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에 있는 KB국민은행은 할 수 없이 자체감정 업무를 단계별로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업계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에 따르면 국내 감정평가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조1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국민은행이 벌어들인 보수 이익은 550억원으로 시장 점유율 5%에 달한다.
국민은행의 자체평가 보수는 3년 만에 3배 수준으로 성장했다. 감정평가업계 1위 법인의 매출(350억원)보다 1.5배가 많다. 하지만 국민은행의 한 해 영업이익(5조3989억원)과 비교하면 자체평가 매출은 1%에 못미치는 수준이다.
감정평가업계에는 생존의 문제지만 대형은행들의 이자 이익에 비해선 미미하다는 의미다.
현행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감정평가법)은 금융회사가 토지 등 감정평가 업무 수행을 위해 외부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금융감독원의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은 예외 적용을 허용한다.
2011년 대법원은 은행이 감정평가를 포함한 대출 부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때부터 은행들은 자체평가를 도입했고 금감원은 소액의 경우 예외 적용할 것을 통보했다. 은행들은 해당 규정을 무시한 채 비용 절감만을 목적으로 자체평가 영역을 확장해온 것이다.
국민은행은 이번 사태로 외부 평가를 늘릴 경우 대출 이용자가 내야 하는 이자의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시행세칙이 정한 예외 규정의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체평가 적용 범위를 질문했으나 내부 자료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감정평가는 담보대출의 한도를 정할 뿐 아니라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인 공시가격 산정의 근거가 된다. 일부는 공공의 영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2008년 미국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부실 감정평가 논란은 2010년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및 소비자 보호법'(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하는 발단이 됐다. 도드-프랭크법은 감정평가사의 독립성을 법으로 명문화하고 있어 은행과 감정평가업계의 분쟁 사건에서 다시 주목할 만하다.
국내를 봐도 에버랜드 공시지가 논란이 있다. 2015년 삼성 에버랜드 땅의 공시지가가 급등한 배경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가격 산정의 절차 위반과 외부 압력·청탁 가능성을 의심했고 검찰 고발했다. 해당 사건은 공시지가의 투명성과 기업의 외압 의혹 논란으로 이어졌다.
민간 감정평가업계가 업무의 법적 권한을 위임받으면서 이번 사태가 은행과의 밥그릇싸움으로 보이는 일각의 시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형은행이 소비자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자를 볼모로 법의 취지를 약화하려는 것은 협박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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