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씨의 반려견 순대는 올해로 12살이 된 노견이다. /사진=김서연 기자
"반려동물 1500만시대라는 말에 따라붙는게 동물의 생명권이 아닌 국내 펫산업 8.5조 인게 너무 아쉬워요. 돈 쓸 땐 '우리 가족'인데 정작 학대나 유기가 발생하면 법적으로는 '소유물'이더라고요. 생명에 중심을 두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이나연씨(가명·30세)는 올해로 12살이 된 반려견 '순대'를 키우고 있다. 노견이 된 순대는 예전처럼 산책을 반기지도 않고 가장 좋아하던 간식에도 시큰둥하다.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곧 다가올 이별의 신호처럼 느껴질 때마다 슬픔과 함께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수술 한 번 하면 기본이 백만원대더라고요. 동물한테 돈 쓰는 걸 아깝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12년을 함께한 가족이 아픈데 어떻게 아낄 수 있겠어요."

지난해부터는 매달 15만원씩 적금을 붓기 시작했다. 금전적인 이유로 치료를 망설이는 일만은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마음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이 2021년 9월에 실시한 동물병원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물병원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1회 평균 진료비 지출비용은 8만4000원이고 82.9%의 소비자가 진료비가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제일 시급한건 진료비 표준화인거 같아요. 소형견이다 보니 슬개구 탈구 수술을 하는 강아지들이 많은데 수술비가 400만원이라는 곳도 있고 100만원대라는 곳도 있어요. 보험을 들어도 병원마다 진료항목이 달라서 청구가 어려우니 적금드는 게 낫다는 견주도 많아요"


현재 국내 반려동물 진료비는 질병명·진료항목·진료행위에 대한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보호자들이 진료비를 사전에 예측하거나 비교하기 어렵다.정부는 2022년 수의사법 개정을 통해 동물 진료항목 표준화 근거를 마련했지만 아직 실효성 있는 현장 적용으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다. 수의계 내부 반발과 진료기록 관리 미비 등으로 제도화 속도도 더딘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펫보험업계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보험사 역시 손해율 예측이 어려워 상품 확대에 소극적이다. 국내 반려동물보험 가입률은 약 0.8%로 스웨덴(40%), 영국(25%) 등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가족이 된 반려동물… 법적으로는 여전히 '소유물'
지난 16일 오전 제주시 용강동 제주동물보호센터 보호동에서 유기견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에서 강아지를 키우면서 가장 놀란건 법과 제도가 반려동물들을 전부 '물건'으로 규정하는 것이었어요. 죽고나면 생활폐기물로 분류돼서 저희집 마당에 묻는 것도 불법이라고 하네요. 독일에서는 동물보호법 때문에 생명체의 존엄성을 해치는 방식의 처리를 금지하고 있거든요. 동물 처우는 아직 아니구나 생각했죠."

독일에서 장기간 거주했던 이씨는 한국과 독일의 동물을 대하는 법과 제도의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는 걸 체감했다고 한다. 독일의 경우 독일은 동물 자체를 '생명권 주체'로 인식하는 헌법 조항(Grundgesetz Art.20a)을 통해 동물보호를 국가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민법 제98조에 따라 동물을 법적으로 '물건'으로 분류한다.

이 같은 법적 지위의 차이가 보호자들이 반려동물과의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비용과 불이익을 제도 바깥에서 감당하게 만드는 구조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나아가 학대나 유기 같은 범죄가 발생해도 실질적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현실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지적이다.

"가끔 시골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끌고가서 잡아먹었는데도 처벌이 안된다는 뉴스를 볼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요. 가장 세게 처벌해도 재물손괴죄나 절도죄 수준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 법에 아직 동물이 '생명'이라는 감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행 동물보호법상 동물을 고의로 죽일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벌금형이나 선고유예에 그친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학대 혐의로 기소된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2% 미만에 불과했다. 학대 이후에도 동물 소유권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고 보호권 박탈이나 입양 제한 조치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씨는 차기 대통령이 무엇보다 단순한 처벌 조항을 넘어서 학대 이후에도 동물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학대 행위자에 대해 실형 선고는 물론, 보호권 박탈과 입양 금지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한다. 반복적 학대가 확인되면 동물 소유 자체를 금지하는 법원 명령도 가능하다. 판단 기준을 '정당한 사유'가 아닌 잔혹성·반복성·고의성 중심으로 적용하는 것이 국내 동물보호법과의 가장 큰 차이다.

"가장 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그 문화의 성숙도를 드러낸다고 하잖아요. 이미 우리나라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구가 1500만명이 넘는 사회고,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자리 잡았으니 다음 대통령은 반드시 제도를 그에 맞게 바꿨으면 좋겠어요."

이씨는 새 정부가 반려동물을 '함께 사는 생명'으로 대우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구체적으로 바꾸는 일에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일회성 공감을 넘어 실효성 있는 보호 장치와 공공 책임을 제도화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믿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