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으로 여겨졌던 플라스틱이 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다가왔다. 인류의 역사를 석기-청동기-철기시대로 나눈다면 현대는 플라스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부터 태양전지 제조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없는 현대문명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플라스틱 사용을 억제하려는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와 환경단체가 고강도 규제를 내놨고 기업들도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며 신소재 개발 등 대안을 내놓고 있다. <머니S>는 전방위 산업군에서 일어나는 ‘플라스틱 프리’ 현상을 살펴보고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굿바이, 플라스틱-중] 플라스틱 규제의 ‘빛과 그늘’
신용카드 한장, 또는 볼펜 한자루. 한 사람이 일주일간 음식을 섭취할 때 몸안으로 함께 흡수되는 플라스틱 양이다. 최근 세계자연기금(WWF)은 물이나 조개류, 맥주, 소금 등을 섭취할 때 함께 인체로 흡수되는 미세 플라스틱이 한달간 칫솔 한개(21g) 분량과 맞먹는다고 밝혔다. 우리는 1년간 칫솔 12개 분량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는 것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정부가 환경파괴 문제를 우려해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한 가운데 올 초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하면서 전세계가 플라스틱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은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 중 한곳이어서 플라스틱 사용 의 부작용을 더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플라스틱 프리’ 열풍에 대부분의 국민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드러내놓지 못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규제로 촉발된 탈 플라스틱 바람이 자칫 전반적인 플라스틱 사용규제로 확산될 것을 우려해서다. 플라스틱 문제를 두고 정부와 환경단체, 일부 업체 사이에 예민한 신경전이 일고 있다.
◆빨대‧비닐 사용 억제 1년 효과는?
국내에서 사용하는 일회용컵은 연간 257억개가 넘는다. 일회용 빨대는 100억개, 비닐봉투 211억개, 세탁비닐은 4억장이나 된다. 국내 플라스틱 사용량은 2016년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연간 132.7㎏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93.8㎏이나 일본 65.8㎏보다 확연히 많다.
일찍이 일회용품 사용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직접 해법 찾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예전부터 환경 보호를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민간 차원의 움직임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근래에 들어 바뀐 현상이다.
정부는 프랜차이즈빵집의 비닐봉투 무상제공을 금지시켰고 커피숍 매장 안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그 결과 국내 2대 프랜차이즈빵집의 비닐봉투 사용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3.7% 줄었다.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의 일회용컵 수거량도 지난해보다 72%가량 감소했다.
커피‧편의점 등 유통업체가 일시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회복세로 돌아섰다. 규제 적용 초기에는 소비자 불만이 쏟아졌고 업주와 직원들까지 혼란스러워 했지만 최근에는 재계와 금융권까지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전방위적인 인식의 변화를 실제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비닐봉투 대신 에코백을,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요 기업들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 의지를 다지고 있다.
김춘이 환경운동연합 부총장은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업과 소비자의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고 개인텀블러를 지참하는 등 환경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억제 좋지만… 효자 산업 위축될라
정부는 재활용폐기물에 이어 최근 해양플라스틱 쓰레기 저감대책 등을 발표했다. 이중포장 금지, 과대포장 규제대상 확대 등 세부 정책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플라스틱쓰레기는 집하장, 유출방지시설에서 집중 관리할 계획이다.
반면 정부의 고강도 규제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환경보호가 중요하다는 시각에는 이견이 없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장 플라스틱산업이 타격을 입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실제 중소기업벤처부가 발표한 ‘2019년 5월 중소기업 수출 동향’에 따르면 플라스틱산업은 국내 중소기업 상위 20대 수출 품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플라스틱 수축 규모는 2017년 52억1200만달러에서 2018년 50억6900만달러로 소폭 감소했지만 올 1월부터 5월까지 22억28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0.9%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플라스틱 사용규제 정책은 화학제품 수요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일부 정유사들은 신소재 투자 등으로 돌파구 마련에 애쓰고 있지만 아직은 생산원가가 높아 관련 제품이 대중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업계 한 관계자는 “플라스틱 사용규제로 초래할 산업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과감한 체질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근 국내외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환경오염 이슈가 커지면서 화학사들이 친환경플라스틱 개발 속도를 예전보다는 빠르게 진행하고 있으나 상용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행보를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플라스틱 사용규제에는 찬성하지만 대안이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학계에서는 플라스틱 사용규제의 피해를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현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승호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플라스틱 사용규제는 찬성하지만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며 “무작정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것보다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친환경 플라스틱 등 신소재를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정부가 일회용컵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며 “일회용컵 규제가 필요해도 이 사안은 기업과 소비자 간의 충분한 토론을 거쳐 결정해야 할 일이지 국가가 나서서 주도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1호(2019년 7월16~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1호(2019년 7월16~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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