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와 이용자 간 갈등은 최근 넥슨의 PC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발생한 ‘확률형 아이템’ 논란으로 공론화됐다. /사진=넥슨 제공
게임업계의 고름이 터졌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소통을 통해 사후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보상을 지급하고 사태를 끝내려는 업계의 태도에 이용자가 분노한 것이다.

수년 간 진정한 소통 만을 기다려오던 이용자가 이번엔 직접 대책 촉구에 나섰다. 게임사에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트럭을 보내는 이른바 ‘트럭 시위’를 벌였다. 디스플레이에는 “유저 기만 이제 그만!” “겉으로는 단풍이야기 뜯어보니 바다이야기”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 담겼다.
지난 1월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페그오)를 시작으로 한국 대표 게임사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은 모두 이용자가 보낸 분노의 트럭을 맞이했다. 한때 게임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던 이들은 왜 돌아서게 됐을까.

확률형 아이템은 유료 재화를 지불할 시 일정한 확률로 뽑을 수 있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수면 위로 오른 불신… ‘확률형 아이템’ 논란 뭐길래
게임업계와 이용자 간 갈등은 최근 넥슨의 PC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발생한 ‘확률형 아이템’ 논란으로 공론화됐다. 
확률형 아이템은 유료 재화를 지불할 시 일정한 확률로 뽑을 수 있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다만 이 확률이 상황에 따라 변동되는 것 같다는 이용자들의 의혹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이를테면 게임 내 서버에 특정 아이템이 3개만 존재하도록 설정됐다면 해당 아이템 획득 확률이 1%라도 그 3개가 모두 이용자에게 귀속되면 이후부터는 획득 확률이 0%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특히 넥슨이 2월18일 자사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환생의 불꽃’ 업데이트 관련 공지글을 계기로 이같은 이용자들의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졌다. 이 글은 무기에 추가성능을 부여하는 아이템인 환생의 불꽃에 모든 종류의 성능이 ‘동일한 확률’로 부여되도록 수정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전까진 확률 조작이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 탓이다.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 게임3사 앞에 전광판을 단 트럭이 등장했다. 사진은 넥슨 본사 앞 트럭. /사진=강소현 기자

한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는 "넥슨은 2019년 고객 상담을 통해 직접 ‘특정 성능의 부여 여부에 따라 타 성능 부여 확률이 결정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번 공지글을 통해 2019년의 답변이 사실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함으로써 유저의 신뢰를 걷어찼다”며 "단순히 ‘환생의 불꽃’만이 아닌 큐브 등 다른 확률형 아이템에도 추가적인 확률 조작이 의심됐다”며 "더 이상 사측을 신뢰하기 어려워졌다"고 질책했다.

확률형 아이템 의혹이 사실일 시 피해 규모에 대해선 “휴면으로 추정되는 계정을 제외했을 때 이용자 1인당 평균 1년 과금 결제액이 3000만원으로 예상된다. 조작이 사실이라면 피해 규모가 적지 않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비슷한 시기 게임업계가 이상헌 의원(더불어민주당·울산 북구)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개정안에 반발한 것을 계기로 업계를 향한 게임 이용자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이 법안은 뽑기 확률 정보 공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가운데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이 부회장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게임산업협회가 “확률정보는 영업비밀”이라며 법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사진=각 사 제공

“확률형 아이템? 기폭제일 뿐” 트럭시위 진짜 이유는…

다만 확률형 아이템은 기폭제가 됐을 뿐 게임업계를 향한 이용자의 불신은 이전부터 계속됐다는 지적이다.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용자의 분노가 쉬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실제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 게임3사 앞에 전광판을 단 트럭이 등장한 건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공론화되기 전인 올해 초부터다. 각 게임의 이용자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시위 참가 인원을 모집하고 트럭 대여와 랩핑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했다
시작은 넷마블의 ‘페그오’에 대한 트럭시위였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1월 혁명’으로 불리는 이 시위는 넷마블 측이 명확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출석 이벤트를 4일 만에 돌연 중단하면서 발생했다. 

다만 이는 표면상 드러난 이유일 뿐 그동안 운영진에 쌓인 분노를 한번에 표출한 것이라는 게 페그오 이용자의 주장이다. 평소 버그가 발생했다 등의 이용자의 지적에도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제시하는 대신 "죄송하다" "약속한다" 는 기계적인 답변을 반복하는가 하면 국내 이용자를 해외 이용자와 차별 대우하는 운영진에 불만을 느껴왔다는 것이다.

이어진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트럭시위도 넷마블과 결을 같이한다. 메이플스토리로 곤혹을 치른 넥슨만 해도 비슷한 논란으로 수차례 물의를 빚는 등 수년 전부터 사용자의 지적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일례로 환생의 불꽃과 유사한 '마비노기'의 확률형 아이템, 세공 도구을 두고 2017년부터 특정 성능이 누락된 것 같다는 이용자들의 지적이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넥슨 측은 "문제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2019년 넥슨 측은 "아이템의 특정 성능이 누락돼 얻을 수 없는 것을 확인했다"며 뒤늦게 오류를 인정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용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게임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제공=각 사

엔씨 매출, 리니지M 출시 전후로 781%↑… “유저 신뢰 기반한 생태계 조성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용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게임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확률 공개는 무의미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영진 청강대 교수는 “이번 사태는 게임사가 공정함을 요구하는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부분이 큰 것 같다. 여전히 비즈니즈 모델이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 탓에 확률정보를 영업비밀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온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국내 게임 산업의 현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게임산업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에 따른 수입이 절대적이었다. 엔씨소프트의 사례만 봐도 확률형 아이템의 도입 전후 매출 차이가 큰 폭으로 난다. 2017년 2분기 376억원에 불과했던 분기매출액은 확률형 아이템을 주요 수익원으로 하는 리니지M 출시 이후 3분기 3278억원으로 781% 증가할 정도였다. 

위정현 게임학회장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의 반발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점을 게임업계가 명심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불신에 차 게임을 떠나는 이른바 '게임난민'이 폭증하고 있는 만큼 게임업계의 신뢰 회복이 시급해 보인다. 김영진 교수는 “두터운 유저 층의 도움을 받았던 게임업계의 반성과 개선이 필요한 때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