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과 안산을 잇는 소사-원시 복선전철 3공구현장이 대규모 공사대금 체불로 멈춰섰다. 2011년 착공해 내년 2월 준공을 앞둔 상황에서 공정률이 80%에 달했지만 중간 하도급업체가 수십억원대 공사대금을 횡령한 채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하청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인 것.

본지가 관련자료를 단독입수해 확인한 결과, 이 하도급업체가 공사 중인 현장은 무려 15곳에 달했다. 대부분이 고려개발·대우건설·대림산업·두산건설·포스코건설·한진중공업 등 국내 대형건설사가 시공을 맡은 현장이다.

대우건설. /사진=머니투데이 DB

◆회생 신청 후 회사이름 바꾸고 또 체불
문제가 된 하도급업체는 서울 마포구 양화로에 소재한 토목공사업체 대남토건. 1992년 설립된 회사로 외부감사법인이다. 그러나 지난 4월14일 신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남토건은 지난해 재무제표를 제출하지 않았다. 다만 국내 취업포털사이트 정보에 따르면 대남토건은 2015년 매출액 1456억원, 당기순이익 5억원의 건실한 기업이다.


대남토건은 소사-원시 현장뿐 아니라 인천 수인선, 우이-신설 경전철 1·2·4공구, 이천-충주 철도 5공구, 원주-제천 복선전철, 구리-포천 고속도로 4·6공구, 포항-삼척 철도, 상주-영천 고속도로 8·10공구, 장안-온산 국도 등을 수주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공사대금 체불액은 소사-원시 현장만 약 22억원에 달한다. 30억~40억원의 공사대금을 못받은 현장도 있다. 일부 현장은 공사를 완료해 놓고도 돈을 떼였다. 
소사-원시 현장에서만 피해 하청업체가 약 50여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남토건의 공사현장이 15곳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피해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피해업체는 대부분 지역에 소재한 군소건설사들이다.

소사-원시 현장의 경우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이레일이 발주해 민간투자를 받아 공사를 진행했다. 이레일은 NH농협금융지주의 자회사로 소사-원시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개통 이후 운영도 위탁받았다. 시공사는 대우건설 컨소시엄으로 대우건설·현대건설·한화건설·태영건설·한라·KCC건설이 투자했다.

대우건설에 따르면 대남토건은 2011년 하도급계약 당시 공시된 사업보고서상 매출액 등이 탄탄한 회사였으나 이후 공공토목공사가 줄어들면서 자금난을 겪었다. 대남토건은 지난 3월29일 법원에 회생을 신청했고 약 2주 만인 지난 4월14일 서울회생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회생절차 개시결정이 났다.

이에 하청업체 대표들은 채권단을 꾸려 발주처에 감사를 요구하는 한편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 대남토건 회생 중지를 요청했다. 채권단에 따르면 대남토건 오너일가는 직원 급여는 물론 퇴직금마저 체불한 상태에서 개인재산을 처분하거나 가족 명의로 이전했다. 지난해 박남춘 대표가 개인소유의 주유소와 땅을 매각하고 계열사 대남건설·대남스틸의 상호를 신진건설·신진스틸로 변경 후 아들 명의로 이전했다는 것. 또한 벤츠, 포르쉐 등 고급외제차까지 신진스틸 명의로 변경하는가 하면 신진스틸 공장부지를 담보로 KEB하나은행에서 34억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남토건의 회생 신청은 채무를 고의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하청업체 모두 공사비나 자재비를 3~5개월, 어떤 때는 1년 만에 받기도 했고 계약서도 없이 거래가 이뤄졌다”고 고발했다.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공사대금 등을 60일 안에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채권단 조사 결과 신진건설 역시 벌써 5~6곳 현장에서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대남토건은 현재 홈페이지를 폐쇄한 상태다.
본지는 이번 사태에 대한 대남토건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적절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대남토건 본사 관계자는 “지금은 바쁘니까 전화하지 말아달라”며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었다. 또 다른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한 결과 “알다시피 회사 사정으로 출근한 직원이 몇명 안되는 데다 기업회생절차에 관해 답변해줄 수 있는 담당자도 없으니 더 이상 전화하지 말아달라”고 답했다.


◆발주처·시공사 도의적 책임 도마 위
채권단은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가 하도급업체인 대남토건뿐만 아니라 발주처와 시공사 측에도 있다는 입장이다. 발주처 이레일과 시공사 대우건설은 공사 도중 대남토건이 하청업체에 공사대금을 미지급한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또한 2011년 하도급업체 선정 당시 수의계약을 체결한 점도 문제삼는다. 채권단 측에 따르면 대남토건은 2015년 미지급금이 8억원이나 있었음에도 이후 또 다른 하청업체에 공사를 맡겼다. 지금까지 밀린 식대 외상값만 2억원이 넘으며 5억원 가까운 돈을 떼인 하청업체도 있다.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하청업체에 피해액의 40% 보상안을 제시했으나 채권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직원들 월급이 밀린 곳도 있고 영세한 건설사는 60%를 손해 보면 회사 문을 닫을 처지”라며 “원청업체가 미지급금을 알고도 계속해서 공사를 진행한 데 대한 명백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공사는 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하도급대금을 전부 지불했다는 사실을 증빙할 수 있고 사실상 법적책임이 없지만 하청업체 대부분이 지역 내 영세한 건설사로 중간 하도급업체보다 더 자금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많은 것을 알기에 일부 보상안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선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과거 미지급금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경찰·검찰도 아닌데 하청업체도 잘 몰라서 공사를 계약하듯 원청업체라고 미지급금 여부를 알 길이 없다”며 “발주처와 시공사에서 하도급대금을 지급했는데도 중간에서 가로채는 사고가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