다. 같은 업종의 점포가 밀집된 곳에 그런 점포를 찾는 사람이 모이지만 경쟁업체가 워낙 많다 보니 고객 확보가 잘 이뤄지지 않는 점포도 있는 것이다.
사람이 북적대는 점포 근처에는 손님이 한산한 점포도 있기 마련이다. 영역 내로 들어오는 총 고객 수가 두배더라도 같은 업종의 점포 수가 두배 이상 많다면 수요 대비 공급 측면의 조건은 오히려 더 안 좋은 셈이다.
입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입지가 전부는 아니다. 당장은 경쟁점포가 없어도 독점이 가능한 상권이 아닌 이상 나중에 경쟁점포가 생겨 손님을 뺏길 수 있어서다. 입지 선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만 좋은 입지가 넉넉한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장사가 잘 되면 임대료도 오르기 때문에 높은 수익성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다. 이에 따라 A급 상권에서 장사하다 B급 상권으로 이전하는 사람도 있다. 압구정동 인근이 특급상권이고 홍대 앞은 서민형 상권이던 시절에 홍대 앞에는 저렴한 음식점이 많았고 패션 옷가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후 압구정동에 장사하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어 임대료가 낮은 홍대 앞으로 이전한 옷가게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는 드문드문 있는 옷가게를 보면서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지금은 클럽, 각종 외식업 가게 등이 빼곡히 들어섰을 뿐 아니라 일부러 옷을 사러오는 젊은이가 많은 A급 상권이 됐다. 기존에 영업하던 다른 업종을 내보내고 의류판매점으로 개조하는 건물도 늘어났다.
◆미래 가치 변화 예측 ‘필수’
이처럼 입지의 가치는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되는 게 아니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한다. 지역 여건이 바뀌어 유동인구가 늘기도, 줄기도 한다. 최악의 상황은 현재 입지가 매우 높게 평가돼 상당한 권리금을 주고 들어갔지만 이후 유동인구가 줄고 입지 가치가 떨어져 고객이 감소할 때다.
수익성이 줄면 권리금까지 떨어져 그곳을 떠나려 할 때 큰 손실이 발생한다. 4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갔다가 이후 권리금이 1억원으로 떨어져 울상인 사람도 목격했다. 장사하던 사람만 손해가 아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땅값과 건물 가격이 모두 다 하락해 재산이 줄어든다.
현재의 입지여건이 좋은 곳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이는 현재의 권리금과 임대료에 이미 반영된 만큼 미래의 입지 가치 변화를 예측하는 게 더 중요하다. 성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게 최고의 선택이라는 얘기다.
지역개발계획, 도시계획 변경사항, 지하철역 개통계획, 횡단보도 설치계획, 유동인구 증가를 가져올 대형 상업건물의 신축계획, 직장인 증가를 유발할 대형 오피스빌딩의 건설계획, 주민의 변화를 유발할 재개발과 재건축 계획 등을 꼼꼼히 파악해야 한다.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한 기대감에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 실질적 변화가 나타나기까지 수년 이상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막상 변화가 나타났지만 새로운 변수가 등장할 수도 있어서다. 변화가 시각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초동기일 때가 최적의 시점이다. 이후 유동인구의 특성은 점차 강화된다. 오랫동안 동네 상황을 지켜본 거주지 또는 일터 근처가 변화를 판단하는 데 유리한 만큼 유심히 살펴보자.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