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외수는 화천에 산다. 화천에서도 북쪽 끝자락이니 휴전선에 가까운 산골이다. 그는 춘천에 오래 살다가 4년 전 화천 다목리로 이사했다.



그를 화천으로 부른 사람은 정갑철(64ㆍ사진) 군수였다. 이 두사람의 인연이 재미있다.



"춘천에 살 때 한 20명쯤 내려와 기숙하니 석달 만에 쌀이 바닥났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쌀가마니를 보내준 사람이 정갑철 군수입니다. 그때 그를 처음 알았습니다. 그 후 살던 동네가 대학 앞인데 다세대 원룸 주택들을 짓는다고 3년 내내 공사가 요란하고 미세먼지가 많아 천식이 심해졌지요. 그래서 시골로 가려고 궁리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 군수가 오라는 겁니다."



당시 이외수를 부른 곳은 화천 말고 양양 인제 양구 등 몇곳이 더 있었다.



"화천 공무원들이 이외수 씨 오면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물었답니다. 그러니까 정 군수가 '예술가에겐 작품 이외엔 아무 것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야단쳤다는 말을 듣고 주저 없이 화천으로 정했지요. 이제는 내가 화천의 홍보대사입니다."



이외수의 '정갑철 예찬'은 계속된다.



"겨울 산천어 축제가 열리면 화천 여관이며 민박시설이 모두 꽉꽉 들어찹니다. 그렇다고 이때만 겨냥해 호텔을 지을 수도 없고 딜레마지요. 한번은 축제에 온 가족이 '마땅히 잘 데도 없다'면서 '춘천가서 자고 아침에 또 와야 하냐'고 투덜대는데 그 옆에서 쓰레기를 줍던 분이 '우리 집에 방이 하나 여유가 있는데 불편하시더라도 주무시겠냐,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 자고 다음날 축제에 가보니 쓰레기 줍던 양반이 군수더랍니다."



이 스토리는 그 가족이 어느 신문엔가 독자 투고를 해서 알려졌다.



"화천 공무원 한번 보면 공무원 인식이 바뀝니다. 세계적인 교육기관에서 교육 받은 줄 알았습니다. 주민들을 위해 밤낮이 없습니다. 정 군수도 대단합니다. 참전국에서 탄피를 기증받아 녹여서 평화의 댐에 평화의 종을 만들었습니다. 산천어도 직접 길러서 축제기간에 풀어 놓는 것입니다. 특별히 먹을거리가 없으니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창조할 수밖에 없지요. 만들어서 먹는 겁니다. 돈은 별로 안들이고 효과는 극대화하는 겁니다.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 전국에서 가장 빠릅니다."



정 군수는 허름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군수로 유명하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재선될 때는 2위와의 표차가 전국에서 가장 컸다.



"선거때 이 양반 6번째 공약이 부인에게 한 것인데 '여보, 올해는 우리도 우리집을 가집시다'였습니다. 아직도 셋방살이죠. 한나라당에서 나왔는데 다른 당이 고민이었습니다. 경쟁을 붙여봐야 뻔하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기도 그렇고, 대략난감이죠. 아무튼 후보를 내긴 했는데 곳곳에서 '재뿌리기!'냐는 비난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외수를 부른 정 군수는 화천 다목리 감성마을을 또 하나의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