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 명동, 북촌 등 서울 주요 명소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골목./사진=김이재 기자
"서울보다 제주도가 안전한가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필리핀 관광객 A씨는 "출발 전까지 여행을 취소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지금 한국에서 안전한 여행지는 어디냐"고 되물었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위축된 한국 여행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모양새다.

머니S는 최근 탄핵 정국 관련 외국인 관광 동향을 살피기 위해 명동, 광장시장, 북촌 등 서울 주요 관광지를 방문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장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A씨처럼 광화문, 종로 등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를 피하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가족과 함께 명동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리우쯔밍(40)씨는 "아이가 있어서 한국의 상황이 걱정되긴 했다"며 "지인 중에는 한국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복궁 쪽은 집회가 열리는 주말을 피해 다녀올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명동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매장 안은 대체로 한산했다. 바프 아몬드스토어, 마땡킴 등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브랜드도 상황은 비슷했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줄어든 데다 환율 상승으로 원재룟값 부담까지 겹치며 상인들의 고충도 커졌다.

명동에서 소품샵을 운영하는 50대 B씨는 "연말치고 분위기가 무겁다. 탄핵 영향이 있는 것 같다"며 "한 달 전보다 관광객이 줄고 매출도 감소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최근 환율이 많이 올라 마진이 남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제과점 아르바이트생 C씨도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인데 탄핵 전보다 사람이 준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복 안 빌려요"... 북촌한옥마을 상인들 '막막'
집회 소음 문제로 북촌한옥마을의 외국인 관광객이 줄고 있다. 사진은 23일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골목. /사진=곽선우 기자
북촌한옥마을은 2030 외국인 관광객이 한복 체험을 하기 위해 많이 찾는 관광명소지만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소음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은 한복 입은 외국인 관광객이 확연히 준 모습이었다. 한복 대여점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11월과 12월의 매출 차이가 확연히 난다"며 "근처에서 집회하는 바람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27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심리를 앞두고 헌법재판소가 위치한 종로 일대에서는 연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 인근에 자리 잡은 북촌한옥마을은 집회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한옥의 고즈넉한 멋을 즐기러 온 외국인들은 예상치 못한 집회 소음 문제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여행 온 세르게이(28)씨는 "전에도 한국에 와본 적 있는데 내가 봐온 한국은 매우 안전했었다"며 "안전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면 아마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친구들과 이탈리아에서 여행 온 지아다(23)씨는 "서울에 처음 왔을 때 고성 때문에 매우 놀랐다"며 "지금은 한국인들이 정치적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표현임을 알게 되어 두려움이 전보단 없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외국인 붐비던 광장시장, 이제는 내외국인 반반
외국인이 더 많던 광장시장에 내국인 비중이 높아졌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전경. /사진=곽선우 기자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광장시장은 전년에 비해 외국인 방문객이 줄고 내국인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지난 20일 오후에 찾은 광장시장은 적지 않은 인파가 모였지만 그중 외국인은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었다. 금요일 오후 시간대는 계절과 무관하게 외국인 관광객의 대기줄을 흔하게 볼 수 있었으나 소수의 유명 음식점을 제외하곤 대기줄을 찾기 어려웠다.

경기 침체에 설상가상으로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져 연말 특수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시장 상인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광장시장에서 한과를 파는 상인은 "전년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이 덜 보이는 건 분명하다"며 "관광객에 의해 매출이 많이 좌우되는데 12월 매출은 전년만 못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시장 입구에서 만난 한 관광안내사도 "(계엄 사태 이후)날이 갈수록 외국인 관광객 수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