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평형수처리설비(BWMS) 의무설치기한이 기존 2022년에서 2024년으로 2년 연장되면서 조선업계와 해운업계의 희비가 엇갈렸다. 기존 노후선박의 활동기간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어서 배를 만드는 쪽은 울상이지만 배를 운항하는 쪽은 시간을 번 덕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제71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를 열어 현재 운항 중인 선박의 BWMS 설치시기를 비롯한 배출가스규제 등을 논의했다.
LNG선으로 개조한 초대형 선박. /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선박평형수, 왜 논란인가
대형선박은 화물의 무게나 화물을 실은 위치에 따라 평형수를 달리 채우면서 균형을 유지한다. 이를테면 선박의 오른쪽에 화물을 많이 실었다면 왼쪽 평형수를 채우는 식이다. IMO는 적재한 화물 무게의 30%를 평형수로 채울 것을 권고한다.
배에 화물을 실으면 무게중심이 달라진다. 중심이 불안정할 경우 작은 파도에도 배가 뒤집힐 수 있어 무게중심을 낮추면서 좌우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배 바닥과 좌우에 설치된 물탱크가 바닷물을 빨아들여 ‘평형수’(블라스트수)를 채운다. 말 그대로 평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무게추’다.
하지만 평형수가 필요없는 상황이 되면 바다에 물을 다시 버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해양생태계가 오염되는 게 문제가 됐다. 특정 해역에서 대량으로 빨아들인 물을 다른 곳에 그대로 쏟아내면서 물속에 포함된 각종 수중생물과 오염물이 해양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상황이 발생해서다.
이에 IMO는 2004년 선박평형수 주입 및 배출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회원국의 모든 선박에 평형수 안의 수중생물을 제거하는 장치를 강제로 설치하는 내용의 관리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이 오는 9월8일 발효된다.
협약이 발효된 다음부터 새로 건조되는 선박은 BWMS 설치가 의무지만 발효 전 건조된 ‘현존선박’은 처리설비를 언제까지 보완해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다가 이번 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협약에 따르면 당초 현존선박은 9월 협약이 발효된 다음 해양오염방지검사증서(IOPP)에 따라 5년 주기의 첫번째 정기검사일이 도래하기 전까지 일괄적으로 BWMS를 설치해야 했다. IOPP는 선박의 해양오염방지설비가 국제협약에서 정하는 요건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사한다. 그러나 회의에서는 이 기준을 모든 현존선박에 적용하면 협약발효 후 4~5년 뒤인 2021~2022년에 설비수요가 집중될 것을 우려했다. 노르웨이 등지의 여러 선사가 선박 개조에 필요한 조선소 도크 부족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유예를 요청했고 IMO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설치기한을 2014년 9월8일 이전에 정기검사를 받은 선박과 2014년 9월9일 이후에 검사받은 선박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설정함으로써 검사시기에 따라 최대 2024년까지 설치기한이 늘어났다.
아울러 기존선박이 육지로부터 최소 50마일 이상 떨어졌고 수심이 200m 이상인 ‘평형수 교환수역’에서 평형수를 교체하는 조건으로도 설치유예가 가능하다. 또한 한-중-일 항로처럼 조건을 만족하는 수역이 없을 경우에는 교환수역이 아닌 곳에서도 배출할 수 있도록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독자 개발한 ‘고압천연가스 연료공급장치’. /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LNG선 실증설비. /사진제공=현대중공업
◆에코십 두고 '온도차'
한국선주협회는 올해 처리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국적선사의 선박이 총 126척이고 설치비용은 609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앞으로 5년간 설치대상 선박은 총 586척, 설치비용은 3500억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내놓아 당장 막대한 지출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장기불황으로 선사들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이었던 해운업계는 이번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앞서 해양수산부도 금융위원회, 해양금융종합센터, 한국해양보증보험, 선주협회와 함께 처리설비 설치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선사는 한국해양보증보험의 보증제도를 활용해 설치비용의 최대 76%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이에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박에 따라 최대 2년의 시간을 벌게 됐다”면서 “선사 입장에서 환경규제에 대응하려면 운영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조선업계의 입장은 해운업계와 정반대다. 그간 수주가뭄에 허덕인 터라 새로운 일거리가 아쉬웠는데 이번 결정으로 발주가 대거 늦춰질 게 명약관화해서다.
한국선주협회는 올해 처리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국적선사의 선박이 총 126척이고 설치비용은 609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앞으로 5년간 설치대상 선박은 총 586척, 설치비용은 3500억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내놓아 당장 막대한 지출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장기불황으로 선사들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이었던 해운업계는 이번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앞서 해양수산부도 금융위원회, 해양금융종합센터, 한국해양보증보험, 선주협회와 함께 처리설비 설치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선사는 한국해양보증보험의 보증제도를 활용해 설치비용의 최대 76%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이에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박에 따라 최대 2년의 시간을 벌게 됐다”면서 “선사 입장에서 환경규제에 대응하려면 운영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조선업계의 입장은 해운업계와 정반대다. 그간 수주가뭄에 허덕인 터라 새로운 일거리가 아쉬웠는데 이번 결정으로 발주가 대거 늦춰질 게 명약관화해서다.
조선업계는 일반적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데 2년여가 걸리므로 당초 평형수 관련규제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신규선박 발주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단기적인 일감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 당분간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2020년부터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는 그대로 진행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보면 이번 회의는 국내 조선업계에 호재다. IMO는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2015년 14.4g/KWh에서 지난해 3.4g/KWh로 강화했고 황산화물(SOx)에 대한 규제도 2015년 3.5%에서 2020년부터는 0.5%로 엄격하게 관리할 방침이다.
이에 영국의 조선·해운분석기관인 클락슨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LNG선의 발주량이 올해 18척에서 2019년부터 연평균 31척 수준으로 7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조선업계도 LNG(액화천연가스)추진선박과 에코십 관련기술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와 황산화물 저감장치(scrubber)는 이미 국내개발을 마쳤고 신규수주 외에도 기존 선박을 LNG추진선으로 개조하는 모듈화 기술도 연구개발을 이어가는 중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신규수주 물량은 이번 결정과 관계없지만 문제는 기존에 돌아다니던 노후선박의 활동이 길어진다는 점”이라며 “이번 결정은 장기적 문제가 아니라 단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당장 2020년부터 시작되는 배출가스 규제는 그대로여서 고부가가치 에코십에 기대를 거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7호(2017년 7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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