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시작된 자체브랜드(PB) 열풍이 홈쇼핑업계에서 무르익고 있다. 홈쇼핑업계는 패션, 리빙, 식품 할 것 없이 PB상품을 내세우며 자사제품 알리기에 한창이다. 다른 회사의 상품을 주로 소개하는 기능을 담당하던 TV홈쇼핑업체들이 직접 PB제품을 만들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홈쇼핑 이구동성 "PB 없이 못살아"
홈쇼핑시장은 지금 PB전쟁 중이다. 2000년대 초반에 일부 홈쇼핑업체가 PB제품을 운영했지만 소비자 반응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주요 홈쇼핑업체 모두 PB라인을 강화하는 추세다. 심지어 패션쪽 PB로 한정됐던 상품리스트에는 식품도 추가되기 시작했다.
소비자 반응도 좋다. 지난해 주요 4개 홈쇼핑사 모두 PB제품이 판매 1위를 차지했다. 홈쇼핑 4사에 따르면 2018년 톱10 브랜드 40개 중 절반인 20개 제품이 각 사의 PB인 것으로 나타났다. CJ오쇼핑은 올해 판매 순위 톱10 중 절반인 5개를 단독 브랜드로 채웠다.
고객 반응이 좋다보니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PB라인을 강화하는 추세다. CJ오쇼핑은 2001년 언더웨어 ‘피델리아’로 첫 자체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 꾸준히 PB상품 라인업을 늘려왔다. 2015년 선보인 ‘VW베라왕’을 시작으로 ‘셀렙샵 에디션’, ‘씨이앤 태용’, ‘키스 해링’, ‘장 미쉘 바스키아’ 등 20여개 자체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VW베라왕의 경우 론칭 후 2년간 누적 주문액이 1700억원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자체 식품 브랜드 ‘오하루 자연가득’의 상품 카테고리를 확대하면서 본격적인 식품PB 공략에 나섰다. 2014년 론칭된 자연주의 식품 브랜드 ‘오하루 자연가득’은 CJ오쇼핑의 효자PB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대표 상품인 석류즙은 누적 주문금액 4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5월부터는 국산콩 두유 시장점유율 1위 브랜드 ‘황성주 국산콩두유’와 손잡고 프리미엄 두유를 본격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CJ오쇼핑 관계자는 “이번 식품 카테고리 강화는 CJ ENM 오쇼핑부문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품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현대홈쇼핑은 패션PB ‘밀라노스토리’ 성장에 주력한다. 이를 위해 명품 브랜드 구찌, 생로랑 등에서 디자인과 패턴, 소재 개발 업무를 담당했던 마테오 판토네와 협업을 강화했다. 현대홈쇼핑은 밀라노스토리를 시작으로 패션 브랜드사업에 속도를 내고 지난해 패션 매출에서 34% 수준이었던 PB 매출 비중을 50%까지 높일 계획이다.
특히 현대홈쇼핑은 아예 자체 상품 배송 시 사용할 친환경박스를 개발했다. 지난달부터 비닐 테이프가 필요 없는 친환경 배송상자 ‘날개박스’를 도입한 것. 현대홈쇼핑은 PB브랜드 라씨엔토와 밀라노스토리의 4월 방송 상품부터 날개박스를 우선 도입했고 순차적으로 적용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이 박스는 기존 배송박스보다 날개박스 제조 단가가 40%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홈쇼핑 측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친환경 '착한 배송'을 위해 이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PB브랜드에 대한 고객반응을 신경쓰고 있다는 증거다.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PB상품군에서 올린 매출액은 2000억원에 달한다. 롯데홈쇼핑은 ‘패션 이즈 롯데’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며 ‘조르쥬 레쉬’를 시작으로 ‘다니엘 에스테’, ‘샹티’, ‘페스포우’, ‘케네스콜’, ‘LBL’, ‘아이젤(izel)’ 등 PB라인업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특히 2016년 9월 론칭한 LBL은 현재까지 누적 주문 금액만도 2500억원에 달한다. 3시간 동안 주문금액 110억원 신화를 만드는 등 어느새 연간 주문액 1000억원의 메가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PB 강화 3가지 이유
이처럼 홈쇼핑업계가 PB 판매에 주력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이 ‘가성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PB상품은 상품기획부터 생산까지 독자적으로 제작한 브랜드로 유통과정과 브랜드 사용비가 줄어 이익률이 높다. 제조업체를 따로 두고 단독으로 판매 지위를 갖는 이른바 ‘자산화 브랜드’와 차이가 있다.
특히 PB는 독점판매가 가능해 브랜드 인기가 곧 회사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원단과 재질을 쓴 제품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홈쇼핑에서 ‘프리미엄 의류’를 판다는 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다. 홈쇼핑에서는 저렴한 제품을 산다는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GS홈쇼핑의 프리미엄PB ‘소울’이 히트를 치며 판도가 바뀌었다. 고객들은 홈쇼핑 제품이라도 가성비 가격을 내세운 프리미엄PB제품에 열광했다. 이후 타즈마니아 울, 헝가리 구스다운, 페루산 베이비 알파카, 터키산 천연 무스탕 등 최고급 소재를 사용한 제품도 잇따라 완판되는 등 홈쇼핑 판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또한 PB제품 판매 시에는 중소·중견 납품업체와의 갈등 요인도 줄일 수 있다. 방송시간과 수수료 조절 등으로 홈쇼핑과 중견업체간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PB제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됐다.
홈쇼핑업계의 황도 PB제품 강화 요인 중 하나다. 최근 홈쇼핑시장이 정체된 데 더해 송출수수료 부담까지 늘며 업체들의 실적은 타격을 입었다. TV홈쇼핑 7개사 중 지난해 영업이익이 증가한 곳은 단 한곳도 없었으며 상위 4개사도 5~18%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기존 제품들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홈쇼핑들이 자체 PB로 돌파구를 찾는 셈이다. 최근 경기불황과 함께 온라인채널들의 성장이 이어지며 차별화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홈쇼핑업체들에게 PB라인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현재 홈쇼핑 채널들의 패션 승부수는 ‘프리미엄PB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패션에서 시작된 PB 열풍이 리빙, 식품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1호(2019년 5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