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진화-하] 전문가에게 듣는 ‘한복 이야기’

한복이 가까워졌다. 고궁이나 전통거리를 다니다 보면 한복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걸 알 수 있다. 한복은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면서 예복의 개념을 벗어버렸다. 하지만 한복에 대한 교육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고 대중화에 치중된 나머지 전통성이 훼손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머니S>는 달라진 한복 문화를 조명하고 올바른 계승을 위한 방안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한복이 다양화됐다, 보편화됐다 등의 표현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옷은 한 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데 현대 한복은 일상복이 아닌 예복으로만 쓰였을 뿐이죠. 보다 많은 사람이 입고 즐길 수 있도록 편리해진 생활한복은 우리 전통을 지키고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김소현 배화여자대학교 패션산업과 교수는 한복이 하나의 문화상품을 넘어 자기 개성을 표현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추억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한복이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다양한 디자인의 생활한복이 시도돼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복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나 품격 또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냈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에서 고대의상 연구활동을 했다. <조선왕실 여인들의 복식>, <실크로드의 복식, 호복> 등을 저술하고 한복진흥센터 디자인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김소현 교수. /사진=임한별 기자

◆생활한복은 언제 우리 곁에 가까이 왔을까
- 언제부턴가 생활한복을 입은 사람이 많아지고 유행이 됐다.
▶ 옷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사와 사고를 나타낸다. 문화적 관계 속에 옷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사회적 배경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개량한복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복이 개량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복으로서의 한복이 불편한 것은 서양 웨딩드레스를 평소에 입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과거에는 한복이 일상복이고 양복이 특별한 옷이었는데 현대사회에 와서는 반대로 한복이 특별한 날 입는 옷으로 바뀐 것뿐이다. 생활은 변화했는데 모양은 바뀌지 않으면 패션으로 살아남아 의복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서양옷은 대중화시대를 통해 달라졌는데 한복은 19세기 모습대로 멈춰있었다. 한복이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입기 편한 옷이 되려면 새로운 디자인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복산업이 침체하면서 한국사람 누구도 의례가 아니면 더이상 입지 않는 한복이 됐다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생활한복 덕분이다. 1980년대 후반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이후 대학생이나 여성 정치인들은 시위운동을 위해 입거나 한복 모양의 임신복을 제작해 입었다. 2000년대 전후로 돌실나이, 이새 등이 론칭하며 생활한복이 유행했다.

- 인사동이나 경복궁 등을 가면 한복을 입은 관광객이 많아져 우리 전통을 알리는 데 일조한 것 같다.
▶ 옷은 의식주 중 하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놀이의 개념으로도 입는다. 한복도 이런 의미에서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젊은 친구들에게 한복의 이미지를 물어보면 “고리타분하다”, “부담스럽다”는 반응이었는데 요즘은 “예쁘다”, “입고 싶다” 등의 긍정적인 인식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사진으로 남기는 즐거움, 특별한 날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옷으로서의 한복이 좋은 영향을 줬다. 무거운 예복의 개념을 벗어버린 것이다. 한복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모여 ‘한복놀이단’을 만들고 사람이 많은 곳에 한복을 입고 가서 시선을 끈 것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며 해외에서도 주목했다. 예전에 한 학생은 한복을 좋아하는데 주변사람의 ‘쟤는 뭐지?’라고 보는 듯한 시선 때문에 마음 편히 입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은 이런 시선이 사라졌다. 인사동과 경복궁의 대여한복이 인기를 끄는 것은 누구나 드라마 사극의 주인공 같은 예쁜 한복을 입어보고 싶은 심리가 있는데 예전에는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험의 기회를 늘려줬다는 점에서 좋은 현상이다.
김소현 교수. /사진=임한별 기자

◆“전통 계승 불필요하다는 의미 아니야”
- 한복의 발전을 위한 어떤 노력들이 있나.
▶ 지난해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에서 우리 문화체육관광부에 한복을 배울 수 있는 패션스쿨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패션산업의 메카 로마에 강사를 파견해 강연하고 학생들이 디자인한 한복을 전시하며 패션쇼도 열었다. 직접 가르치진 않았지만 강연을 다녀온 분에게 “한복이 이렇게 깊은 생각이 담긴 옷인지 몰랐다. 자부심이 느껴지고 뿌듯했다”는 말을 들었다. 외국학생들에게는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다 보니 더 파격적인 디자인이 많이 나왔다. 한 일본학생은 임금의 보를 반으로 접어 가방을 만들었다. 한국의 패션이 주목받으려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 한복진흥센터 공모전 역시 전통한복을 벗어나 현대인과 호흡할 수 있는 옷을 제안해보자는 일환으로 해마다 열린다. 2015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당시 작품이 가진 실용성을 위주로 평가하되 한복의 원형을 갖고 어떻게 창의성을 표현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원형 한복에서 출발하지만 입을 수 있는 기능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를테면 남자 한복바지는 허리가 아닌 엉덩이 둘레에 맞춰서 입는 방법을 잘 모르면 줄줄 흘러내린다. 한복을 입게 하려면 누구나 편안해야 한다.

- 한복의 변형된 모양에서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일각에서는 입는 방식의 변형이나 선정적인 모양의 한복이 고유의 멋을 해친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옷과 패션은 변하는 게 맞다. 너무 희화화하지 않는다면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본다. 다만 격조 있는 예복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한 한복도 필요하다. 한복은 조상들의 예절과 당시의 여러 사고를 반영한 유산이다. 최근에는 결혼문화도 함이나 폐백을 불필요한 전통이라 여겨서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자녀들을 결혼시켜 보니 조금 아쉬웠다. 사실은 폐백의 의미가 신부 집에서 먼저 혼례를 한 뒤 남편 집에 가서 올리는 의식이므로 현대의 예식장 결혼식을 할 때는 불필요한 게 맞다. 그렇지만 일생일대의 주인공이 되는 행사고 추억이니까 재미를 위해서 남겨놓아도 되지 않을까. 예전에는 한옥도 철거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보존가치가 높아졌다. 한복 같은 우리 문화를 더 존중하고 잊지 않기 위한 문화적 성숙과 노력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설합본호(제577호·5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