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200억원 규모의 '탈현장 건설' 기술사업 선정 결과에 이의신청이 제기됐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KAIA)이 발주한 200억원대 건설기술 연구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연구단 선정 결과에 이의제기가 신청되면서다. 이 연구사업은 '탈현장 건설'(Off-site construction·OSC)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각종 환경 문제나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는 글로벌 건설산업의 트렌드로 정부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KAIA가 발주한 '공동주택의 고층·단지화 및 생산성 제고를 위한 OSC 고도화 기술개발사업' 선정 평가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가 접수됐다. 선정에서 탈락한 이화여대 연구단은 관련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KAIA는 절차에 따라 30일 이내 공식 입장을 내놓을 전망이다.

이화여대 연구단에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대한건설정책연구원·대한건축학회·한국토지주택공사(LH)·대우건설·현대엔지니어링·DL이앤씨·롯데건설 등이 참여했다. 머니S가 입수한 이의신청서에 따르면 이화여대 연구단은 ▲과제 부합성·차별성 검토 미비 등 절차상 하자 ▲경쟁 기관에 선행 연구과제 등 비공개 자료 사전 유출 ▲특정 업체에 제한된 공법 채택 등을 이유로 평가 결과 '무효'를 주장했다.
이화여대 "공법 부적합·절차 불공정"
이화여대 연구단은 한양대 연구단의 과제 적합성과 KAIA의 비공개 자료 사전 유출, 상대 연구단의 심사위원 사전접촉 정황 등 평가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재평가를 요구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KAIA는 올 초 ▲PC(Precast Concrete) 공동주택의 고성능·고층화·표준화 핵심기술 개발 및 실증(사업비 200억원) ▲모듈러(조립식) 건축산업 활성화를 위한 내화성능 및 주거품질 향상 핵심기술개발(사업비 50억원) 2가지 연구 과제를 발주하고 최근 연구기관을 선정·통보했다. 이의제기가 접수된 건은 PC 연구 부문이다.
해당 사업의 입찰에는 이화여대 OSC연구단과 한양대ERICA 연구단이 참여했다. 연구는 올해 4월1일부터 2029년 12월31일까지 총 4년9개월 동안 진행된다. KAIA는 지난달 4일 입찰을 마감하고 이달 6일 한양대 연구단을 최종 선정했다.


이화여대 연구단은 유사 국가연구개발 과제와의 중복성을 이유로 상대 연구단의 과제에 대한 차별성 점검을 요청했다. 한양대 연구단의 과제는 앞서 건설기술연구원이 지난해 4월부터 연구 중인 PC 모듈러 공동주택 설계 프로토타입 개발과 중복돼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해당 공법은 LH가 의왕초평 현장에서 시범사업을 통해 진행 중인 상황이다.

한양대 연구단은 공장부터 3D(3차원) 구조체를 완성해 현장 시공을 줄인 모듈형 PC 공법으로 해당 사업을 수주했다. 사업 제안요청서(RFP)에 따르면 연구 목적은 '기둥-보 PC의 공장제작 후 현장조립'하는 PC 공법으로 적시됐다. 그러나 선정 팀은 해당 공법의 접근이 아닌 공장에서 부재 모듈 조립 후 현장 조립하는 '모듈러 공법'을 제안해 사업 방향성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이화여대 측 주장이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라 신규 사업 공고 시 공개 범위를 최종보고서로 제한하고 있음에도 KAIA가 경쟁 연구단에 중간보고서를 제공해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2020년 4월부터 1차 OSC 연구개발(R&D) 사업을 수행 중인 이화여대 연구단은 그동안 PC 공장 인증제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이번 PC 공동주택 R&D는 1차 사업의 후속 과제로 인식돼 왔는데 경쟁 연구단에 선행 과제를 제공해 평가 공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이화여대 연구단을 이끄는 이준성 교수는 "국가연구개발 실증사업이 특정 기업의 기술로 추진될 경우 기술 다양성과 건전한 경쟁 생태계가 저해돼 기술 진입 장벽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국내 PC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상호 경쟁과 협업이 가능한 기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감사원 감사 청구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양대 즉각 반박… "공기·비용 우위, 절차상 문제없어"
이화여대의 문제제기에 대해 KAIA와 한양대 연구단은 절차상 문제가 없으며 과제 최종 선정은 평가 기준에 따른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이 같은 이화여대 연구단의 주장에 대해 KAIA와 한양대 연구단은 선정 결과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KAIA 관계자는 "세부 평가 내역을 공개할 수는 없다"면서 "안내서의 평가 기준에 따라 평가위원회를 소집하고 평가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이의신청이 규정에 해당하는 사유인지 검토하고 한 달 안에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연구단 측은 비용과 공법 측면에서 상대 연구단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양대 연구단을 이끄는 안용한 교수는 "공사비와 공기에서 차이가 났고 사업 현실성을 고려했을 때 상대 연구단의 공법은 시장에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고 반박했다.

비공개 자료 유출 주장에 대해선 "요청서에 1단계 사업 내용을 계승해 2단계를 진행하게 돼 있어 KAIA로 공문을 보내 자료를 요청했다"며 "해당 연구단의 귀책으로 사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여서 최종보고서 대신 중간보고서를 공유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부 업체에 공법이 제한된다는 지적에는 "이번 사업 수주 시 기술을 개발해 오픈하기로 해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심사위원 사전 접촉 의혹에는 "일단 나는 없다. 연구단 개개인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국가 R&D 시스템의 신뢰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KAIA에 접수되는 이의신청 건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기관 차원에서 평가 절차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