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산업은 1954년 애경유지공업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70주년을 맞은 애경산업은 주방세제 트리오를 필두로 세탁세제 스파크와 리큐, 2080치약, 케라시스 샴푸 등 오랜 시간 사랑받은 다수의 생활용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애경의 샴푸, 치약, 비누 등으로 구성된 선물세트는 설이나 추석 때마다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화장품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에이솔루션, 루나, 에이지투웨니즈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화장품 부문의 매출이 40%에 이른다. 이 때문인지 애경산업은 스스로를 생활용품기업 대신 '생활뷰티기업'으로 부른다.
애경이 그룹의 모태인 애경산업 매각을 결심한 것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파악된다. 우선 그룹의 재무 건전성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통한다. AK홀딩스는 그동안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AK플라자,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제주항공 등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차입금을 늘렸는데 지난 연말 여객기 사고로 유동성이 악화됐다.
다음으로 애경산업 매각은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K뷰티가 호황을 맞으면서 애경산업의 가치는 극대화될 것이라는 게 투자업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오랜 시간 애경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힌 '가습제 살균제 참사'는 그룹이 애경산업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무엇보다 애경산업 매각은 그룹의 변신에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애경은 1980년대 생활용품(애경산업)과 화학(애경케미칼) 중심에서 1990년대 유통(애경백화점), 2000년대 항공(제주항공)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현재 애경의 주력은 화학과 항공이다. 각각 중국발 공급과잉과 참사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영역이다.
애경은 두산의 선례를 참고할 만하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으로 뭇매를 맞은 두산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OB맥주를 매각하는 등 소비재기업에서 생산재기업으로 탈바꿈해 기업 체질을 개선했다.
중요한 것은 사업 영역만 바꾸는 게 아니라고 본다. 애경이라고 하면 변화나 혁신보다는 다른 이미지로 비치지 않았는지 이번 기회에 되돌아봐야 한다. 2000년대 초반 애경 신입사원 면접을 본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데 담당자가 면접관 앞에서는 군대처럼 각을 잡고 앉아 큰소리로 대답하라는 거야. 21세기에도 그런 회사가 있더라고."
20년이 훨씬 지난 일인 만큼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밖으로 보이는 기업 이미지가 우수 인재 확보와 고객 신뢰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애경도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맞춰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애경이라는 브랜드에서 유래한 '사랑과 존경의 가치'를 빼고 새로운 AK를 위해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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