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 대표. 이 대표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수제맥주 양조장 겸 이탈리안 다이닝 펍을 운영 중이다. /사진=장동규 기자
마시고 느끼고 즐긴다! 인생 바꾼 ‘맥주 호기심’

“은퇴 후에 강릉에 작은 양조장을 내서 소소한 노년을 보내고 싶어요.”
수제맥주에 빠져 사는 이인호 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 대표는 담담하게 자신의 꿈을 드러냈다. 다양한 맥주를 맛보고 연구하기 위해 이역만리 미국행도 서슴지 않던 열정과 비교하면 의외로 소박해 보였지만 그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확신에 차 있었다. 이 대표는 “그때쯤이면 제 맥주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에도 매장 하나쯤은 내지 않겠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다니던 직장도 퇴사하게 만든 그의 맥주 열정은 아직 세상에 절반도 보여지지 않았다.

‘맥주사랑’의 출발점은 호기심
이 대표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수제맥주 양조장 겸 이탈리안 다이닝 펍을 운영 중이다. 쉽게 말해 양조장을 갖춘 레스토랑이다. 다양한 수제맥주와 식사·안주를 곁들일 수 있어 점심·저녁 시간에 늘 북새통이다. 지금은 잘나가는 수제맥주 레스토랑 사장이지만 그의 출발은 평범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우연히 수입맥주를 마시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맛에 큰 충격을 느꼈다”며 “이런 맛을 직접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수제맥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가 집에서 자가 양조를 통해 원하는 맛을 직접 만들어 나가게 됐고 영역을 넓혀 사업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수제맥주에 빠지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거침없다. 이 대표는 이후 다양한 맥주의 세계를 알리는 웹사이트를 열어 칼럼도 쓰고 수제맥주에 관심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도 진행했다. 그러다 뜻을 같이 하는 동업자를 만나 작은 규모의 펍 창업에 도전했고 현재는 양조장을 갖춘 수제맥주 레스토랑 사장이 됐다.

이 대표는 첫 사업을 시작한 2013년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수제맥주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일종의 마니아 문화였다고 회상한다. 그는 “그때와 요즘의 가장 큰 차이는 일반 대중에게 수제맥주가 꽤 많이 알려졌다는 점”이라며 “아직 저변이 많이 부족하지만 생각보다 일상에서 편하게 즐기는 문화로 점점 발전해 나가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인호 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 대표. /사진=장동규 기자

손 떨리던 퇴사의 기억
이 대표는 이 세상에 다양한 수제맥주의 매력을 전파하는 데 일조한 것 같아 항상 뿌듯함을 느끼지만 사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교육콘텐츠 제작 업체에 다니던 이 대표는 첫 번째 매장 운영을 직장생활과 병행했다. 이듬해에 두 번째 매장을 열기로 계획했을 때는 직장과 매장 두 곳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퇴사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고민 끝에 직장을 포기하기로 한 날 밤잠이 안 오더라고요. 사직서를 다 쓰고 인쇄까지 했는데 마지막 서명란에 도저히 서명을 못 하겠는 겁니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겨우 마무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의 결단으로 오늘에 이르렀지만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업종 특성상 발효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미생물 관리가 잘못돼 맥주를 망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일반 음식점에서 조리 실수나 소스에 문제가 생기면 아까워도 버리고 다시 만들면 되는데 수제맥주의 경우 한번 망치면 1000ℓ를 버려야 해 비용도 상당하고 다시 만들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도 같이 허공에 날리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 대표는 이왕 이 길로 들어선 마당에 상품 경쟁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수제맥주와 맛있는 음식·외식사업의 기본이 되는 부분을 앞으로도 빈틈없이 잘 다져나가고 싶고 이왕이면 경제적인 부분도 여유로워지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인호 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 대표. /사진=장동규 기자

영원한 버팀목 ‘가족’
이 대표는 현재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가장 후회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 호기심과 취미로 시작한 것들이 일상이 되고 직업이 되니 예전처럼 마냥 즐겁지 않다는 것.

이 대표는 손님이 많은 다른 가게에 가면 흥겹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 숫자와 손님 연령대, 메뉴 가격, 매장 크기, 맥주 구성 같은 요소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허탈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맥주를 취미로 소비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사업으로 생각이 연결되다 보니 골치가 아픕니다. 그래서 요즘은 좋은 맥주를 만나면 즐거운 감정과 동시에 이걸 어떻게 만들까 하는 고민도 들죠.”

이 대표는 매 순간 힘들어도 이왕 시작한 일을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인사·노무·세무·회계·외식경영·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 등 여러 분야의 전문 교육과정을 수강했다. 사업가로서 전문성을 기르고 때때로 찾아올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 보겠다는 의지였다.

바쁘게 사는 그에게 가족은 가장 큰 버팀목이다. 이 대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어머니께 6개월 동안 말을 못했다”며 “그러다 사실을 털어놨을 때 말없이 한숨을 쉬며 걱정하셨지만 이제는 너무 자랑스러워 하신다”며 고마워했다.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는 “술을 만들고 마시는 게 일이다 보니 가끔 가정에 소홀할 때가 있지만 싫은 내색 없이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줬다”며 “언제나 버팀목이 돼 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멋진 남편,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8호(2020년 6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