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한별 기자



‘갈라파고스’ 또는 ‘외산폰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 스마트폰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최근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 올 2분기 시장점유율이 1분기보다 무려 2배 이상 늘어난 것. 전통적으로 자국제품 선호도가 강한 일본에서 오랜 노력 끝에 얻어낸 성과라 더욱 관심이 쏠린다. 과연 삼성전자는 아이폰 일색인 일본 스마트폰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분기에 일본 스마트폰시장에서 약 70만대를 판매하며 3위로 올라섰다. 시장점유율은 1분기의 3.8%보다 2배 이상 높은 8.8%를 기록했는데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 4년간 일본에서 기록한 최고 실적이다.



1위는 무려 330만대를 판매해 41.3%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한 애플이었다. 애플은 수년간 일본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했으나 신작 아이폰 공백기를 맞아 점유율이 급감했다. 2위는 130만대(16.3%)를 판매한 소니였다. 1분기에 삼성전자를 앞섰던 샤프(6.3%)와 후지쯔(6.1%)는 한계단씩 밀려나 4·5위가 됐다.
삼성전자는 2012년 일본시장 점유율 14.8%를 기록한 이후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남다른 시장지배력을 과시하는 애플과 일본 토종기업들에 밀린 탓이다.

◆일본기업들, 잇따라 스마트폰사업 철수


일본에서는 애플의 위세에 눌렸지만 글로벌 스마트폰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SA 조사에 따르면 2분기 글로벌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시장점유율 22.1%로 1위 자리를 확고히 수성했다. 2위 애플의 점유율은 절반에 못미치는 11.4%에 불과하다. 화웨이(10.7%), 오포(8.2%), 샤오미(6.4%) 등 중국 3사가 뒤를 잇는다.

이처럼 글로벌 스마트폰시장은 삼성전자와 애플, 중국기업의 3파전 구도가 확립된 지 오래다. 일본기업들은 모두 기타(Others)에 포함돼 눈에 띄지 않는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전자기업들이 스마트폰시대를 맞아 ‘안방 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스마트폰산업 초창기인 2008년 즈음만 해도 일본기업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NEC, 카시오, 히타치, 소니, 후지쯔, 도시바, 샤프, 파나소닉, 교세라, 산요전기, 미츠비시전기 등 무려 11개의 기업이 수많은 휴대폰을 생산했다. 국내에서도 독특한 외형과 기능에 매료된 마니아층이 형성될 정도로 일본 휴대폰의 경쟁력은 탄탄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휴대폰제조사는 소니, 샤프, 후지쯔, 교세라 등 4곳에 불과하다.


가장 큰 원인은 ‘아이폰’이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고 이에 맞서 안드로이드 진영이 형성되며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대중화되는 가운데 일본기업들은 일명 ‘가라케’(갈라파고스 휴대폰)라 불리는 일본시장에 특화된 스마트폰 생산에 매달렸다. 이 타이밍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시장을 한국과 중국 제조사들이 재빠르게 선점했다.

아이폰과 일본산 안드로이드폰, 한국·중국이 생산한 안드로이드폰으로 선택이 제한되자 대부분의 일본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한 아이폰을 선택했다. 이동통신사들의 염가 대량판매정책도 아이폰 점유율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일본이 세계에서 아이폰 점유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는 과정에서 토종 휴대폰제조사들은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08년 미츠비시전기가 휴대폰사업에서 철수했고 2010년에는 산요전기가 교세라에 매수되고 도시바가 후지쯔에 통합됐다. NEC와 카시오, 히타치는 2010년 통합돼 NEC카시오를 만들었으나 결국 2013년 철수했다. 비슷한 시기 파나소닉도 스마트폰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남은 4곳 중에서도 샤프와 후지쯔, 교세라는 조만간 철퇴가 예상된다. 이미 후지쯔는 지난달 22일 휴대폰사업 매각 방침을 공개했다. 소니 외에는 모두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아이폰 인기, 한국폰 불신 넘어야

일본 휴대폰제조사들의 잇따른 스마트폰사업 철수는 한국과 중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삼성전자는 가장 큰 수혜자로 지목된다. 과연 삼성전자는 일본시장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일단 낙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SA는 올 2분기 삼성전자의 급성장세가 갤럭시S8과 S8플러스의 선전 덕분이라며 현지 소비자가 갤럭시S8시리즈를 안드로이드 최강자임을 인정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8을 출시하는 3·4분기에는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낙관했다. 우수한 제품 경쟁력이 일본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측이다.

반면 아직 낙관은 이르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주된 이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은 일본 소비자들의 아이폰 충성도와 한국산 스마트폰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다. 2015년 삼성전자는 갤럭시S6을 일본시장에 출시하며 제품에서 ‘SAMSUNG’ 로고를 제거하는 강수까지 썼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일본 소비자 사이에서 삼성전자와 갤럭시에 대한 재평가 흐름이 포착된다는 점”이라며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갤럭시S8의 카메라 성능과 엣지디스플레이를 찬양하는 게시물이 꾸준히 눈에 띄어 서서히 저변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5호(2017년 9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