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저는 관객들이 '삼매경'을 보고 '나는 언제 뜨겁게 살아본 적 있었을까', '나는 과연 나답게 살았던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품고 극장을 나서면 좋겠습니다."
연극 '삼매경'의 재창작과 연출을 맡은 이철희(46)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얻었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밝혔다.
'삼매경' 측은 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철희 연출과 배우 지춘성(60)이 참석했다.
'삼매경'은 한국 근대극의 대표 작가 함세덕(1915~1950)의 희곡 '동승'을 원작으로 한다. '동승'은 유치진(1905~1974) 연출로 1939년 초연했다. 그해 제2회 연극대회 극연좌상(현 동아연극상의 전신)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재창작하면서 두려움 엄습…활로는 '지춘성'"
이철희 연출은 '동승'을 재창작하게 된 배경에 관해 "선배 극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저 같은 젊은 작가들은 감히 다룰 수 없는 인물의 깊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넓고 깊다는 생각을 늘 해 왔다"며 "그런 과거의 작품들을 오늘날 관객과 다시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들의 작품을 무대에 다시 올리겠다는 사명감은 투철했으나, 재창작 과정이 전혀 쉽지 않았다며 "'동승'이 너무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이 오히려 큰 걸림돌이 됐다"고 했다.
이철희 연출은 "올해 1월 1일 작업을 위해 '동승' 대본을 다시 펼쳤는데 하루 종일 세 쪽도 못 넘겼다, 두려움이 엄습해 밤을 꼬박 새웠다"며 "그 두려움을 뚫고 갈 수 있었던 활로는 지춘성 배우의 역사였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이철희는 지춘성의 삶을 따라가며, 그의 심정과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돌파구를 찾아갔다.
"34년 만의 복귀…책임감·부담감·영광스러움"
'삼매경'의 원작인 '동승'은 지춘성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1991년 박원근이 연출한 '동승'에서 동자승 '도념' 역으로 출연했다. 이 작품은 그에게 제15회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 제2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인기상을 안겼다. 당시 26세였던 신예 지춘성을 연극계 스타로 끌어올린 작품이 바로 '동승'이다.
지춘성은 34년 만에 재창작된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는 데 관해 "'동승'을 한 뒤 주변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제 삶은 이 작품 덕분에 이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세 단어로 표현하자면 책임감, 부담감, 영광스러움"이라고 전했다.
그는 '삼매경'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와 관련해선 "대사량에 압도됐다, '예순에 이 대사를 다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제일 컸다"면서 "첫 리딩을 하고 이철희 연출에게 '정말 잘 썼다'고 여러 번 말했다, 원작과 제 이야기, 그리고 연극적 서사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최선 다해야 관객에게 떳떳하다"
1991년 '동승'과 2025년 '삼매경'의 주인공은 '도념'으로 같지만, 이야기는 새 옷을 입었다. '도념' 역의 지춘성도 스물여섯에서 어느덧 환갑을 맞았다.
지춘성은 "그때는 어머니가 살아계셨지만, 지금은 안 계신다. 그렇기에 이번엔 '사모의 정'이 더 진하게 드러날 것 같다"라며 "당시 제 연기의 원천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였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지금은 결핍이 없는 감사한 마음으로, 진짜 도념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지춘성은 "지금 석 달째 수도승처럼 같은 루틴으로 살고 있다, 무대에 서는 배우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라며 "그래야 비로소 관객 앞에 떳떳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연극 '삼매경'은 오는 17일부터 8월 3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진다. 지춘성을 비롯해 고용선, 곽성은, 김신효 등 13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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