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가까운 휴식 같은 공간. 옥상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 알던 출입금지 공간이 아니다. 축구공 차는 소리가 들리거나 식물들의 터전이 되고 누군가의 특별한 날을 빛내주기도 한다. 버려진 공간에서 누리는 파라다이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옥상의 이색 공간을 들여다봤다.<편집자주>
[옥상의 재발견-하] 50년만에 열린 ‘세운상가 옥상’
2017년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는 시민에게 세운상가 옥상을 공개했다. 50년 만에 공개한 세운상가 옥상에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머니S>는 지난 18일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갔다.
세운옥상 전경. /사진=심혁주 기자
◆종묘, 남산타워…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서울
북쪽을 바라보니 종묘 위로 펼쳐진 북한산이 들어왔고 남쪽으로는 남산타워가 선명히 솟아 있다. 서쪽에 오래된 가게들을 따라가다 보면 빌딩 숲이 펼쳐지고 반대쪽에는 광장시장을 지나 동대문 두산타워가 눈에 띈다.
세운상가 옥상(서울옥상)에 올라가면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밑으로 보이는 낡은 건물들과 재래시장은 19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멀리 보이는 고층빌딩과 어색한 조화를 빚어내고 있다.
세운상가는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번창했지만 최근엔 유통환경의 변화로 영광을 잃은 상태다. 서울시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를 ‘공구특화거리’로 지정해 문화해설사와 함께 골목 구석구석을 살피는 관광 상품을 내놓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오래된 공구상가들 사이에 광장이 보인다. 호객하는 상인과 구경 온 시민들은 온데간데없다. 세운상가는 몇 걸음만 걸어도 나오는 시끌벅적한 거리와 대조적으로 한적했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느껴보지 못한 조용함이다. 광장 한 켠의 스탠드에 앉아 있던 윤모씨(70대·남성)은 “이 곳이 조용해 자주 와서 쉰다. 가끔 공연도 구경한다”고 말했다.
새운상가에 들어서면 로봇조형물 ‘새봇’이 손님을 맞이한다. 미사일·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호황기를 누린 세운상가의 기술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지금 들리는 소리는 새봇의 기계식 음성뿐이었다. 세운상가 안내원에게 옥상으로 가는 길을 묻자 “길을 잘못 찾으시는 분들이 많다”며 뒤쪽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세운상가 정문으로 들어간 뒤 조망 유리창이 달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가니 시야가 넓어진다. 도시 한복판 어중간한 높이에 오르자 보이지 않던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고층 빌딩 앞에 펼쳐진 여관과 작은 가게들은 옛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려가려던 차에 처음으로 관광객 무리가 보였다. 친구들과 세운상가를 구경 왔다는 대학생 이모씨(25·여)는 “세운상가는 한적하고 오래된 상점들이 많아 나만의 숨은 명소라고 생각해 동아리 사람들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위쪽부터)세운상가, 메이커스큐브, 세운상가 새봇, 세운상가 점포. /사진=심혁주 기자
◆겉은 화려, 과거에 머문 상가
내려오는 길에 세운상가 내부로 들어갔다. 이씨 말대로 세운상가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상인들은 음향기기, 무전기, 도청탐지기 등 각종 전자기기를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깔끔한 외부와는 달리 내부 상점가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 손님은 고사하고 주인이 없는 상가도 많았고 대부분의 상가 문은 닫혀 있었다. 한 상인은 ‘사람들이 많이 오냐는’ 질문에 “상가에 관광객이 오는 거 같은데 여기(상점가)에는 별로 도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미로 같은 상점가를 지나 보행로로 나오니 ‘메이커스 큐브’라는 신축구조물이 보였다. 보행로를 두고 신축 구조물과 기존 상가가 대조적인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다. 메이커스 큐브는 청년 스타트업을 모아 도시 창의제조산업의 혁신지로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이다.
제조업 분야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포부와 달리 동력을 잃고 있다. 주변 공구상가 거리의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단골 공구상들이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을 반영한 듯 이날 찾은 메이커스 큐브는 활력 없이 정적인 모습이었다.
◆유보된 재개발… 대안은 뭘까.
현재 세운상가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재개발을 외치는 토지주와 쫓겨날 위기에 몰린 공구상가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은 2006년부터 추진 돼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양쪽 구역을 재개발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서울시는 무분별한 도시 개발보다 재생사업으로 방향을 돌렸다. 세운상가를 리모델링한 ‘다시 세운 프로젝트’도 재생사업의 일환이다.
재개발 논란이 끊이지 않자 박 시장은 올해 초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도시개발이 돼야 한다”며 “전면적 재검토를 거쳐 대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박 시장은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을 전면 유보한 상태다.
세운상가는 이러한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오냐’는 기자의 질문에 세운상가 안내원은 “요즘은 관광객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날씨가 좋아지면 4월에는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세운상가 옥상은 2017년 9월 서울시의 ‘다시 세운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시민에게 개방됐다. ‘다시 세운 프로젝트’는 1970년대 전자·전기 산업의 메카였던 서울 세운상가를 제조업과 신기술이 결합한 첨단 산업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다시 세운 프로젝트 창의제조 산업 활성화 계획’의 일환이다. ‘서울옥상’이라고 이름 붙은 전망대 쉼터는 과거엔 일반인이 올라올 수 없었다. 이곳은 탁 트인 전망뿐 아니라 넉넉한 앉을 공간과 텃밭도 꾸며져 있어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예술제, 영화제, 야시장 등 다양한 시민행사도 열린다. 입장료는 없고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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