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채권 소각.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가계부채 1350조원 시대. 은행들이 천문학적인 빚의 굴레에 살고 있는 서민을 구제하기 위해 소멸시효가 완성된 ‘죽은채권’을 소각하고 있다.
죽은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으로 채권자가 돈 받을 권리를 기간 안에 행사하지 않아 채무자의 갚을 의무가 사라진 채권을 말한다.
보통 금융회사 채권은 5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변재의무가 사라지지만 채권자체는 그대로 남아있어 금융회사가 헐값에 매각해왔다. 부실채권에 따른 충당금을 쌓기 위해 채권을 팔아 조금이라도 수익을 남기려는 취지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실채권을 직접 소각한다. 채무능력을 상실한 서민의 부담을 온전히 없애주는 행보다. 서민금융 지원 효과가 극대화될 전망이다.
◆J노믹스, 한계채무자 구제공약… 채권소각 상시화 기대
은행권이 문재인정부의 가계부채 해결 공약에 따라 채권소각에 나섰다. 새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연체 채권을 소각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이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신한은행은 지난 3월 소멸시효를 포기한 특수채권 4400억원을 감면했다. 이로써 채무자 1만9424명은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가능해졌다.
최근 우리은행은 개인채무자 1만8835명의 특수채권 1868억원, KB국민은행은 9800억원, KEB하나은행은 1462억원을 소각 처리했다. 올해만 1조원이 넘는 죽은채권이 소각된 셈이다. NH농협은행도 연내 특수채권 소각에 나설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KEB하나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은 필요시 축적된 채권을 한 번에 소각하고 있다”며 “죽은 채권을 소각해도 은행에 끼치는 경제적 손실은 미미하기 때문에 채권 소각이 상시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채무자들의 빚을 소각하는 은행 행보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은행 자체 소각으로 소멸시효가 지나 대부업체 등에 헐값으로 떠넘겨지는 부실채권을 줄일 수 있어서다.
채무자의 빚을 갚아주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에 따르면 4월말까지 주빌리은행에서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3만6000명, 소각 처리된 부실채권은 총 6139억4612만원이다. 이들은 성금을 모아 올해 안에 1000억원의 빚을 탕감시킬 계획이다.
주빌리은행 관계자는 “은행 부실채권 소각으로 수만명의 서민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정부가 가계부채 해결방안으로 서민들의 부채탕감을 추진하는 만큼 정책 따라가기가 아닌 민간 금융회사의 지속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체율 20%, 서민금융 대출 관리가 우선
서민대출의 관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권이 부실화되기 전에 관리하면 부실율을 낮추고 회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책성 서민금융 지원 상품의 연체율은 20%수준으로 미국 등 선진국의 연체율인 1~10.5%에 비해 두 배나 많다.
새희망홀씨대출, 바꿔드림론, 햇살론, 미소금융, 소액대출 등 국내 주요 서민금융상품 연체율 평균치는10.2%다. 반면 미국의 대표적인 비영리 소액 서민금융 ACCION의 연체율은 1~3.8%, 프랑스 '마이크로크레딧' ADIE의 연체율은 7.4% 수준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서민금융 대출의 연체율을 줄이기 위해 금융기관 별 정책금융상품 데이터를 수집한 통합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 중이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단순한 데이터를 모으는 차원을 넘어 저신용자들의 소비패턴 등 경제적 역량을 연결시켜야 연체율 감소에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민들의 빚 탕감 취지는 채무 부담을 덜어 정상적인 금융생활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며 “서민금융 상품 취급부터 철저하게 관리하고 서민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후속조치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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